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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망토 채채 Sep 06. 2020

오히려 난 더 커지고 싶어

힙합의 만연한 여성 혐오에도 불구하고


왜 블랙넛을 옹호하는 걸까?


2017년, 래퍼 블랙넛이 고소된 사건이 있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본인의 노래 가사에서 한 여성 래퍼를 성적으로 수차례 희롱했기 때문이다. 그 가사 수준은 상당히 저급하기 때문에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too real, 

indigo child) 그뿐만이 아니라 4번의 공연에서 희화화하는 퍼포먼스까지 해왔다. 이외에도 개인 SNS에 나는 언니를 존경해 이런 식의 멘트와 김치 국물을 묻혀 다시 한번 조롱까지 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전혀 반성하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여 법정싸움으로 번졌다.


1년 넘게 법적 공방을 벌여온 끝에 블랙넛은 모욕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1심은 "표현의 자유는 헌법상 권리로 두텁게 보호돼야 하지만 타인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경우까지 무제한으로 보호될 수 없다"라며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160시간을 명령했다.


블랙넛은 1심 판결에 불복, 법원에 항소장을 접수했다. 2심도 "블랙넛이 한 모욕적 표현은 힙합 음악의 형식을 빌렸을 뿐 아무런 정당한 원인도 맥락도 없는 성적 희롱이나 비하에 불과하다"며 1심 판단을 유지했다. 블랙넛은 2심 판결에도 불복, 상고장을 접수했었다.

(출처: https://www.ytn.co.kr/_ln/0117_201912120840062783 )


그리고 결국 작년이 되어서야 대법원에서 원심 판결을 유지하여 유죄 확정이 났다. (링크)


사실 그는 전적이 있다. 여성 혐오를 나타내는 말들을 내뱉기 일쑤였고, 그의 항변은 아래와 같았다. 표현의 자유이고, 힙합에서 허용되는 '디스'의 일부일 뿐이라고.


음악에서 검열이란 민감한 이슈이지만, 그로 인해 상처를 받거나 비하되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음악이라는 이름을 달고 성희롱, 약자 혐오를 마음껏 '표현'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그건 배설이다. 심지어 멋도 없다. 주제 의식이 희미한 노랫말은 머물 곳이 없다.


몇 년 전, 미국 래퍼 로직(Logic)의 노래를 듣고 좋은 충격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그는 주로 여러 종류의 차별을 반대하는 주제의식이 담긴 노래를 한다. 그렇다고 그가 힙합이 아닌가? 욕이 없고, 마음에 울림을 주는 가사가 있는 노래는 힙합이 아닌가?



I know where you been, where you are, where you goin' (네가 어디 있었는지, 어디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아)
I know you're the reason I believe in life (내가 삶이란 것을 믿는 이유는 바로 너야)
What's the day without a little night? (조금의 밤이 없다면 낮이 어디 있겠어?)
I'm just tryna shed a little light (난 그저 조금의 빛을 비추려 해) 
It can be hard (힘들 수 있어)
It can be so hard (정말 힘들 수 있어)
But you gotta live right now (하지만 넌 지금 당장 살아야만 해)
You got everything to give right now (넌 지금 당장 나눌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졌어)

- Logic, 1-800-273-8255 (Feat. Alessia Cara, Khalid) 가사 해석 출처






왜 피해자만 고통을 받는가?


약자 혐오, 여자 혐오, 혹은 상대방에 대한 무분별한 욕설은 배설이다. 청중의 마음을 움직일, 소구 할만한, 청중을 가정하고 쓴 '음악'이 아니다. 최소한의 예의 없이, 개념 없이 쓰인 말들은 누군가의 마음에 박힌다. 누군가의 생각에 영향을 준다. 누군가에게 분노를 준다.


