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시간에 방문해 예쁜 노천 테이블에 앉았다. 빠에야를 주문하겠다 말씀드렸는데 주방에서 아예 남자셰프님이 나오시더니 "오늘의 메뉴인 버섯과 고기가 들어간 빠에야 어떠냐" 며 자신 있게 추천하셨다. 해산물빠에야만 마음에 품고 왔는데 모험하는 게 아닐까 불안하면서도, 거절을 못하는 성격인지라 에라 모르겠다 알겠다고 했다.
기본 제공되는 올리브가 신선하고 탱글하길래 오렌지 환타도 주문해서 곁들이기로 했다. 스페인 환타는 오렌지 과즙 함량이 타국가들보다 월등히 높다고 하던데(8%, 우리나라는 0%), 참이었다. 이 날 맛본 이후 맥주 귀신이 맥주를 마다하고 종종 환타를 시켰을 정도.
30분가량 기다린 끝에 받아본 무쇠팬은 생각보다 엄청 컸다. 근데 한 입 떠먹곤 어떻게든 이걸 다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불끈 치솟았다. 엄. 청. 맛있다! 양송이, 목이버섯과 흡사한 버섯들, 부들거리는 소고기가 짭조름하게 밥과 볶아져 나왔는데.. 불향까지 입혀져 있다. 한국 가서도 계속 생각날 맛임이 분명했고 소금 적게 넣어달라 말씀 안 드렸는데 간도 맞았다.
고기는 부들부들한 게 오래 찐 찜갈비 같았고 국물있는 요리도 아닌데 갈비탕 육수 향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잘 먹는 편이지만 혼자서는 다 못 먹는 양이긴 했다. 한 명만 더 있었더라면, 빠에야는 물론 다른 음식도 맛보았을 텐데, 행복하면서도 아쉬운 한 끼였다. 열심히 먹는 나를 보며 옆 자리의 서양인 노부부가 "이게 빠에야냐"며 물어보았고, 그렇다 했더니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맘 같아선 한 입 덜어드리고 싶었다.
※ 빠에야는 휴일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조금씩 덜어먹던 요리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최소 2인분부터 주문가능한 식당이 대부분이었고 가격대도 20유로~30유로로 높은 편이었다. 기대와 달리 여행자로서 부담 없이 매끼니 먹을 수 있는 메뉴는 아니었다.
가게 외관이 민트빛이라 맛집일 거라고는 솔직히 생각지 않았다(유럽에서도 허름하고 스러져가는 외관이어야 맛있을 것 같은 느낌적 느낌). 구글 평점이 엄청 좋길래 점심 식사 이후 가볍게 한 잔 하러 들렀다.
창가자리에서 내다본 아기자기한 골목. 저녁이면 저 야외자리도 다 찬다.
와인에 레몬 탄산수 등을 섞어 희석한 음료인 틴토 데 베라노와 등급 좋은 하몽 한 접시를 시켰다.
먼저 나온 음료를 한 모금 들이켰는데, 눈이 절로 커졌다. 여태 마셔본 틴토 데 베라노 중 가장 술 다웠다. 도수가 적절한 듯 하면서도 달달했고, 와인향이 너무 희석되지 않고 남아있었다. 커다란 잔이 넘칠 정도로 채워주셔서 마음마저 흐뭇해지는 맛. 이어서 딱 다섯 점의 하몽도 서빙되었는데, 여태 먹어본 중 역대급 문화충격을 줬다.
촉촉하면서도 쫄깃한 첫 입을 베어 물면 짭짤한 기운이 혀 전체에 퍼지며 훈연 햄 향이 코로 빠져나온다. 느끼한 것 하나 없어 진심 한 접시 더 시켜야 하나 고민했다. 옆의 토마토소스(?)에 찍어먹으면 정말.... 순삭이다..
점심식사를 이미 마친 만큼 자제하고 이쯤에서 계산서를 요청했다. 다음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해보리라 다짐하며 입가심주로 내주신 리몬첼로를 원샷했다.
벼르고 방문한 두 번째, 다행히 또 창가 명당자리를 배정받았는데 조금만 늦었어도 못 앉을 뻔했다. 저녁 식사를 원한다면 브레이크 타임 끝나는 시각에 맞춰 가야한다.
달궈진 돌판에 구워 먹는 서로인스테이크와 고기 리조또 하프사이즈를 주문했는데 살이 결대로 찢겨 들어가 있는 리조또는 특히기대를 뛰어넘었다.
정신없이 먹다 보니 나 혼자만 혼자였다. 혼밥족이 많은 외국임에도홀로 고길 굽는 일은 흔치 않은 듯했다. 그래도 이 맛을 보지 못하느니 잠시 쪽팔리는 게 낫다.
이번에는 식후주로 셰리주(발효를 마친 후 브랜디를 더한 강화와인. 달고 도수 셈.)를 한 잔 내어주셨다. 건포도나 곶감 향이 나는 고량주 한 잔을 원샷한 느낌이었다. 언젠가누군가를데리고 다시 와메뉴를 도장 깨리라다짐하고대기줄이 길기에 얼른 일어섰다.
튀김 파는 곳이(freiduria) 세비야 곳곳 보여 호기심이 일었다. 피쩨리아(pizzeria), 젤라테리아(gelateria)의 튀김 버전인가 싶었다.
저녁 식사 후 산책을 하다 또 한 곳의 튀김집이 눈에 들어왔다. 현지 분위기가 완전 + 물씬 나기에 혼자 들어가길 주저했지만 일단 들어가니 일하시는 분들 모두 소통에 능하시고 맛보기로 감자칩도 주셨다.
주로 서서 먹거나앉더라도 빨리 먹고 마시고 일어나는 분위기의 간이식당 분위기였다. 주문을 마치고 스탠딩 자리로 가있었더니 테이블 자리가 나자마자 가서 앉으라고 훈남 사장님이 눈짓을 주셨다. 맛보기 감자칩도 그렇고 친절점수 만점이다.
깔라마리(오징어)+감자 혼합으로 주문했는데, 다른 사람들 주문하는 걸 보니 새우 멸치 등등 전 메뉴 다 개수 상관없이 믹스 가능한 듯했다. 넓고 빳빳한 종이를 고깔모양으로 말아 그 안에 튀김들을 넣어오신 사장님은 테이블에 다시 척-하고 펼쳐서 먹을 수 있게 세팅해 주셨다. 효율, 미관, 위생 모두 챙기는 방식이었다.
혼자 다 먹기에많은양이었지만 오징어가 정말 부드럽고 고소했다. 감자칩도 기성품들과는 그 풍미를 비교할 수 없으니 터질 것 같은 배를 안고도 맥주를 마셔야 했던 건 당연지사. 한가롭던 식당이 밤 10시 넘으니 손님으로 넘쳐났고, 한국인은 고사하고 아시아인은 나뿐이었다. 현지느낌이 물씬 나는 곳이었다.
계산하려 사장님께 다가가니, 바쁘신 와중에도 내가 떠나온 테이블을 흘긋 체크하시는 듯했다. 그리곤 "남긴 거싸줄까" 물으시더니 새 종이를 꺼내와 고깔모양으로 감아 남은 튀김을 담아주셨다.
몇 시간 더 걸으면서도 다 먹지 못해 결국 버려야 했는데 어찌나 죄송하던지. 비교적 단순하고 신속히 조리하는 메뉴라 대수롭지 않을 법도 한데, 본인 손거친 음식에 대해 세심한 애정을 보여주신 사장님 얼굴이 떠올라서 말이다. 그 진심 어린 친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