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미쳐가는 것 같습니다.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않고 계속 히죽히죽 웃습니다. 오전 내내 휴대폰만 들여다봅니다. 저와 처음 만났을 때 이후 저렇게 행복하게 웃는 모습은 처음 봅니다. 그러다 이내 눈물을 글썽이고, 또 해죽해죽 웃습니다. 고개를 앞뒤로, 좌우로 끄덕이기도 합니다.
아들이 손녀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갓 태어난 손녀!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저에게는 아들 둘이 있는데, 첫 손주는 아들이었습니다. 딸 같은 아기자기함은 없지만, 손자도 물론 귀여웠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늘 손녀에 대한 작은 바람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고, 한 명만 출산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당연히 우리 아들도 둘째를 낳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아들 직업이 기간제 교사라 월급도 변변치 않습니다. 혼자 벌어서 반려견, 손자, 네 식구가 먹고사는 데 벅찰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지요.
아들은 충남 서산에 삽니다. 부산에서 천리 길. 가는 데만 반나절이 걸립니다. 지난해 아들네 집에 방문했는데 며느리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어머님, 이도(손자) 동생을
가지려고 해요.
힘닿는 데까지 낳으려고요."
"으~응 그래..."
아내는 말을 얼버무렸고,
우리는 서로 마주 보았습니다.
그날 밤, 아내가 잠을 자지 않고
뒤척였습니다.
"여보, 잠 안 와?"
"아니."
아내는 며느리 말을 듣고 걱정되는
모양이었습니다.
"요즘 애 키우기가 힘든데,
어떡하려고 그러는지..."
"걱정하지 마.
제 먹을 것은 갖고 태어난다잖아."
"그건 옛날 말이고."
사실 나도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들부부 선택을 존중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로부터 1년 후, 손녀 '이레'가 우리 집안에 선물로 왔습니다. 아들이 병원에서 보내온 손녀 사진을 보고 아내가 실성한 것처럼 행복해합니다.
아내와 30년 넘게 살다 보니 함께 있어도 웃을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나도 아내도 실성한 사람처럼 히죽거립니다.
"여보, 빨리 와봐! 이레다!"
며느리가 보내온 영상통화입니다. 둘이서 서로 보려고 고개를 들이밀고 휴대폰 속 손녀를 봅니다. 휴대폰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이요. 손녀는 하품도 하고, 빙그레 웃는 모습도(우리 눈에는) 보입니다.
당장 올라가고 싶은데, 아직 오면 안 된다고 합니다. 아들, 며느리의 결재가 떨어질 날만 기다립니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저는 2남 4녀인 집안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제 위로는 형과 누나 넷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형이 장손 낳기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첫째도 딸, 둘째도 딸이었습니다. 그리고 형수가 셋째를 가졌습니다. 셋째 출산하는 날(집에서 자연분만) 어머니는 탯줄도 자르지 않고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어머니는 그토록 원하던 장손을 보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어머니가 그토록 원했던 손자가 우리 집에 두 명, 증손자까지 세 명이 태어났습니다. 어머니 한을 풀셈이지요. 그리고 이제는 선물로 손녀까지 점지해 주신 것 같습니다.
요즘은 나도 모르게 해죽거립니다. 거리에서, 버스에서, 도서관에서, 글을 쓰다가도, 밥 먹다가도 말이죠. 며느리가 보내온 손녀 사진을 시시때때로 봅니다. 세 살배기 손자가 오빠 노릇을 하는 모습도 무척 귀엽습니다. 예전에 선배들 프로필에 손주 사진으로 도배했던 걸 보고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어머님, 힘닿는 데까지 낳을래요."
그래! 며늘 아가, 힘닿는 데까지 낳아라. 우리도 힘닿는 데까지 도울게!
인생에서 아이들이 가져다주는 기쁨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경제적인 걱정,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있더라도, 가족의 웃음소리가 집안에 가득할 때의 행복은 그 어떤 부담도 이겨낼 수 있게 해줍니다. 우리 손녀 '이레'는 단순한 새 가족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기쁨과 사랑을 가져다준 작은 기적입니다.
우리나라 '인구문제'가 심각하다고 합니다. 제 이름이 '인구'입니다. 적어도 우리 집은 예외인 것 같습니다.
오빠가 입고있는 실내복을 보니 여동생을 든든하게 지켜줄 히어로가 되려나봅니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