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게 패인 바위 형상 장관!
▲용유교에서 바라본 용유담
1686년 음력 4월 중순, 함양 읍내를 출발한 성리학자 우담(愚潭) 정시한(丁時翰)은 휴천면의 안양암(지금의 법화산 법화사)에 들러 하루를 머문 뒤, 산허리를 돌아 평평한 길로 내려선다. 지금의 도로 이름이 ‘천왕봉로’인 지리산의 북쪽 산자락을 잇는 바로 그 길이다. 지리산자락에서 170여일을 보내며 독서를 하고 간 우담이 본격적으로 지리산으로 들어서는 순간이다. 우담은 그의 『산중일기』에 이곳에서 만나는 풍경과 산중턱에 가파르게 나있는 옛길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하얀 돌이 골짜기 가득 어지럽게 솟아 수 백리에 뻗어 있었다. 물소리는 땅을 흔들 정도로 소리가 요란하여 천둥소리 같았다. 검푸른 빛깔의 냇물은 깊이를 알 수 없었으며, 냇가는 위태롭고 두려워 가까이 가기가 힘들었다. 좌우에 붉은 꽃이 가득 피어 있었고, 바위 위아래로는 신령스러운 용이 꿈틀거렸던 것 같은 흔적이 있어 기이하고 절묘한 구경거리였다. 화산의 용유당에 이르러 느린 걸음으로 오르내리면서 한동안 구경하였다. 관아에서 빌려온 말과 관인이 절벽으로 굴렀으나 가로놓인 나무에 걸려서 가까스로 죽음을 모면하였다.’
용유당은 지리산 무속의 중심지로 잘 알려진 곳으로, 용유담 위에 있는 기도처 당집을 말한다. 용유담은 바로 위 상류지역인 마천면에서 ‘임천’으로 불리던 물길이 ‘엄천’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바뀌는 곳으로, 큰 소(沼)를 이루는 곳이다. 지금은 용유담을 가로지르는 콘크리트 다리(용유교)가 놓여있어 차량 통행이 가능하나, 14년 전 태풍 매미에 의해 유실되기 전까지는 출렁다리가 놓여 있었고 신비감과 정취도 남다른 곳이었다. 광해군 때 남원부사를 지내면서 이곳에 들른 유몽인은 용유담에서의 기이한 경험을 그의 「유두류산록」에 다음과 같이 남기고 있다.
‘승려들이 허탄한 말을 숭상하여, 돌이 떨어져나간 곳을 용이 할퀸 곳이라 하고, 돌이 둥글게 패인 곳을 용이 서리고 있던 곳이라 하고, 바위 속이 갈라져 뻥 뚫린 곳을 용이 뚫고 나간 곳이라 하였다. 알지 못하는 백성들이 모두 이런 말을 믿어, 이곳에 와서 아무 생각 없이 머리를 땅에 대고 절을 한다. (중략) 시험 삼아 시로써 증험해보기로 하고, 절구 한수를 써서 연못에 던져 희롱해 보았다. 얼마 뒤 절벽의 굴속에서 연기 같지만 연기가 아닌 이상한 기운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여러 층의 푸른 봉우리 사이로 우레 같은 소리와 번갯불 같은 빛이 번쩍하며 잠시 일어나더니 곧 사라졌다. 동행한 사람들이 옷깃을 거머쥐고 곧바로 외나무다리를 건너 허물어진 사당 안으로 뛰어 들어가 기다렸다. 잠시 후 은실 같은 빗줄기가 떨어지더니 새알만큼 큰 우박이 쏟아지고 일시에 소나기가 퍼부었다. 좌중의 젊은이들은 숟가락을 떨어뜨릴 정도로 얼굴빛이 새파랗게 변했다.’
▲용유담 각자. 용유교 위 상류 바위지대에 있다.
이렇듯 용유담은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옛사람들의 수많은 이야기가 서려 있는 명소이다. 그런 용유담이 얼마 전부터 홍역을 앓고 있다. 바로 지리산댐을 조성하겠다는 곳이 이 부근이기 때문이다. 생태자원 훼손이 불 보듯 뻔하고, 환경적으로 피해가 예상되는 댐 건설은 전면 백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 상류지역에 터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오히려 이 아름다운 자연유산을 국가명승으로 지정하고 보호해서 후손들에게 온전히 물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쪼록 지역 간 이기주의를 넘어서서, 용유담을 보호할 수 있는 지혜로운 방안이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는 오랫동안 숨겨져 있던 이야기들이 세상 밖으로 속속 알려지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용유담을 제1곡으로 하는 ‘화산십이곡’ 이야기가 그러하다. 이제 용유담, 엄천강이 지니고 있는 스토리의 확장성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겠으며, 깊은 애정으로 새롭게 다가서며 살펴봐야 할 일이다.
[2017.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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