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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글 Nov 15. 2024

글쓰기 원칙 하나, 구체적으로 쓰기

구체적으로 써야 한다는 말, 책이나 강의에서 한 번쯤 들어 보았을 겁니다. 왜 구체적으로 써야 할까요?

‘지식의 저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쓰는 사람 입장에서 잘 아는 내용이라 읽는 사람도 어느 정도는 알 거라고 짐작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작가 자신이 잘 아는 내용이라고 해서 자세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다 빼고 대충 쓰면, 독자는 무슨 내용인지 이해할 수가 없겠지요. 글 쓰는 의미와 가치 자체가 사라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예비 작가 중에는 ‘퉁치는 표현’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부 싸움을 했다’라고만 쓰면, 독자는 그런가 보다 넘어갈 수밖에 없겠지요.      

아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누가 사업 시작하자고 했냐, 당신이 하자고 했잖아! 서로 같이 힘을 합하자고 해 놓고 나 몰라라 하면 어쩌자고!” 나도 더 이상 참기 힘들었다. 서류뭉치를 아내 앞에 집어던졌다. 더 큰소리도 되받아쳤다. “네가 할 일이 있고 내가 할 일이 있지. 네가 할 일까지 나보고 다 하라고 하면 내가 무슨 수로 그 많은 일을 다 감당할 수 있겠어!” 방에 있던 아들이 놀라 밖으로 뛰쳐나왔다.      

'부부 싸움'이라고 단순하게 표현할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써야 합니다. 아내가 무슨 말을 했고 나는 어떻게 받아쳤는가, 그래서 서로 어떤 분위기로 어떻게 소리를 질렀으며 아이들은 어땠는가 싹 다 보여주는 거지요. 독자가 읽고 '아, 지금 이런 상황이구나'라고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짜증 났다'라고 쓸 게 아니라, 그 순간 무슨 일이 있었고 나는 어떤 표정으로 무슨 생각을 했으며 그래서 어떤 행동을 했는가 보여주어야 합니다. 작가가 '짜증 났다'라고 직접 설명하지 말고, 독자가 읽고 '아, 지금 작가가 짜증이 났구나'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쓰는 건 쉽습니다. 아름다운 금수강산 대한민국이라고 쓰면 되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써야 할 것은 대한민국 안에 내 고향 하동, 하동 중에서도 실개천이 흐르는 우리 동네, 우리 동네 중에서도 우리 집, 집 속에 가족 하나, 가족 중 둘째, 둘째 중 사건 하나, 사건 중 마음 하나, 마음 중에 찰나의 느낌을 씁니다. 예시를 들거나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씁니다. 작가가 고생하면 독자는 편해집니다.

“차를 타고 공원에 갔다”라고 쓰지 말고, “63번 시내버스를 타고 어린이 대공원에 갔다”라고. 독서 모임 J 선배 부부와 “저녁을 먹었다”라고 쓰지 말고, “두구동 감나무집에서 양파, 대파, 부추, 버섯이 잔뜩 들어 있는 생오리고기구이를 먹었다”라고. “여행을 다녀왔다”가 아니라 “거창 수승대 국화꽃 축제에 아내와 함께 다녀왔다”라고. 구체적으로 써야 합니다. 


“남자와 데이트를 했다.” 이렇게만 쓰면, 독자는 '남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계속 글을 읽어야 합니다. '남자에 대한 설명'을 구체적으로 써주어야 한다는 말이죠.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죠. “친구 소개로 대기업 S 회사에 다니는 남자를 만나러 낙동강 변에 있는 H 카페에 갔다. 강변 창가에 친구가 얘기했던 옷차림 남자가 앉아있었다. 다가가 인사했다. 키는 180센티미터쯤 되어 보였다.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어깨가 넓었다. 감색 양복에 체크무늬 넥타이를 맺다.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나를 보고 해맑게 웃었다. 하마터면 핸드백을 놓칠 뻔했다.”     


지난달 정철 작가가 진행하는 카피라이팅 수업을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글 쓰라며 다음과 같은 예시를 들었지요. ‘고개를 끄덕였다를, 4밀리미터 정도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을 늘어놓았다를, 양동이 세 개에 담길 만큼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천박한 여자애를 안 다를, 머리는 길지만 천박한 여자애를 이백오십 명은 알아’로. 예문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습니다. 구체적으로 쓰면 독자가 좋아하는 재미있는 표현을 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리해 보면, 구체적으로 쓴다는 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첫째, 차가 아니라 63번 시내버스라고 이름을 붙여주거나 상황을 보여주어야 하고요. 둘째, 독자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하나 차근차근 친절하게 설명해 주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글을 쓸 때마다 위 두 가지를 생각하고 쓰면 예전보다 훨씬 글이 좋아질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핵심은 항상 독자를 위하는 마음입니다.     


가수 정태춘의 <92년 장마, 종로에서> 노래를 가사와 함께 들어보면 구체적 글쓰기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모두 우산을 쓰고 횡단보도를 지나는 사람들. 탑골공원 담장 기와도 흠씬 젖고. 고가 차도에 매달린 신호등 위에 비둘기 한 마리. 건너 빌딩의 웬디스 햄버거 간판을 읽고 있지. 비는 내리고. 장맛비 구름이 서울 하늘 위에. 높은 빌딩 유리창에. 신호등에. 멈춰 서는 시민들 우산 위에. 맑은 날 손수건을 팔던 노점상 좌판 위에. 그렇게 서울은 장마권에 들고. 다시는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https://www.youtube.com/watch?v=AJfvq8fVRX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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