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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키워키 Jul 07. 2023

눈도, 배도 빡시게 채운 3박 4일

6월 거제

20여 년 만에 거제에 발을 디뎠다.


집에서 출발할 땐 초여름이었는데 도착하고 보니 한여름이다. 남쪽은 남쪽인지 날씨가 훨씬 뜨거운 덕에 놀러 온 기분이 물씬 나며 들뜨기 시작했다.



소노캄 리조트는 국내서 가본 리조트 중 손꼽혔다. 전 객실 완벽 오션뷰에 딱 적당한 크기의 시설이어서 3박 4일간 지루하지 않게, 알차게 누릴 수 있었다. 스벅, 베스킨, 워터파크, 레스토랑, 오락시설 등을 한 건물에 다 갖추고 있어 슬리퍼 신고 안에서만 돌아다녀도 하루가 금방 갈 정도. 실제 이용하는 것이 몇 개나 되겠냐마는 존재 자체로 든든함을 주는 '문명'들임에는 반박할 여지가 없다.

되도록 모든 시설을 이용하고자 아주 오랜만에 구명조끼를 입고 워터슬라이드를 탔고(투숙객 할인이 되니 계산 시 꼭 얘기해야 한다. 먼저 물어보진 않더라..-.- ) 마트에서 맥주를 사 와 마시고, 1층 스타벅스에서 꽁쳐놓은 기프티콘을 썼다. 휴양지에서 쓰니 왠지 더 이득인 듯했다. 저녁엔 지하 오락실에 꽤 많은 동전을 기부했다.

특이한 게, 로비 레스토랑에서 파는 젤라토가 무지 맛있다. 한 가지 맛에 5,000원인데 아기 머리통만한 꽤 큰 한 스쿱을 퍼주신다. 쫄깃한 식감이며 은은한 단 맛이 젤라토 원산지 이태리나 서울 웬만한 유명한 곳에 뒤지지 않았다. 꾸덕하고 향기롭던 초콜릿 맛은 아직도 가끔 떠오른다.


다른 요리 메뉴들은 평타였다. 분위기와 편리한 위치 덕에 그래도 투숙객이라면 한 번쯤 방문해 볼 만한 곳이었고, 당시엔 저녁마다 와인뷔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마리나베이 카페 → 지세포 탐방길


리조트 내 위치한 마리나베이 카페로 향했다. 바다를 보며 맥주라도 한 잔 하려는데, 이 미친뷰를 앞에 두고 별로 차갑지 않은 병맥만 팔고 있었다..ㅠㅠ 그마저도 '술 찾는 사람은 처음'이라는 느낌의 응대에 김이 샜다. 유럽 같았으면 이 자리를 절대 가만 두지 않을 텐데. 선글라스 끼고 비타민D 합성을 하며 연신 와인을 홀짝이는 사람들로 버글댈텐데.. 우리나라 여유와 낭만지수가 아직은 부족한 것 같다. 방문했던 6월이 한창 수국철이라 리조트 이곳저곳에 가득 피어있는 꽃 구경하는 맛은 있었다.


아쉬운 마음에 카페에서 나와 바로 앞 데크로 만들어진 산책로를 따라 걷기로 했다. 모래를 묻히지 않으면서도 바다를 끼고 걸을 수 있는 데다, 걷다 보면 프라이빗비치로 즐길만한 모래사장들이 나타난다. 걷다 보니 터를 잡고 노는 찐고수나 현지 주민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우리도 아무도 없는 해변에 내려가 발을 적셔보았다.



몽돌해수욕장

아무 데나 주차하고 가만 앉아 파도 소리를 듣다 보니 멍하니 빠져든다. 어쩜 모래 대신 이렇게 아담한 돌들이 가득할까. 훔쳐가는 사람도 많다던데, 이 돌들은 여기서 서로 부대끼며 잘그락 소리를 낼 때야 빛난다. 집으로 데려가면 지금의 매력이 증발할 거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파도와 엉키고 부딪혔기에 이렇게 동글동글해졌을 지도, 얼마나 또 지나야 여느 해변처럼 자잘한 모래들이 대신하게 될지도 궁금했다.



외도(보타니아)
 장승포항 → 해금강 (선상 관광) → 외도 입도 후 2시간 자유시간 → 장승포항

 < 총 3시간 30분 ~ 4시간 소요 >


외도에 가려면 거제 장승포항, 지세포항, 구조라항 등에서 페리를 이용하면 되는데, 이 중 장승포항을 택했으며 온라인예약을 통해 할인도 받았다.

https://naver.me/5U150RiF


선상에서 바닷바람을 쐬며 만끽하는 절경은 기대보다 장엄했다. 새우깡을 이용해 갈매기와 교감하는 시간도 즐거웠고. 태어나서 지금껏 해금강이 어딘가에 자리 잡은 '강'인 줄 알던 나에게 눈부신 풍광을 선사한 멋진 돌섬, 해금강. 꽤 오랫동안 잘못 알고 있었다.. 이래서 사람은 여기저기 다녀봐야 한다.


외도에 입도한 후 2시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외도는 프랑스 등 서유럽 남부에서 방문하던 정원들처럼 한 부분도 놓치지 않고 정교하게, 인공적으로 잘 가꾸어진 느낌이었고 이국적 열대식물들과 조형물들로 가득했다. 한여름이 아니었음에도 햇살은 무자비하게 내리쬐었고 덕분에 사진은 참 잘 나왔다.

관람로가 체계적으로 설계되어 있어 안내 표지판을 따라 한 방향으로 쭉 둘러보면 되고 총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중간에 매점에서 파는 자몽주스가 꿀맛이었다.


오랜 시간 들인 정성이 오늘 처음 발을 디딘 관광객에도 물씬 느껴질 정도였는데, 이 섬의 소유주는 놀랍게도 지자체나 나라가 아닌 한 개인이었다. 재력가 1인이 70년대에 섬 전체를 구입해 가꾸기 시작했다는데 처음엔 수도가 갖춰지지 않아 모든 화장실이 푸세식이었다고 한다(나무위키). 2015년이 되어서야 탈바꿈했다는데 이 아름다운 지중해 휴양지풍과 푸세식 조합이라니, 이제 오게 되어 다행이다.



와현어가횟집


땀을 뺀 뒤 맞이하는 저녁식사란 행복 그 자체. 며칠 전 브레이크 타임에 걸려 헛발걸음 했다가 결국 성공했다. 사장님이 직접 낚시한 자연산 회만 취급하신다더니 맛이 보증해주는 듯했다.

자연산 참돔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기본찬으로 나온 짭조름한 볼락구이를 안주 삼았는데 너무나 고소하고 담백했다. 살이 어찌나 탱글하던지, 푸석거리는 냉동 생선에 비할 게 아녔다. 생 전복도 너무 싱싱해 비린내 하나 없었는데 어쩔 수 없이 한 잔을 하기로 했다.^^; 횟집에서 가짓수를 형식적으로 늘려 쭉 내놓는 '스끼다시'를 싫어하는데, 이 생선구이와 전복회는 분명 급이 달랐다.

출신성분에 걸맞은, 미친 퀄리티의 참돔

숨은 맛집을 찾아냈다며 들뜬 우리는 매운탕으로도 모자라 내친김에 회덮밥까지 시켜 배 터지게 먹다 왔다.



가격이 저렴한 편은 아니지만 태생부터 밥상에 오른 순간까지의 모든 과정을 정성스레 준비하셨을 사장님 가족을 떠올리면 그 맛도, 가성비도 괜찮은 편이다. 남해바다 한 접시 잘하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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