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전쟁의 주역들] 전기 독점 공급을 노리다.
일런 머스크는 2003년 전기차 업체를 출범시키면서 회사 이름을 테슬라라고 지었다. 테슬라는 익히 알려진 대로 세르비아의 과학자 니콜라 테슬라에서 따왔다. 머스크는 그 아유를 테슬라의 혁신적인 업적과 비전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라고 밝혔다.
머스크의 비전을 뜯어보면 그가 존경을 표해야 할 인물은 테슬라가 아니라 그의 라이벌이었던 토머스 에디슨이 더 적합할 듯 하다. 영화 커런트 워 등으로 알려진 대로 테슬라와 에디슨은 교류와 직류를 놓고 전류 전쟁을 펼쳤다. 테슬라는 교류를, 에디슨은 직류를 놓고 사활을 건 전쟁을 치른 것이다. 시카고 세계박람회가 교류를 채택하면서 전류 전쟁은 교류, 즉 테슬라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이 승부로 테슬라가 몸담았던 웨스팅하우스가 파산에서 벗어나 승승장구 했고, 에디슨이 설립한 제너럴일렉트릭은 JP모건의 지원으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머스크의 사업은 교류보다 직류와 연관이 깊다. 테슬라나 스페이스X는 다양한 직류 전기 기술을 기반으로 성장하고 있는 회사다. 테슬라가 교류를 선호했던건 장거리 전송기 가능하기 때문에 효율성 면에서 직류에 비해 우위로 본 것이다. 전기저장장치, 즉 배터리는 이같은 전송문제를 해결해 직류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열쇠다.
어쩌면 머스크가 회사 이름을 테슬라라고 지은 것은 직류나 교류와는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더 중요한 키워드는 테슬라의 혁신성이다.
이제 전세계 모든 가정에 전기차가 적어도 한대씩 있다고 상상해보자.
이 것은 단순히 자동차 보급률의 문제가 아니다. 각 가정에 대용량 배터리가 힌 개 씩 있다는 의미가 된다. 전송 거리 문제로 지금은 전세계 가정이 거의 대부분 교류 전기를 쓰고 있지만 전기차 보급률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되는 순간 직류 전기가 보편화된 세상이 열릴 수 있다. 전기차에 충전된 전기로 냉장고와 TV, 세탁기 등 가전과 조명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교류 전류 세상의 기득권자들은 분명 긴장하고 있을 것이다. 머스크는 의도했든 아니든 새로운 전류 전쟁에 출사표를 던진 셈이다. 이 것은 전혀 새로운 형태가 될 화폐전쟁의 서막이기도 하다.
테슬라 출범 이후 머스크의 말과 행동을 되짚어보면 머스크가 새로운 전류 전쟁의 선봉에 서 있다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진다. 머스크는 전력 생산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는데 집요한 관심을 보여왔다.
일런 머스크는 2021년 9월 배터리 데이에서 '테라와트(TW)' 프로젝트를 공식화했다. 테라와트 프로젝트란 인구 증가 등으로 전력수요가 테라와트 단위로 급증할 것이라는 전제 아래 지속가능한 전력 생산 방식을 찾겠다는 게 목표다. 가장 낮은 비용으로 무한한 에너지 공급 방식을 만든다는 게 머스크의 구상이다. 이를 위해 머스크는 전세계 사막에 태양광 집광판을 설치해 전기를 생산하고 이를 인근 국가들에 공급하는 방안을 언급하기도 했다.
머스크는 이미 태양광 발전과 배터리를 결합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2014년 시판된 파워월은 태양광 발전으로 얻은 전력을 보관했다 정전 등 비상시에 쓸 수 있는 배터리다. 대용량 상업용 배터리로는 매가팩이 있다.
머스크가 2019년 인수한 카이트X라는 스타트업도 테라와트 프로젝트와 연관이 있다. 카이트X는 자가장을 이용한 풍력발전기를 개발한 업체다. 기존 풍력발전기처럼 큰 날개가 필요없어 부피가 작고 효율이 좋다고 한다. 머스크는 이 기술을 이용해 달에서 전력을 생산, 지구로 전송하겠다고도 했다.
