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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문이 스코로 월가를 공격하는 이유

by 김창익

에릭 트럼프의 발언에서 핵심은 자신과 가족 기업이 2020년 대선 이후, 특히 2021년 1월 6일 의사당 사태 직후 전통 금융권으로부터 광범위한 관계 축소와 거래 중단을 경험했고 그 결과 기존 은행 레일에 접근하기가 눈에 띄게 어려워졌다는 주장이다. 그는 이 경험을 ‘디뱅킹’이라는 한 단어로 묶으면서, 폐쇄적이고 느리고 비싼 전통금융을 우회할 수 있는 대안으로 규정 준수형 디지털자산과 실물자산 토큰화, 그리고 온체인 정산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게 됐다고 말한다. 사건의 출발점은 정치적 논란이 금융의 평판·규제 리스크로 번지던 바로 그 시기였고, 은행은 내부 거버넌스와 감독당국의 시선을 의식해 관계 재평가에 들어갔으며, 이 과정에서 계좌·여신·결제·보험·평가 등 금융 인프라의 여러 고리가 한꺼번에 조여 들어왔다. ‘은행 한 곳과 틀어졌다’가 아니라 메가뱅크가 중심이 된 네트워크로부터 기능적으로 밀려난 것이고,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비은행 대체금융과 해외 관할, 그리고 디지털 레일을 동시에 탐색하게 되었다는 것이 그의 서사다.

시간의 흐름으로 보면 장면 전환이 분명하다. 2021년 1월 초 사건 발생 직후 대형 은행과 결제·보험·평가 등 비은행 금융기관들이 리스크위원회를 열어 거래 상대방에 대한 평판 리스크와 규제 노출을 점검했고, 며칠 사이에 일부 상업은행은 특정 개인·법인의 예금·당좌 계좌를 정리하거나 새로운 거래 개시를 보류하겠다는 통보를 보냈다. 그와 동시에 투자은행들은 내부 크레딧 메모를 통해 “향후 신규 비즈니스 없음(no new business)” 방침을 세우고, 만기가 돌아오는 부동산 담보대출·리볼빙 라인에 대해선 리파이낸싱 대신 상환 유도를 기본값으로 바꾸었다. 몇 주가 지나자 지역은행·전문은행도 유사한 결정을 내렸고, 카드·결제 네트워크 파트너는 가맹과 승인 범위를 축소했으며, 위험관리와 브랜드 이미지를 이유로 보험사·자산평가 기관도 계약 갱신을 꺼리는 분위기가 퍼졌다. 이 시기의 특징은 크고 작은 조치들이 서로를 강화하는 사슬 효과였다. 메가뱅크가 빠지면 브로커·커스터디·결제의 연결선이 약해지고, 그 공백을 메우려면 새 파트너를 찾아 복수의 변경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데, 그 자체가 또 다른 리스크로 평가되어 승인 문턱을 더 높이는 악순환이 생겼다.

은행이 취한 수단은 네 갈래로 요약된다. 첫째, 계좌·결제 서비스의 축소 또는 해지로 일상적 자금 운용의 마찰을 높였다. 둘째, 신규 여신과 신용한도 연장을 중단하고 만기 포지션을 회수·축소하는 쪽으로 크레딧 정책을 바꾸었다. 셋째, 자본시장 측면에서 인수·주선·공동주관 같은 창구가 닫히면서 외부 조달의 선택지가 크게 줄었다. 넷째, 신원확인과 자금세탁방지 기준을 한층 강화하고 에스컬레이션 기준을 상향해 승인 자체가 어려워졌다. 표면적 이유는 평판 리스크와 거버넌스 기준이었다. 주주·이사회·감독당국·고객을 설득해야 하는 대형 금융기관에게 상대방의 정치·법적 논란은 곧 비용과 변동성으로 해석된다. 더구나 코로나 충격으로 상업용 부동산, 호텔, 리테일 자산군의 변동성이 커진 시기였으므로, 은행의 자본 규제와 내부 리스크 한도는 보수적으로 재조정되었다. 내부적으로는 리스크가중자산(RWA) 계산이 상향되고, 산업·거래상대 집중도 한도가 낮아졌으며, 브랜드·사회책임 프레임 속에서 ‘관계형 금융’의 선택권이 행사되었다.

당사자에게 돌아온 현실적 영향은 즉각적이었다. 리파이 창구가 막히거나 연장 조건이 까다로워지면서 상환 압력이 커졌고, 신규 프로젝트 착수는 지연되거나 보류되었다. 자금이 급한 곳은 메가뱅크 대신 사모 대출·대체 크레딧으로 이동했는데, 이 경우 스프레드와 수수료가 높고 계약상 코버넌트가 빡빡해 총자금조달비용이 상승했다. 계좌·결제·보험·평가 같은 운영 인프라의 빈틈을 메우기 위해 추가 인력을 투입하고 새로운 벤더를 찾아야 했으며, 이 이동 비용과 시간이 또 다른 운영 리스크로 이어졌다. 동시에 ‘핵심 현금창출 자산 유지’와 ‘수익성이 낮거나 논란이 큰 자산 정리’라는 포트폴리오 조정이 뒤따랐고, 현금 확보를 위해 자산 매각·재구조화, 해외 관할 파이프라인 개척 같은 옵션이 병행되었다. 이 실무적 대응과 함께 커뮤니케이션 전략도 바뀌었다. 공개 발언에서는 전통금융의 폐쇄성과 고비용 구조를 비판하고, 대중·소상공인도 접근할 수 있는 새로운 금융 레일을 제시하는 프레임을 강화했다.

