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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망토 채채 Jul 02. 2020

여자는 꽃이라고?

너의 꽃 같은 얼굴에 살짝 묻은 된장이 향긋하게 돌아와

수많은 예술에서 여성을 '꽃'으로 자주 비유해왔다. 주로 그 수식어들은 '꽃 같이 아름다운 외모', '꽃처럼 향기로운 그녀의 머릿결' 등등 많은 여성의 신체, 혹은 나이에 붙는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노래에서도 젠더 권력을 볼 수 있고, 여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볼 수 있다.




|의문점이 남는 노래


세상에서 제일 예쁜 꽃으로
넌 피어날 거야
아 너의 그 웃는 모습이
정말 너무 꽃 같아
...
이렇게 안길 수 있게
가까이서 피어나
내 곁에서 피어나
수만 가지 꽃으로
새빨간 너의 입술
장미꽃 같아

- 유재환, 꽃같아 (feat. 버벌진트) / 작사 유재환 (링크)


이 노래는 사랑 고백 노래로, 연인의 아름다움을 꽃에 비유했다. 언뜻 들으면 상대 연인이 정말 예쁘다는 노래 같다. 하지만 이 사랑에는 조건이 있다. '안길 수 있게, 나의 가까이'에서 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언제나 내 옆에만 있으라는 주문이며, 그 '예쁨'이 사라진다면 존재가치도 없어진다.


생각해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왜 세상에서 제일 예쁜 꽃인 '나'는 그의 곁에서 피어야 하는가? 왜 안길 수 있을 정도로 작아야 하는가. 잘 공감이 가지 않는다. 즉, 이 꽃이란 온갖 비유들은 그의 함께일 때, 외모가 그의 눈에 예쁠 때만 가능하다. 나는 나로서, 그 자체로 충분한데 말이다. 


큰 생각하지 않고 관습적으로 써왔던 표현들을 노래로 만든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의문을 제기할 여지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꽃이긴 한데 말이야


현아가 싸이 소속사인 '피네이선'으로 옮기고 처음 발표한 노래다.


I just wanna be your flower
새빨개요 난
향기로운 향기로 벌떼들이 꼬여
혹 시들어도 don't you worry
다시 피잖아
피어나는 내 color 시선들이 모여
빤히 나를 바라봐 그런 관심이 난
싫지 않아 싫지 않아


- 현아, Flower shower / 작사: 싸이(PSY) (링크)


옷은 화려하게 입었을지라도, 현아는 이 노래에서 철저하게 대상화된다. 작사가가 남자라는 점도 그 원인 중 하나다. 현아는 이 노래를 부르며 스스로 다른 여자들의 '질투'를 받고 남자들의 시선을 즐긴다. 이는 페미니즘에서 계속 다뤄온 외모 담론과도 직결된다.  다른 여자들과는 달리 '새빨간' 자신임을 숨기지 않고 스스로 성적 대상화되기를 자처한다. 그녀는 남자들이 자신을 꽃이라고 여기고 달려드는 대상화된 객체로서의 자신을 '싫지 않다'라고 말한다. 외모, 몸매가 결코 권력이 될 수 없음을 우리는 알고 있는데 말이다.



비슷한 듯 다른 노래를 살펴보자. 

나 말이야 
못다 핀 꽃 한 송이야
그런 날 피워낸 sunshine 
매끄러운 motion 
chemical blue ocean


- 가인, 피어나 / 작사 김이나 (링크)


이 노래는 당시로서는 꽤나 파격적인 콘셉트와 가사였는데, 아마 여성이 자신의 욕망을 표현한다는 것이 낯설게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위의 곡과 같이 '나=꽃' 임을 말하고 있지만 그 주체는 엄연히 다르다. 나는 너를 만난 기쁨이 그만큼 크고, 그 주체로서 내가 느끼는 이 사랑을 마음껏 표현하고 싶다는 것이다.


