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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산 단팥죽이 시작이었다.

by Aeon Park

별장 역할을 하던 시골집에 주말마다 왔다갔다 하던 해였다. 저학년이던 아이가 도시에서 이번 학년만 마치면 다음 해에 시골로 이사하기로 결정한 해였다. 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나는 살기로 한 새로운 동네에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서 그 지역 커뮤니티/맘카페 등은 가입하는 편인데 그때도 그랬다. 당시에 자주 가는 비공개 맘카페는 3천 명이 아주 활발하게 활동을 했고, 공개 카페는 8만 명, 영국집이 있는 지역 커뮤니티도 3만 명이 가입해 있는데 이 시골 지역 맘카페는 8천 명이 가입되어 있었지만 아무도 활동하지 않는 듯했다. 글도 안 올라오고 올라온 글의 조회수도 1, 2. 많으면 10회. 군청에서 가끔 올리는 쓰레기 배출 정보나 이 지역에서 가게를 하는 사장님들이 올리는 홍보글 말고는 얻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지가 가깝던 그 겨울에 국산팥 100%, 단팥죽을 판매한다는 시골 카페 사장님의 글을 보게 된다. 팥죽? 먹어야겠는데? 지도를 보니 집에서 가깝다. 집에서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카페가 있었다는 것도 몰랐다. 그때는 5도2촌 생활 중이라 집 근처 동리에 대해 잘 알지 못했으니까.


카페에 커피가 아니라 팥죽을 먹으러 간다는 게 요즘엔 이상한 일도 아니지만 얼레벌레(표준어 아님) 외출 준비를 하고 갔다. 완전히 한옥으로 꾸며진 시골 카페였다. 손님은 적당히 있었고 사장님이 혼자 운영을 하시는 듯 굉장히 바빠보였다. 카페에 고양이가 두 마리 있었는데, 당시에 우리는 도시에서 부화시킨 닭 두 마리를 시골로 데리고 온 터라 시골 동물들이 정겹게 느껴졌다. 아이와 함께 노는 고양이 사진을 많이 찍었다. ENFP인 나는 이 근처로 이사를 올 예정입니다, 커피가 맛있어요, 자주 올 것 같아요, 따위의 말은 건네지도 못하고 카페를 나왔다.


동지가 지나고 해가 바뀌며 본격적인 시골 생활을 시작했다. 외국에서 한국으로, 다시 한국 도시에서 한국 시골로 이사를 한 아이가 적응을 못 할까봐 전전긍긍하던 엄마와는 달리 아이는 친구도 잘 사귀고 건강하게 지냈다. 팥죽을 팔던 그 시골 카페 사장님이 주말 알바를 구한다는 맘카페 글의 조회수를 1회 올리며 몇 개월이 지났다. 그날도 사장님은 맘카페와 가게 인스타에 알바를 구하는 글을 올렸고 나는 괜스레 마음이 동하기 시작하였다. 오지랖 레이더를 켜놓고 외부인 보다는 동네 아줌마가 알바 다니기는 편할 건데. 알바생이 차 없으면 가지도 못하는 곳인데. 나는 차 있는데. 최저임금 받고 요즘 젊은이들은 알바 안 할 건데. 나는 낡은이라(늙은이 아님) 커피만 주면 최저도 상관없는데.. 하며 기운을 쓰고 있었다. 결국 아이도 시골 생활에 잘 적응을 하고 있으니 슬슬 지루해진 나는 DM을 보내고야 말았다.


- 동네 아줌마입니다. 지금 면접보러 가도 됩니까.


사장님은 애초에 대단한 면접을 볼 생각이 없었다. 토요일에 단 3시간만 옆에서 손을 거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거였지만 나는 굳이 면접을 보겠다며 입술에 샤넬 립스틱을 찍어바르고 집을 나섰다. 시골 생활을 시작한 지 7개월이 된 어느 한 여름, 그렇게 나는 시골 카페의 알바가 되었다.




* 알바는 독일어에서 온 외래어로 '아르바이트'의 준말이다. 본래의 직업이 아닌, 임시로 하는 일을 뜻한다. 영어로는 part time job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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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