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답답한 날들이었다. 시원한 바다가 보고 싶었고, 그곳에 가면 이 답답한 마음이 조금은 시원해지지 않을까.
맛있는 걸 먹어도, 좋은 것을 보아도 소화되지 않던 마음이었다. 겨울바람을 품고 무섭게 달려오는 파도 한 번에 놀랍게도 모든 게 다 괜찮아졌다.
이날은 기록적으로 강원도에 눈이 많이 온 다음날이었다.
모래가 있어야 할 곳엔 하얀 눈이 덮여 있었고, 눈 위에는 그곳이 집인 갈매기들이 하얀 눈이 따뜻한 솜털이라는 듯이 평안하게 앉아 있었다.
다시 바다를 바라보니 더 강하게 몰아오는 하얀 파도에 작가들이 왜 파도가 부서진다고 하는지 알 거 같았다.
하얀 파도는 짙은 파란색과 대비되게 빠르게 달려와 하얀 안개를 뿌리며 부서졌다.
바다의 끝을 바라보니 짙은 파란색이 더욱 짙게 보였다. 거기서부터 나에게로 밀려오는 파도를 따라 시선을 옮기는 나에게까지 왔다.
답답했던 마음들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었기에 저 짙은 바다의 한 번의 파도에 물거품처럼 사라졌을까?
무작정 벌려놓기만 한 일들에 대한 책임감이었을까?
잘 해내고 싶다는 욕심었을까?
아니면 열심히 했는데도 외면받을 시선들에 대한 걱정들이었을까?
정말 영혼까지 끌어서 열심히 했는데도 인정받지 못하면 어떡하지?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걸까?
모든 계획을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하고 내가 해내야 하는 무거움일까?
사실은 전문가가 아닌데 그냥 하고 싶어서 하는 건데 전문가들의 질문에 대답을 못하는 나 자신 때문인가?
게으른데 하고 싶은 건 많은 현실에 자아가 부딪혀서 일까?
끝없는 물음표가 나의 가슴을 체하게 했는데, 겨울 바다는 그 모든 게 순리처럼 흘러갈 거라고 말하는 거 같았다.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는 날씨와 상관없이 나에게로 오는 것처럼.
겨울의 짙은 파도가 체한 나의 마음을 한순간에 쓸어갔다.
짙은 파도가 쓸고 간 내 마음엔 하얀 파도 거품을 가득 품고 있는 바다가 일렁였다.
걱정으로 메말라버렸던 내 마음에 바다 끝에서부터 몰려오는 짙은 파란색이 가득 찼다.
또다시 언젠가 걱정으로 내 마음이 메말라버린다면 저 끝에서부터 짙은 파도를 끌고 와 반드시 나를 채워줄 거라는 것처럼.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작은 내 책상에서 바라보는 세상보다 더 큰 순리들이 보인다.
반드시 나에게로 다가오는 파도와 다시 쓸려가는 바닷물들. 내가 죽고도 반복될 그것들.
해가 뜨고 다시 해가지고, 달이 뜨고 달이 지고, 그 틈에 보이는 시간마다 달라지는 구름들과 빛에 따라 달라지는 세상의 색감들.
이 모든 것들은 누군가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게 두는 것들.
나의 많은 걱정들은 언젠가 진짜 일어날 수도 있고, 아니면 기억조차 안날 걱정들일 텐데.
그냥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게 두면 될 것을.
하얀 파도를 몰고 오는 짙은 바다를 바라보며 내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냥 그 바다를 바라보며 감탄하고, 행복해지고, 웃고, 사진 찍고, 잠시 내 걱정을 꺼버린 것뿐.
이것도 의식해서 한 것이 아닌 그냥 바다만 바라보았을 뿐인데 자연스럽게 내 가슴이 파도로 가득 찼다.
짙은 파도를 가득 담고 이 짙은 바다가 누군가에게 시원한 위로가 되고, 행복이 되고, 잠시 감탄할 수 있는 일상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린 짙은 파도를 담은 겨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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