이 사건도 이 맥락에서 발생했는데, 대체 왜 피해자가 욕을 먹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블랙넛이 유죄 판결을 받아서? 애초에 그런 저급한 짓을 안 하면 되잖아. 영화 <밤쉘>에서 본 장면이 떠오른다. 가해자는 발 뻗고 자는데 피해자는 오히려 자기 검열을 하며 작아지는 것.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성범죄 사건에서도 피해자인 김지은 씨를 욕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체 왜? 그 어떤 사람이 전 국민에게 '나 성범죄 당했습니다'라고 밝히고 싶을까. 최근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도 그렇고, 변치 않는 사실은 존재한다. 성범죄 피해가 정치적인 수단으로 이용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키디비가 이번에 발표한 곡이 더욱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지 출처: 벅스(https://www.bugs.co.kr)


그 지난한 법정 싸움을 하는 동안, 몸도 마음도 지쳤을 거고. 사람들은 괜찮은 거냐고 물어보겠지. 그 물음에 대해 그녀가 내놓은 대답은, "응. 오히려 난 더 커지고 싶어."다.


사람들은 날 내려다보며 물어 Are You Okay?
이곳에 남아 나를 올려보내줄 오직 한 사람은 It's Me And Me


오히려 난 더 커지고 싶어 Big Girl
I'm Not Bothered
고난을 먹고 자라지
난 오히려 좋지

- 키디비, 오히려 (작사: 키디비)



당당하게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얼마나 큰 용기를 주는지 그녀는 알까. 최근에는 R&B 싱어로 거듭나며 <복면가왕>에도 나왔었는데, 앞으로 그녀가 더욱더 훨훨 날아갔으면 좋겠다. 잘못한 건 하나도 없으니까. 


유독 성범죄 피해자들한테만 예민하다느니 너에게 문제가 있다느니 하는 공격을 하거나, 가해자의 권력이나 지위를 들어서 협박하는 경우도 자주 보이는 패턴인데 이러한 양상을 보며 한 달 전 본 코르테즈(Alexandria Ocasio-Cortez) 의원 연설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연설 영상 링크)


요약하자면, 미국의 의회에서도, 의회 앞에서도, 다른 기자들 앞에서도 의원이 다른 의원을 성희롱하고 웃음거리로 낮추려는 일이 발생했다. 심지어 단 둘이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숨 쉬듯 여성을 혐오했다면, 낮춰서 생각했다면 이렇게 공적인 공간과 사람들 앞에서도 그런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을 수 있을까. 여혐은 공기처럼 존재한다. 그만큼 사회에 스며들어 있다. 이걸 지적하는 일은 예민한 일이 아니다. 누구나 불편했지만 이제까지 말하지 못해 왔던 것일 뿐이다. 



인상적인 몇 마디를 옮겨본다. 출처

"제가 이건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요호 의원의 말은 제게 깊은 상처가 되지도, 저를 꿰뚫지도 않았습니다. (..) 저는 요호 씨가 사용한 것과 같은 말을 제게 했던 남자 손님들을 식당에서 내쫓았고, 뉴욕의 지하철을 타면서 같은 종류의 괴롭힘을 겪었습니다. 이는 전혀 낯선 일이 아니라는, 바로 그 사실이 문제입니다.

요호 씨 혼자 있었던 게 아닙니다. 그는 로저 윌리엄스 의원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걷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단순히 한 번 일어난 일이 아님을 보게 된 것이 바로 그때였습니다. 이건 문화입니다. 이런 언행을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가는 문화이고, 여성을 향한 폭력과 폭력적인 말을, 그런 언행을 지지하는 권력구조 전체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문화입니다. (...)

인간 존엄성을 해치는 언어는 항상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이 하나의 패턴으로 반복되는 것을 목도하고 있는 중입니다. 여성들을 향한 태도와 타인의 존엄성을 말살하는 패턴입니다. (...) "



사회에서 부딪히는 혐오. 그리고 이제는 음악에서까지 성차별적인 폭언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 어떤 이유로도 약자에 대한 혐오는 정당화될 수 없다. 그것을 담는 그릇이 말이든, 랩이든, 행동이든.



I'm Making Better Myself
내 세상을 Imagine
그대로 Let Me Be
I Will FLOUR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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