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2월이 되면 "세월이 참 빨리 간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50대는 시속 50킬로미터, 60대는 60킬로미터, 70대는 70킬로미터......, 나이가 많을수록 세월 가는 속도가 빨라진다고들 합니다. 시골에서 들로 산으로 뛰놀던 어린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환갑을 훌쩍 넘겼습니다.
"인생이 뭐 있나? 먹고, 마시고, 즐기며 편하게 살면 되지. 뭐 하러 힘들게 살아?"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저도 그 말에 공감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살아왔으니까요.
55세가 될 때까지 저는 흥청망청 살았습니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직원들과 산으로 들로 다니며 술을 마셨고, 늘 취해있었습니다. 모처럼 찾아온 일요일, 숙취에 시달리는 저에게 아들이 다가와 조르곤 했습니다.
"아빠, 제발 공차러 가자. 친구들은 아빠랑 공차고 논단말이야......, " 하지만 저는 귀찮다며 친구들하고 놀라고 내쫓기 일쑤였습니다. 결국 아내는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가 한동안 별거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술에 취해 잠이 든 저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눈을 떴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벽을 더듬어 겨우 스위치를 찾아 켰습니다. 출입문을 찾았지만, 이미 술집 주인이 퇴근하며 문을 잠가버린 뒤였습니다. 휴대폰은 방전되었고, 카운터의 전화기는 홀 내에 내려진 철장 셔터 너머에 있었습니다. 꼼짝없이 종일 굶은 채로 갇혀있어야 했습니다. 오후 4시, 출근한 주인은 저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회사와 집에서는 이미 큰 소동이 벌어진 뒤였습니다.
어렴풋이 전날 밤이 떠올랐습니다. 지하 룸에서 일행들과 술을 마시다가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잠시 빈 룸에 들어가 쉬었다가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 했는데, 그만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술집 주인은 제가 있는 줄도 모른 채 퇴근해버렸습니다.
이제 아들은 장성해서 며느리, 손주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가끔 보내오는 사진을 보며 "아빠, 아들은 이렇게 키우는 거야"라고 시위하는 것만 같습니다. 사진 속 아들 얼굴을 볼 때마다 어릴 적 함께 놀아주지 못하고, 제대로 된 아버지 역할을 하지 못해서 가슴 한켠을 아프게 합니다. 부모도 아들도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어 55세에 술을 완전히 끊었습니다. 매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며, 독서와 일기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환갑이 지난 지금, 얼마나 더 살지는 모르지만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조금이나마 스스로에게 덜 미안해지기 위해서입니다.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아들아, 인생은 단 한 번 뿐이란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라.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고 최고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거라."
늦게나마 좋은 아버지가 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진작 그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지금이라도 세월을 아끼며 살아가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