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전쟁의 주역들] 사우디와 동맹...위안화 결제 수면 위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2년 12월 사우디아라비아 방문 당시 '위안화 석유결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페트로-위안 체제에 대한 중국의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사우디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시진핑을 극진히 대접하면서도 공식적으로는 시진핑의 페트로-위안 구상에 맞장구를 치지 않았다. 미국과의 관계를 의식한 제스쳐로 풀이된다. 하지만 물밑에서는 페트로-위안에 대한 논의가 상당히 깊게 이뤄졌을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이 사우디를 방문하고 난 직후 중국이 사우디 국영석유회사인 아람코의 홍콩 증시 상장을 위한 마케팅에 적극 나선 게 중국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1974년 미국과 사우디가 페트로-달러 시스템에 관한 계약을 맺은 이후 지난 반 세기 동안 페트로-달러에 도전한 화폐는 모두 달러에 굴복했다.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는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의 원흉으로 지목돼 1984년 두 화폐의 강제 평가절상을 골자로한 프라자합의로 힘을 잃었다. 1999년 출범 이후 가치가 급상승하면서 달러 패권을 위협했던 유로화는 2002년 이라크 전쟁으로 유가가 폭등하면서 하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유로 경제의 양대 기둥인 프랑스와 독일 경제가 유가 상승의 직격탄을 맞아 고꾸라지면서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과 리비아의 카다피가 제거된 것도 석유의 위안화 결제에 나선 직후다. 달러 패권 문제에 관해서라면 미국 정부는 일관되게 무자비했다.
시진핑이 이같은 역사를 모를 리 없다. 꼭꼭 숨겨도 모자랄 것 같은데 시진핑은 왜 페트로-위안 체제를 만들기 위한 화폐전쟁에 노골적으로 출사표를 던진 것일까. 시진핑이 미국 앞에서 몸을 최대한 낮추고 때를 기다렸던 후진타오 전 주석과는 사뭇 다른 행보를 보이는 건 바로 때가 도래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제 분연히 일어날 시점이 도래한 것이다.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위협이 된다는 건 이제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감출 수도 감출 필요도 없는 마당에 차라리 확실히 화폐전쟁의 선봉에 서는 게 낫다는 정치적 계산이 깔린 셈이다.
후진타오 전 주석 집권 당시 아들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며 중국 때리기를 본격화 했다. 후진타오 전 주석은 예쓰나 노가 아닌 애매한 대답을 반복하며 시간을 벌었다. 엔화 절상으로 잃어버린 20년이란 암흑의 터널을 통과한 일본의 역사를 잘 알기 때문이었다. 역사와 경제, 정치적 상황이 유기적으로 맞물리면서 이제 시대는 시진핑에게 미국에 맞짱을 뜰 것을 요구하고 있다.
권력이란 타인이 싫어하는 일을 강제할 수 있는 힘이다. 국제질서에서 패권은 다른 나라가 원치 않아도 자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면 밀고나갈 수 있는 파워다, 중국은 패권 국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중국 항공모함이 원하는 곳을 지나고 머물 수 있는, 중국 입장에서의 항행의 자유를 확보해야 한다. 다음은 안정적인 석유 공급처를 찾아야 한다. 자원 안보가 전제되지 않으면 중국은 미국과의 기나긴 싸움을 견디기 힘들다.
중국은 하루 원유 수입량은 얼추 1000만 배럴에 달한다. 전세계 생산량의 10% 안팎에 해당하는 막대한 수치다. 사우디 하루 원유 수출량의 4분의 1이 중국을 향한다. 중국이 주요 수입국이던 이란은 미국의 경제봉쇄로 안정적인 공급처가 아니다. 시진핑이 에너지 외교의 첫 대상지로 이란이 아니라 사우디를 택한 배경이다.
아이러니하지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과 빈 살만의 밀월 관계를 만들어준 일등공신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이란과 맺은 핵합의로의 회귀를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핵합의를 뒤집고 경제제재에 나섰는데 이를 원상태로 돌려놓겠다는 게 바이든의 선거 공약이었다. 핵동결과 경제정상화를 맞바꾸자는 게 핵합의 내용의 골자다.
바이든의 이런 햇볕정책은 현실화할 수 없다. 바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수니파 중동국가간에 맺어진 아브라함 협정 때문이다. 사우디를 사실상 동맹으로 만든 이스라엘이 이란의 경제 정상화를 팔짱끼고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수니파 사우디와 시아파 이란은 서로 시도때도 없이 으르렁거리는 사이지만 이스라엘 문제에 관해서는 한편이었다. 이같은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사실상 동맹관계가 된 것이다. 아브라함 혐정 전에는 이스라엘이 이란에 미사일을 쏘면 인접한 사우디가 반격에 나설 것을 우려해야 했다. 하지만 더 이상 사우디의 미사일이 이스라엘을 향하는 시나리오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바이든은 약속대로 취임 직후 이란 핵합의 정상화를 추진했다. 하지만 2023년 5월 현재까지도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 수위는 트럼프 때와 달라진 게 없다. 바이든은 핵합의 정상화를 더 이상 언급하지도 않는다. 트럼프까 짜놓은 아브라함 협정이란 덫에 걸려 앞으로 나가지도 뒤로 물러서지도 못하는 애매한 상황이 된 것이다.
이같은 상황이 시진핑의 사우디행을 부추긴 것이라면 트럼프는 역시 페트로-달러 시스템의 적인 것일까. 트럼프는 이와 반대로 아브라함 협정을 이끌어내면서 중동에서의 패권을 공고히 했다. 문제는 이를 뒤집으려하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이다.
사우디 방문 당시 시진핑은 빈 살만과 선물 보따리를 주고 받았다. 시진핑은 이란의 핵개발 재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고, 빈 살만은 답례로 하나의 중국에 대한 지지를 약속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면 양쪽이 약속이나 한 듯 자신의 존재를 무시한 것이다.
시진핑이 이란이란 우방에 등을 돌린 것 역시 실리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일단 사우디 석유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좀더 깊이 생각해보면 상당히 복잡한 계산이 깔려있다.
이란이 핵개발을 재개할 경우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중동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높다. 앞서 말했듯 아브라함 협정이 만든 중동의 새로운 균형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면 동맹인 사우디 등 수니파 국가들은 이스라엘 편에서 전쟁에 참여할 것이다. 사우디는 미국의 전략적 동맹이기도 하다. 이는 곧 미국의 참전 가능성을 의미한다. 중동의 석유 자원에 대한 미국의 지배력 강화는 중국 입장에서는 치명적이다. 화약고인 이란에 불을 당기지 않으려면 이란의 상태는 트럼프가 만들놓은 현상태로 유지돼야 한다. 시진핑이 이란이란 우방을 배신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