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세계의 한계가 내 언어의 한계다》. P168
"모든 것을 하나로 만드는 언어폭력,
그것이 가장 거칠게 표출되어
있는 것이 바로 '사전'이다."
-비트겐슈타인
<내 세계의 한계가 내 언어의 한계다> 김종원 작가 책
필사
"사랑과 시간 그리고 원칙 등
내가 목숨 걸고 싸워서 지킨 것이
내가 추구한 삶을 증명한다.
그 시작은 내 삶의 사전을
하나 갖는 것부터다."
우리는 무언가를 '안다'고 쉽게 말한다. 하지만 정말로 아는 것일까? 작가는 선명한 기준을 제시한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타인에게 설명할 수 없다면, 그것은 진정한 앎이 아니라고.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과 실제로 아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표면적 이해에 불과했다.
작가는 '떡볶이'를 예로 들며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이 단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떡볶이의 주인공을 뭐라고 생각하는가?"
"그럼 나는 이 단어를 뭐라고 정의해야 하는가?"
세상의 정의에 따르면 떡볶이의 주인공은 '떡'이지만, 작가에게는 '어묵'과 '대파'가 주인공이다. 그래서 작가의 사전에는 떡볶이가 '어묵대파볶음'으로 정의한다. 이처럼 나만의 사전을 만든다는 것은 세상의 표준 정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 경험과 관점에서 재정의하는 작업이다.
비트겐슈타인에게 사전은 하나의 폭력과도 같았다. 모두에게 같은 생각을 주입하고, 같은 방향으로 해석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진정한 앎을 추구한다면, 표준화된 정의를 넘어 자신만의 정의를 찾아야 한다.
내 삶의 사전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이것이 내 생각과 가치관을 기록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책을 쓰든, 일상을 기록하든, 그 과정에서 나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명료화된다.
글공부를 할 때 '강제 연결성'을 배우고 연습한 적이 있다. '강제 연결성'은 무작위로 선택된 두 개념을 연결하여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이 과정은 표준화된 사고에서 벗어나는 훈련이다.
내 책상 앞에 있는 '모니터'로 강제 연결을 해보면, '모니터는 우주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왜냐하면 모니터는 시공간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부산에 앉아 뉴욕 거리를 실시간으로 보고, 수백 년 전 르네상스 예술을 감상하며, 한 공간에서 수천 명과 동시에 대화할 수 있게 한다.
만약 10명에게 같은 실습을 하면, 모두 다른 내용의 글이 만들어질 것이다. 각자의 경험, 관점, 가치관이 반영된 10개의 서로 다른 사전이 탄생하는 것이다.
또 작가는 "설명할 수 없으면 아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나는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정말 제대로 알고 가르쳤을까? 이 질문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앞으로 강의를 준비할 때마다 나는 이런 질문을 해 보기로.
"내가 이 내용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어떻게 하면 더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수강생이라면 어떤 느낌이 들까?"
내 언어가 내 세계를 만든다.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만큼만 세상을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나만의 사전을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단어를 재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내 세계의 경계를 확장하는 일이다.
내 사전이 곧 책이다. 내 언어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내 사전이란 남이 정의한 글이 아니라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삶을 내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내 언어가 풍부해질수록, 내가 그려낼 미래의 가능성도 더욱 넓어질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