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할 듯 만개할 산수유꽃을 그리며
▲산수유사랑공원. 해마다 열리는 '구례 산수유꽃 축제'의 주 무대가 되는 곳이다.
봄의 전령사 복수초, 노루귀 등의 개화 이야기에 뒤이어, 드문드문 남도의 꽃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세상을 얼어붙게 하던 지리산과 섬진강의 겨울을 견뎌낸 그이들도, 한 달 후면 폭발하듯 꽃잎을 틔우고 산자락과 강변을 온통 희고 노란 꽃으로 뒤덮을 것이다. 그런 봄의 풍경이 그리워지는 날, 구례군 산동면 산수유마을을 찾았다.
국도 19호선을 빠져나와 온천과 산수유로 잘 알려진 산동으로 들어서면, 정면으로 지리산 만복대와 종석대를 잇는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 마루금 한가운데 ‘작은고리봉’이라고 부르는 산동 고리봉이 있다. 왼쪽(북쪽)으로 만복대, 오른쪽(남쪽) 종석대로 힘차게 양 날개를 펼친 봉우리와 산줄기의 모습이 헌걸차다.
마을이 산의 동쪽에 있다는 의미로 대부분의 지역에서 산동(山東)이라는 지명을 쓰고 있는데 비하여, 이곳에서는 山洞(산동)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깊은 골짜기를 ‘동(洞)’이라 한 것을 보면, ‘지리산의 깊은 산골짜기’를 일컬음일 테다. 이곳은 마을로 들어서는 길 외 삼면이 모두 산줄기로 둘러쳐져 있어 마을 전체가 깊은 골짜기를 이루는 모습이다. 이 산자락에서 흘러내린 물길이 모여 ‘서시천’의 상류를 이룬다. 이웃 광의면의 구만저수지와 구례읍을 거쳐 섬진강 본류와 합수되는 서시천은, 진시황의 불로초를 구하기 위하여 우리나라로 건너온 서불(서복)이 남해바다를 거쳐 이곳으로 들어왔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전해진다.
‘지리산 나들이장터’까지 잘 조성되어 있는 온천관광단지를 지나, 오른쪽으로 보이는 구례청소년수련관 옆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중동초등학교와 상관마을이 차례로 나온다. 이 마을에는 약 70년 전 벌어진 비극 한 장면이 ‘산동애가’라는 노래로 전해진다. 1948년 11월, 이 마을에 살던 19세의 백부전(백순례)이라는 꽃다운 나이의 아가씨가 좌익혐의로 총살을 당하게 될 오빠를 대신해 죽으러가며 불렀다는 안타깝고 슬픈 이야기가 그 노랫말의 내용이다. 여느 지리산 자락이 그러했지만, 특히 이곳 산동은 여순사건 이후부터 6.25전쟁 기간 동안 빨치산의 입산과 이를 토벌하기 위한 군경과의 대치가 치열했고, 이념을 떠나 그 시기 이곳에 살았던 모든 이들에게 엄청난 상흔을 남긴 곳이다.
상관마을에서 잠시 더 들어서면 산수유 열매 형상을 한 ‘산수유 문화관’이 나오고, 그 뒤 언덕에는 산수유꽃 조형물이 있는 ‘산수유사랑공원’이 있다. 산수유의 꽃말은 ‘영원한 사랑’이라고 한다. 이곳은 해마다 열리는 ‘산수유꽃 축제’의 주 무대가 되는 곳으로, 사방으로 마을을 돌며 걸을 수 있도록 ‘풍경길’, ‘꽃담길’, ‘사랑길’ 등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도 설치해 놓았다.
▲빗망울을 머금은 산수유꽃
길을 더 오르면 왼쪽으로 반곡마을이 나온다. 예쁜 물길과 너른 바위, 흐드러진 산수유꽃 풍경이 아름다운 곳으로 ‘꽃담길’의 중심을 이루는 곳이다. 오르막길 도로를 따라 계속 진행하면 하위마을을 지나 산수유마을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해발 500미터) 상위마을에 닿는다. 만복대 아래 묘봉치로 오르는 산길이 열리는 곳이다. 수령이 100년 넘는 산수유가 군락을 이루는 상위마을과 하위마을에 산수유꽃이 만개할 즈음은 천상의 풍경이라 할 정도로 눈부신 경관을 이룬다. 산수유 군락지 속 댓숲에서 바람이 인다. 댓잎 바스라지는 소리가 풀무질이 되어 키웠는지, 산수유나무 가지에 어느새 초롱초롱한 눈들이 자리를 잡았다.
산동을 빠져나오는 길, 19번국도 건너편에 있는 시상리 시랑마을을 찾았다. 1948년 11월, 지리산지구 빨치산 토벌부대(12연대) 연대장으로 있던 백인기 중령이 기습공격을 당하고, 좁혀드는 포위망에 포로로 잡히지 않기 위해 자결한 곳이다. 마을 입구에 비석 등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당시 그의 나이 25세 때의 일이다.
[2018.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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