시선 따윈 알게 뭐니
수군대는 쟨 또 뭐니
넌 내가 선택한 우주
안아줄래 would you?
니 안에 숨게





|꽃처럼 아름다운 외모는 누굴 위한 것일까


꽃처럼 아름다운 여성들은 그럼 행복할까? 외모가 정말 권력일까? 그랬다면 고 구하라, 설리 님이 겪었던 슬픈 일들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래 노래는 힙합이다. 화자는 남성이고, 좋아했던 한 여자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


지나가던 길옆에
한 송이의 꽃을 꺾어
그 향기와 색감에 반한 많은
남자들은 헷갈려하다
앞을 못 봐서 자꾸 넘어져

- 나플라(nafla), 꽃 / 작사: 나플라


그 남자는 '예쁜'여자를 좋아했다. 그리고 예쁘니까 인기도 많다. 하지만 그들 세계에서는 '꽃뱀'에 불과하다. 왜냐? 유혹해놓고, 헷갈리게 했으니까. (제발 착각은 금물이다. 친절과 호의를 혼동하지 말자.)


한두 살 오빠보단
비싼 아저씨
에게 open up wide
아무 말 없이
접시 채우고 몸보신해
서로만의 benefit


그런 예쁜 여자는 돈을 위해 나이 차가 많은 남성과 관계를 맺는다고 한다. 물론 이 곡은 그의 진솔한 경험을 담은 노래일 수 있다. 하지만 '꽃뱀'이라는 프레임으로 여자를 욕하는 노래에 공감할 수 있는 정상 범주의 여성은 몇이나 될까? 소위 말하는 스폰이니 뭐니 하는 관계, 분명 옳지 않다. 하지만 그게 이 여자가 혼자 벌인 잘못일까? 


이제 '여자는 외모, 남자는 권력 혹은 돈'. 이런 이분법적인 등가교환은 유효하지 않음을 말하고 싶다. 아직도 많은 예능프로그램에서는 결혼을 부추기고, 남자 나이가 많아도 능력이 있어도 된다며 어린 여자를 소개해달라고 거리낌 없이 말한다. 시즌 3까지 방영된 <하트 시그널>도 전형적이다. 여성들의 직업은 모델, 대학생, 연예인 지망생이고 아닐지라도 화려한 외모를 갖추었다. 반면 남자 출연자들에게 요구되는 1순위는 능력이다. 이런 연애 프로그램의 구도만 봐도 우리는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뭘 주입하는지 알 수 있다. 여자는 능력보단 외모라며 말이다.



너의 꽃 같은 얼굴에 살짝
묻은 된장이
향긋하게 돌아와
...
나이가 들수록
더 구수 해지는 냄새
곧 서른
You're gettin' old



그 여자는 결국 '된장녀'로 결론 난다(된장녀는 한국에 존재하는 수많은 여혐 단어 중 하나다.).

한국의 모든 여자에 해당하는 게 아니라 그 잘못된 행태를 일삼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건데 왜 모든 여자들이 불편해하냐는 한 음원사이트의 댓글을 봤다.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이건 여권과도 관련 있는 문제기 때문이다. 비뚤어진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니까 말이다.


이 노래에서 난 두 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첫째, 여성에 대한 잘못된 시각이다. 예쁘다고 찬양할 땐 언제고, 만나주지 않으면 꽃뱀이고 된장녀인가? 예쁘지 않으면 무시할 거면서. 


둘째, 이 사회가 여성을 가스 라이팅 하는 방식이다. 외모로 검열하고, 나이 프레임을 씌운다. '너 이제 곧 서른이야'라는 나이 공격은 유독 여자한테 적용된다. (인생은 60부터)  여성들은 너무 많은 것들로 품평당하고 스스로를 검열해왔다. 그래서 이 노래를 더욱 다루고 싶었다. 


이 노래는 제목을 바꿔야 한다. "나랑 안 만나주는 28살 여자에게 차인 이야기"




나는 시들어버린 꽃이 되긴 싫어 I'm the tree



솜털이 떨어질 때 벚꽃도 지겠지
나는 져버릴 꽃이 되긴 싫어
I’m the tree


- AOA, 너나 해 (퀸덤 ver.)  (링크)


여자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경제 활동을 하고, 공부를 할 수 있는 세대다. 삶의 성취는 누구에게나 너무나 자연스러운 이 세대에서 우리는 꽃이 되기를 거부한다. 누구에 의해 평가받고, '꺾이는' 존재는 싫다. 나는 나무고, 구름이고, 바다고, 산이다.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우리는.



이 세상이 더 이상 낙원이 아니라도
꽃은 피어나
매일 아프고 두려운 일들에 짓밟혀도
꽃은 피어나
멍든 가슴에 오래 맺힌
꽃 터지듯 병든 이 세상에
너의 향기로 너의 몸짓으로
디디고 일어나
피어나


- 심규선(Lucia), 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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