그 새로운 레일로 제시된 것이 규정 준수형 디지털자산과 실물자산 토큰화이다. 그의 논리는 이렇다. 전통금융은 계정과 네트워크가 닫혀 있고, 위험 사건이 생기면 승인 게이트가 빠르게 좁아진다. 반면 온체인 결제·정산은 24시간 동작하고 국경을 덜 탄다. 실물자산을 토큰으로 잘게 쪼개면 더 많은 투자자에게 접근 기회를 줄 수 있고, 국경 간 결제·송금 비용을 낮추면서 담보로도 재사용할 수 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점이 한 가지 더 붙는다. 과거의 ‘디지털 금’이나 토큰 프로젝트가 막힌 공통 원인이 규제·커스터디 신뢰·법적 소유권·유동성의 네 가지였듯, 이번 시도는 그 네 요소를 선제적으로 풀어야 한다. 그래서 그는 ‘정치용 밈코인’과 선을 긋고, KYC/AML과 투명한 감사, 표준화된 상환 구조, 그리고 규제 친화 관할에서의 파일럿이라는 키워드를 반복한다. 요컨대 월가가 닫은 문을 ‘무규제 코인’이 아니라 ‘규정 준수형 디지털 인프라’로 열겠다는 메시지다.

이런 전환 서사가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은행이 ‘배제’를 실행하는 구조적 여건 때문이다. 대형 은행은 고객알기제도(KYC), 자금세탁방지(AML), 제재 스크리닝, 평판·정책 리스크를 통합해 거래 상대를 선택할 권한을 가진다. 감독당국의 스트레스 환경에서 자본비율·리스크가중자산·내부 한도를 빠르게 조정할 수 있고, 이사회와 리스크위원회는 브랜드 훼손과 법적 불확실성에 앞서 반응한다. 또한 은행은 결제·보험·평가·수탁·감사 같은 비은행 인프라의 허브이므로, 한 축이 빠지면 다른 축도 연쇄적으로 흘러나가는 네트워크 효과가 나타난다. 그러니 디뱅킹은 단일 은행의 서비스 중단이 아니라 시스템 레벨의 접근 축소를 의미하고, 결과적으로 비용과 시간이 동시에 상승하는 구조가 된다. 이러한 현실을 반전시키려면 같은 시스템 레벨에서 작동하는 대체 레일이 필요하고, 그 후보로 온체인 담보·정산 인프라가 거론되는 것이다.

물론 디지털 레일까지 간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자동으로 풀리는 것은 아니다. 토큰이 실제 소유권인지, 발행사에 대한 채권인지가 계약과 관할에서 명확히 규정돼야 하며, 발행사 파산 시 자산이 자동 분리되는 파산격리 조항이 있어야 기관이 들어온다. 커스터디는 LBMA 기준 금괴를 복수 금고에 분산해 물리적 리스크를 낮춰야 하고, 준비금 증명과 금고 실사를 고빈도로 공개해 신뢰를 쌓아야 한다. 상환은 현금·현물·ETF를 아우르는 옵션을 마련해 리테일부터 기관까지 비용·시간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하고, 지정 시장조성자가 호가 의무를 지며 복수 체인·거래소를 브릿지로 묶어 스프레드를 관리해야 한다. 규제는 결제면 지급결제 인허가, 투자면 증권·원자재 공시·면허를 선제적으로 맞추고, 제재·자금세탁 규정은 보수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한 세트로 갖추어야만 디지털 담보가 청산기관과 은행 사이의 적격 담보로 편입되고, 전통금융의 마찰을 실제로 낮출 수 있다.

디뱅킹의 타임라인을 개인적 경험의 언어로 바꾸면 이렇게 요약된다. 1월 초 사건이 터지고 며칠 사이에 은행과 비은행 기관들이 관계 재검토에 들어갔으며, 계좌의 일부가 정리되고 신규 거래 창구가 닫히면서 자금 조달과 운영의 마찰이 커졌다. 몇 주 안에 중소 금융 파트너들도 분위기를 따라갔고, 반년 안에 인수·주선·보험·평가의 연결선이 상당 부분 약해졌다. 그 사이에 자산 포트폴리오는 수익 중심으로 재정리되었고, 자금 조달은 대체 금융으로 우회했으며, 동시에 규정 준수형 디지털 인프라라는 새로운 길을 만드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 흐름을 관통하는 정서는 “닫힌 문은 생각보다 많고 빨리 닫힌다”는 것이고, 정책 제언은 “그렇다면 법과 표준으로 열릴 문을 새로 만들자”는 것이다.

결국 에릭 트럼프가 강조하는 바는 두 줄로 정리된다. 첫째, 전통금융의 배제는 상징이 아니라 실무다. 계좌, 대출, 결제, 보험, 평가가 연결된 사슬에서 한 고리가 끊기면 전체 운용이 흔들리고 비용이 치솟는다. 둘째, 대안은 ‘무규제의 탈출구’가 아니라 ‘규정 준수형의 새 레일’이어야 한다. 실물자산 토큰화와 온체인 정산은 기술이 아니라 제도 설계의 문제이고, 법적 소유권, 커스터디 신뢰, 감사 투명성, 유동성 구조를 제대로 짜야만 월가가 닫은 문을 대체할 수 있다. 그 조건을 충족한다면 디지털 담보와 정산 레일은 위기 때 단일 통화·담보로 쏠리는 전이효과를 완화해 분배의 왜곡을 누그러뜨릴 수도 있고, 반대로 형식만 갖추고 실질을 놓친다면 또 하나의 프리미엄 장벽으로 남아 상위 플레이어의 협상력만 키울 것이다. 그래서 그는 “누가 위험을 떠안고 누가 이득을 가져가게 설계할 것인가”라는 분배의 질문을 기술과 제도의 언어로 다시 묻고 있으며, 금융 인프라의 문을 여는 방식이 앞으로의 사업과 정치의 무게 중심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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