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 파박. 폭죽 소리를 내며, 알록달록 매끈하게 빛나는 작은 것들이 터진다. 눈길을 한시도 뗄 수 없는 빛의 향연은 축제 마지막 날의 폭죽을 방불케 한다. 네모난 그 안의 세계에선 또 다른 시간이 흘러간다. 현실을 멈춰 세우고, 손바닥 안의 축제를 허락하는 시간. 견디기 어려운 우울한 기분을 외면한 채, 눈 안에 오직 반짝이는 것들을 구겨 넣는다.
‘캔디크러쉬사가’라는 인터넷 게임이 있다. 알록달록 다양한 모양의 사탕들이 가득 들어찬 판이 시작되면, 마주한 사탕의 자리를 바꾸어 세 개 이상 연이은 같은 사탕 줄을 만든다. 그러면 그 사탕들이 포봇! 파밧! 눈부신 빛을 내며 터지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예쁜지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된다. 판마다 터뜨려야 하는 사탕종류와 숫자가 정해져 있고, 그 목표 점수를 다 채우면 다음 판으로 넘어간다.
체스나 바둑 같은 전략 게임처럼 보이지만 사탕이 터진 후 다시 채워지는 사탕이 어떤 것이 나올지 알 수 없기에, 두뇌대결이라기보다는 운에 따르는 쪽이 더 어울리는 게임이다.
이 게임이 나온 해는 고향인 서울을 떠난 해이기도 하다. 교육회사에서 디자인과 홍보업무를 하다가, 전라남도 순천에 있는 프랜차이즈 학원의 선생님으로 가게 되었다. 창의적으로 잘한다며 칭찬 일색이던 내 업무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현실을 알게 된 충격과 함께, 회사가 잘될 수 있다면 어디에서 일을 해도 괜찮다고 여긴 애사심 때문이었다. 몇 달 전 홍보지원 업무로 왔다가 들린 순천만에서 황금빛 갈대숲을 보고는, 여기에 살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도 한몫했으리라. 우리 교육콘텐츠의 힘을 전해보리라는 포부가 컸고, 한편 개인적으로는 독립의 기회였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시작. 자유와 책임이 온전히 존재할 괜찮은 선택이라 여겼다. 크게 재고 따질 것 없이 게임의 두 사탕 위치를 바꾸듯, 손바닥 뒤집듯 쉽게 나는 사는 곳을 옮기고, 하는 일을 바꿨다.
‘캔디크러쉬사가’를 만드는 회사에는, 한 수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곧바로 예측하는 알고리즘이 있겠지. 빨강 사탕 말고 파란 사탕을,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으로 옮겼다면 어떤 일이 앞으로 벌어질까. 과연 이 판을 이번에 깰 수 있을까? 두 개 밖에 안 남은 하트를 그대로 간직한 채 다음 판으로 넘어갈 수 있을까? 2012년 그때의 내가 내 앞에 펼쳐진 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어떤 수를 두어야 이 판을 깰지 알았다면 어땠을까. 나는 최선이었을까? 더 잘했다면? 더 현명하고 더 아름다웠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2년 반쯤 뇌교육 선생님으로 살며 그리 성공적인 결과를 가지지 못했다.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해 카드비를 카드론으로 막으며 수개월을 버텨냈고,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을 때마다 아르바이트나 단기 강의의 기회가 생기며 끝을 모르겠는 다음 판을 이어가고 있었다. 얼마 전 캔디크러쉬사가를 하며 옛날 그 시절을 떠올렸다. 수업을 어떻게 늘려야 하는지 모르겠고, 같이 시간을 보낼 사람조차 없어 외로운 시간. 밝고 조금 북적대는 공간에 나를 데려다 놓고 캔디크러쉬사가를 했다. 누군가에겐 바쁜 하루 속 잠깐의 여유일 수 있을 게임이지만 그때의 나에겐 여유가 있어 하는 건 아니었다. 머릿속은 복잡한데, 현실에서 무언가 생산적인 걸 떠올리거나 할 수가 없어서, 폭죽 터지는 그 작은 공간을 들여다보고만 있던 그때가 내 모습이 선명하다.
순천에서 마지막 기회처럼 다가온 교육청 지원의 사업에 참여해 강의를 했다. 관내 대부분의 초등학교에서 열린 특강이었다. 사교육이 아니라 공교육에서 뇌교육을 한다니 가슴 뛰었다. 학생들의 후기도 훌륭했다. 그런데 그게 황당한 이유로 중도 하차되며 더이상 뇌교육이란 이름으로 수업을 하기 어렵게 되어버렸다. 그 사건을 수습하는 중에 급하게 연 심포지엄에 올라 교육사례 발표를 했다. 하지만 하던 일은 더이상 상황이 좋아지진 않았다. 다만 내겐 행운처럼 그 무대를 계기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반년만에 결혼을 했다. 곧 세 가족이 되어 새로운 인생의 판이 시작되었다. 아니, 새로운 게임이라 해야 되려나.
하트가 무려 네 시간이나 무한 제공되는 이벤트가 생겼다며 남편이 건네준 폰으로, 차마 내 폰에 깔기엔 너무나 중독적이라 피하는 그 게임을 한다. 남편이 게임을 하는 방식을 보면, 온전히 게임 속에 들어가서 있는 것 같다. 판을 깨려는 목적이 뚜렷해 전략을 짜고 금을 모은다. 게임할 때 아무 생각도 안 난다고 하는데, 그게 참 부럽다. 나의 게임 스타일은 그냥 폭폭 터지는 예쁜 광경을 보려 함이다. 어차피 머릿속의 생각은 멈추어 주질 않으니 잠시 그 생각 뒤에 물러서서 다른 시간을 보내고자 함이다. 폭죽 같은, 축제 같은 시간이 간절할 때가 있기에.
내일 사이버대학교 가을학기가 시작된다. 내겐 네 번째 대학이다. 일하는 나를 열망하면서 다시 공부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 초라한 것만 같은 내가 못마땅하다. <1초 만에 고민이 사라지는 말>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페이지마다 재치 있는 해답의 말이 들어있는데 이번에 펼친 부분에서 이런 글귀가 나왔다.
‘대단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풀을 뜯는 염소처럼 살다 가도 괜찮아요.’
피식 웃음 났다가, 풀 뜯는 염소처럼 무료 게임을 마구 해대는 내 모습에 울컥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대단하길 바랐나 보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처럼 견디는 중 인걸까. 다만 눈 안에 팟, 파박. 예쁘고 황홀한 폭죽을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