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키워키 Sep 22. 2023

인생 식당에서 눈 뜨고 꾼 꿈

이탈리아 포지타노

< 작년 봄 기록을 다듬어 올립니다 >


비싸기만 하고 입에 맞지 않는 음식들에 지쳤을 무렵, 포지타노 4일 일정 중 3일째 Lo Guarracino를 발견했다. 발견 이후 모든 식사는 여기에서 했고 이틀 동안 연속 3번 갔을 정도.

https://goo.gl/maps/sU31h3HVmZGRgCnQ7

포지타노 해안가를 따라 산책하다 우연히 발견한 이곳은 약간 후미진 곳에 있어 접근성은 떨어지나 뷰가 끝내준다. 중심가에서 떨어진 대신 반짝이는 마을과 바로 옆 바다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는 게 큰 장점.


내세울 것이 뷰뿐이었다면 1년이나 지나고도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아 글을 남기는 일도 없었겠지. 무엇보다 정말 맛있다!

최애메뉴 과라치노 피자
과라치노 파스타
새우 파스타
과라치노 리조또
미트볼파스타

3번의 방문 동안 시킨 음식들 거의 모두 다 맛있었지만, 한국인이라면 해물향 가득한 guarracino pasta와 매콤한 guarracino pizza를 가장 추천한다. 가게 이름 걸고 하는데 이유가 있다.


사장님 아들이 아닐까 싶은데 Andrea라는 서버분이 내내 우리와 함께했다. 간드러진 친절은 없었으나 그 또한 과하지 않아서 편했다. 와인을 마시고만 싶어 하지 잘 모르는 우리에게 끼니마다 페어링을 찰떡 같이 해주셨다. 한국이었으면 상상도 못 할 15~30유로의 저렴한 가격에 바다를 내려다보며 마시는 양질의 DOP, DOC* 와인을 여한 없이 누렸다. 곁들이는 요리들마저 훌륭하니 태어나길 잘했다 느낄 정도였다.



 ※ DOP : 이탈리아 와인 등급 중 상위 2개 DOCG와 DOC를 통합한 개념. 소비자 혼동을 막고자 기존 등급명을 표기해도 된다고 함 < 출처 : 네이버  >

    1) DOCG(Denominazione di Origine Controllata Grantita)-

        최상위등급, DOC 등급 와인들 중 품질이 우수한 와인을 나라가 보증한다는 의미

    2) DOC(Denominazione di Origine Controllata)-

       2번째 등급, 특정 지역 고유 특성을 최대한으로 담았는지 검증을 거침 (원산지, 수확량, 포도품종, 생산과정, 숙성기간, 알코올 함량 등)





어느덧 포지타노에서의 마지막 저녁. 당연히 과라치노로 향했다. 넘어가는 해는 억만금을 줘도 못 잡는다는 현실이 이렇게 안타까울 때가 또 있을까? 순간이 아름다워 동시에 위로가 됐다.



츤데레 안드레아는 이 날 우리가 그간 마신 와인들을 모조리 읊어주었. 손님이 항상 많았는데 대체 어떻게 다 기억했는지 모르겠다. '여태까지 이것, 저것, 그것 등등을 마셨으니 오늘은 이걸 먹어보라'며 짚어주시기에 더 묻지 않고 바로 주문했다. 3일 간 마셨던 와인 중에서는 가장 값이 나갔는데, 솔직히 맛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너무 많이 시켜서 옆 테이블까지 끌어와 음식을 올려둬야 했다.


계산해주시는 시크하고 포스 쩌는 할머니 사장님과 피자를 굽는 할아버지가 또 이 집의 빼놓을 수 없는 개성이다. 여사장님은 안드레아의 어머니로 추정되는데, 굉장히 낮고 허스키하며 걸걸한 목소리로 손님을 맞아 다소 험상궂은 인상으로 비쳤었다. (심하게 갈라진 목소리로 보아 성대가 편찮으신 듯했다.) 두 번째 식사 후 영수증에 주문하지 않은 물이 찍혀있길래 제외해 달라고 요청하였을 때는 무서울 정도로 퉁명스러우셨다. '우리가 마셔놓고 까먹은 게 아닐까' 되돌아보게 되던 강렬한 포스의 소유자.



마지막 날, 안드레아가 우리 와인 주문내역을 암송한데 감동한 나와 남편은 잔돈을 털어 팁을 남기기로 했다. 여사장님께  그간 좋은 식사였다고 말씀드리고 안드레아 서버에게 팁을 드리고 싶다며 건넸다.



순간, 며칠 만에 처음으로 할머니의 건치 미소를 목격했다. 언젠가 다시 올 날 있을까 아쉬운 발걸음을 떼는 우리 부부 뒤로 할머니가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최대한 쥐어 짜내시며 외치셨다..


찌 아....오 (Ciao, 잘 가)


잘 가라는 배웅. 할머니는 팁에 기분이 좋아지신 걸까, 아니면 퉁명스러운 인상 뒤로 단골 관광객에 대한 애정을 숨기고 계셨던 걸까.



매콤한 이곳의 피자와 와인 한 잔을 또 곁들일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눈도, 배도 빡시게 채운 3박 4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