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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망토 채채 Feb 07. 2024

아주아주 많이 아꼈으니까,

7년을 다닌 직장을 비로소 보내주다


며칠 전, 퇴사한 지 반년도 더 된 전 직장에서의 소식이 들려왔다. 나의 후배들이 승진했다는 소식. 이 회사로 말할 것 같으면, 내가 7년이란 시간 동안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 보상은 제대로 받지 못한 곳.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누가 가져간다는 그 속담처럼 말이다. 좋은 사람을 만난 것과는 별개로 회사 다니는 7년 동안 이래저래 힘든 일이 많았다. 야근과 주말출근 등으로 몸도 마음도 지치고, 이해가 안 되는 일 투성이고, 사람들한테 무시도 당하고. 우리 기수는 개편된 인사제도의 희생양이 되어 스트레이트로 과장 승진을 해도 1년 반을 손해 보는 구조였다. 즉, 나와 1년 반 차이나는 후배가 과장 승진을 한 것인데 그 후배가 얄미운 것이 아니라 그 이상한 제도를 만든 회사가 정말 몸서리치도록 싫었다. 이토록 내가 멀어졌는데도 어쩜 그렇게 나에게 아직까지 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줄까.



내가 그토록 바랄 땐 나에게 준 적 한 번도 없었는데

마치 전 남자 친구가 잘 된 소식을 들은 느낌과 같이 기분 나쁜 충격이었다... 이미 나는 다른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모든 걸 감수하고 나왔는데도 말이다. 내가 지금 백수라 상대적으로 비교되어 더 짜증 났던 걸 수도 있다. 만약 계속 다녀서 승진했다 하더라도 6개월 전의 내가 계속 다니지 않았다는 걸 안다. 그때는 그 어떤 걸로도 잡히지 않을 만큼 그곳이 싫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부정적으로 이어져서, 나 말고는 다들 '이렇게까지' 쉽게 잘 풀리는데 나만 왜 이럴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어디서든 열심히 해왔는데 대체 그놈의 '내 자리'는 어디 있는 걸까. 

나는 내 길을 가면 되는 거란 거 너무 잘 알고 있는데, 그냥 그 소식을 듣는 순간 짜증이 났다. 더 이상 휘둘리고 싶지도 않고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도 않은데 말이다. 그러다 문득 이 노래를 듣는데, 뭔가 지금의 내 마음을 너무 잘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나도 어쩌면 허물을 벗고 있는 과정이 아닐까 싶었다.




아주 아주 많이 낡았으니까
이대로 버리기 아깝긴 하지만
아주 아주 많이 아꼈으니까
이대로 버리기 슬프긴 하지만
나한테는 더 이상 맞지 않으니까
이젠 더 이상 찾지 않으니까

- 정우, 허물



솔직히 말하면 나에게 더 이상 맞지 않는 게 맞아

나도 모르게 정말 애증의 관계였던 것 같다. 7년 동안 일하며 나름의 애착이 있었던 것 같고... 내가 일해온 것에 떳떳하기도 하고.. 그래서 더 조직에서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다. 원래 애정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라 하듯이, 난 아직도 감정에 매여있던 것이다.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으려 애를 썼던 그때처럼 나는 그냥 무심코 그 허물을 벗어던지지 못했던 건 아닐까.



모두 비워서 텅 빈 방을 바라보다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다고
모두 게워서 텅 빈 눈을 바라보다
내 안에 무엇이 있었더라 하고

- 정우, 허물


맞지도 않았던 일과 조직문화였는데, 내심 아쉬웠나 보다. 하지만 정말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다. 그 조직에서의 그 자리는. 그리고 허물은 말이다. 어찌 됐든 '자라내면서' '벗어내는' 껍질이다. 무엇이 되기 위해 필요한 과정. 탈피해야만 하는 껍데기. 그 껍데기, 7년간 쌓아왔던 내 안의 무언가를 이제는 보내줘야 할 때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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