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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섭 Sep 24. 2024

아시나요? 메추리강, '순자강'

 '감성의 강', 섬진강 이야기

▲남원에서 흘러온 요천은 곡성에서 섬진강 본류와 만나며 두물머리를 이룬다. 왼쪽 뒤로 남원 고리봉과 문덕봉을 잇는 산줄기가 보인다.


지리산자락의 매화와 산수유가 폭발하듯 피어나려는 즈음,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2월 할매’가 한바탕 춘설을 퍼붓고 갔다. 매서운 꽃샘추위에 얼얼해진 대기는 이내 봄기운에 풀리기는 했지만, 지리산 산줄기는 엊그제 내린 눈으로 아직도 설산의 모습이다.    

 

춘분을 갓 넘긴 날, 남원과 곡성의 경계를 이루는 섬진강을 찾았다. ‘방장제일동천’ 지리산 구룡계곡의 물길을 품은 남원 ‘요천’이 진안 데미샘에서 발원하여 흘러온 섬진강 본류와 만나는 곳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곳의 물길은 ‘순자강(鶉子江)’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오며 많은 이야기를 남기고 있다. 


‘순(鶉)’ 은 다름 아닌 메추라기를 뜻한다. 남원에서는 ‘가을에 떼를 지은 메추라기가 가장 많이 서식하는 강’, 또는 ‘무더운 여름 날, 가을철새 메추라기를 구해 부친의 병을 완쾌하게 하였다는 효성 깊은 아들 이야기’에서 강 이름의 유래가 전해지는데, 곡성에서는 ‘동악산은 봉황이 날아가는 형국이고, 봉황은 메추라기를 보면 멈추기 때문에 북쪽에 순자라는 강이 있다’라며 풍수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런데 남원과 곡성을 오고가던 옛사람들은 어떻게 이 넓고 깊은 강을 건넜을까?   

  

‘남원에서 현주와 말을 타고 순자강으로 오니, 방원량이 먼저 중주원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고, 양동애가 뒤따라 왔다. 마침내 배에 올라 나루를 건너서 말을 타고 7, 8리 정도 가니 강가 언덕에 정자가 우뚝 서 있었다.’    

 

위의 글은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1618년 4월11일), 남원에서 하동 쌍계사 유람을 떠나는 현곡 조위한(1567~1649) 일행이 곡성으로 가기 위해 섬진강을 건너는 장면으로, 그의 글 ‘유두류산록’에 나오는 내용이다. 숙박을 할 수 있는 ‘원(院)’과 배를 타는 나루가 있었던 곳은 남원시 금지면 섬진강변의 상귀마을이다. 강변의 ‘원진정(院津亭)’이라는 현판을 단 마을 정자는 넌지시 이곳의 역사를 전하고 있다. 조위한 일행은 강을 건너 7~8리를 내려가서 ‘수운정’이라는 정자를 만나게 된다.     


강변길을 따라 내려오면 강폭은 훨씬 넓어지나, 물길의 중앙에는 꽤 넓은 퇴적지가 형성되어 강을 가르고 있다. 섬진강 ‘장선습지’를 중심으로 하는 ‘섬진강변 자연생태공원’이다. 강 위에 설치된 통로로 습지에 들어서면 아직도 출렁이는 느낌이 드는 땅바닥에 연록의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건강한 숲을 만나게 된다. 이렇게 땅을 만들고, 뭇 생명들이 터를 잡으며 태어나게 하는 강의 역사(役事)가 외경스럽다.   


 

▲섬진강 두물머리 '장선습지' 


언덕 아래 동산리에 들어서니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고, 내려다보이는 물빛은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르다. 언덕 위로 오르면 ‘영모재(永慕齋)’란 현판이 붙은 아담한 정자가 보인다. 한쪽에는 ‘동산정(東山亭)’이라는 또 다른 현판이 걸려있어, 정자와 재실의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산정은 대규모 보수가 이루어진 듯한데, 아마도 조위한이 말한 수운정은 이곳에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동산정에서 산책로를 따라 마을로 내려오면 강 건너 편으로 정자 2채가 나란히 서있다. 보인당과 횡탄정이다. 어둠이 내릴 무렵 이곳에서 바라보는 동산리의 목가적인 풍경은 한동안 걸음을 떼지 못하게 한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저녁나절 황포돛대를 달고 이곳에서 요천으로 들어서는 배의 풍경을 순강귀범(江 歸帆)이라 하였고, 남원8경에 들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전해진다. 


동산마을에서 강의 하류를 따라가면 ‘침실습지’를 만난다. 요천과 섬진강 본류가 만나는 곳의 습지가 장선습지라면, 침실습지는 한 몸을 이룬 섬진강이 또다시 일구어 놓은 비밀의 정원이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몽환적인 새벽풍경으로 사진작가들에게 잘 알려진 곳이다. 나루와 정자, 그리고 습지가 어우러진 강의 풍경이 옛이야기와 함께 흐르는 곳, 바로 ‘감성의 강’ 섬진강이다.

[2018.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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