머스크의 구상을 종합하면 이렇다. 2045년까지 인류는 전기로 모든 시스템을 운영하는 체제로 전환된다는 가정 아래 전력 수요는 지금의 세배로 늘어난다. 이를 위해서는 지속가능한 방식의 전력 생산 기술과 이를 필요한 곳에 전송하고 적절히 저장하는 시스템의 수요가 폭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시스템을 누가 획기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공급하느냐가 관건이다. 머스크는 텍사스에서 파워월을 월 30달러에 공급, 이같은 구상의 현실화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다.
물론 이같은 비전이 실현되려면 기술적으로 해결해야할 일들이 많다. 하지만 적어도 머스크의 구상이 허황된 공상만은 아니라는 증거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예컨데 MIT 대학은 전자레인지에 사용되는 마이크로 웨이브를 이용해 전력을 전송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전송 시의 비용 문제 등 현실적인 제약은 존재하지만 이론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게 입증된 셈이다.
겉으로 내세운 그의 명분은 무한대의 전기 에너지를 전세계에 공급함으로써 지속가능한 지구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업가의 말은 아름다운 포장지를 뜯어내고 내용물을 봐야 한다. 최저 비용으로 무한대의 전기 에너지를 전세계에 공급하겠다는 건 그의 의도가 아닐지라도 분명 독점적 전력공급 사업자가 되겠다는 선언이다.
전력은 에너지 안보와 직결돼 있어 독점 사업자가 나오기 힘든 구조다. 하지만 특정 사업자가 획기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무한대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면 그 기업의 전력상품에 대한 수요는 폭발할 것이고, 각국은 국가 안보에 필요한 최소한의 전력만 생산하게 되는 상황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여러가지 정황을 종합하면 전력 공급에서 독점적인 사업자의 출현은 다음과 같은 경로를 밟을 것으로 전망된다.
전기차 보급 등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데 반해 전력 공급은 수요가 증가하는 속도를 못따라 갈 가능성이 크다. 규제 강화로 산업계는 물론 가정에서도 탄소 배출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전기차와 같은 친환경 가전의 보급은 점점 늘어나게 된다. 공급 측면에서도 화석 연료가 발전 연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줄 것이다.
하지만 이를 대체할 신재생 에너지로의 대체에는 국가별 양극화가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신재생 에너지 발전엔 첨단 기술과 대규모 자본이 필요하다. 국가별 발전 단가 차이가 갈수록 벌어질 수 밖에 없다. 더 큰 이유는 신재생 에너지 발전은 물리적으로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풍력 발전이나 태양광 발전을 생각해 보자. 미국이나 중국, 호주 등 드넓은 영토를 가진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기술이나 자본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발전 공간을 확보하기 힘들다. 이 또한 국가별 발전 단가 차이를 벌리는 이유가 된다.
실제 삼성전자 용인 반도체 공장 하나에서 2022년 한 해 동안 쓴 전력량은 같은 기간 우리나라에서 풍력이나 태양광 발전 등 신재생 에너지 발전으로 생산한 전력량의 절반에 이른다.
이 정도가 되면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재소환된다. 각국은 비교 우위를 지닌 상품을 생산해 수출하게 되는 데 전력 생산의 비교 우위는 기술과 자본, 토지를 가진 일부 국가에게만 있다. 기술도 없고 자본도 없고, 토지도 빈약한 대다수 국가들은 결국 부족한 전력을 수입해야 한다. 자동차 연료까지 전기가 된 세상에서 국가는 전력 안보를 명분으로 수입을 막기엔 역부족인 상황이 될 것이다. 배터리로 값싼 양질의 전기가 전세게 어디든 배달될 수 있다. 심지어 온라인으로 전기룰 구입하고 자기집의 주소만 입력하면 마이크로 웨이브로 각 가정에 전기를 쏴주는 시대도 이미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는 게 MIT 대학의 연구로 밝혀진 상황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