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키워키 Oct 06. 2023

부부 사이에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니

말이야 방구야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첫 출근 하는 날. 남편에게 손을 흔들고 전철역으로 향했다. 연애 5년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출근 잘했냐는 카톡을 보내던 남편(구 남친)이니 '오늘부터 퇴근 후를 기약하겠지. 술 먹잔 아저씨들이 있으면 남편이랑 저녁 먹으러 간다고 해야겠다. 저녁은 뭘 먹을까.' 설레는 고민들을 안고 전철에 올라탔다.


바쁘게 일하다 보니 어느덧 퇴근시간이 다 되었고 하루종일 미뤄둔 카톡을 보내보았다.



"난 이제 퇴근해~" (오늘 언제 와?)



"응 잘 들어가~"



당황스러웠다. 언제 들어온다든지, 저녁은 먼저 챙겨 먹으라든지 그간 상상한 '부부간의 대화'스러운 구석은 찾아볼 수 없는 카톡 한 통이 달랑 날아온 것.




이후 매일은 복사-붙이기를 한 듯 반복됐다. '출근 잘했냐'는 카톡은 루틴에서 사라졌고, 먼저 연락하지 않는 한 하루에 한 통의 메시지도 주고받지 않을 때가 많았다. 새벽 2~3시가 되서야 원룸을 밝히는 현관 센서등에 잠을 설치면서도 남편이 무사히 왔구나 싶어 안도했다. 영양제를 꺼내두고, 서툰 실력으로 반찬도 만들었지만 퇴근하고 보면 그대로 남아있었다. 아침마다 곯아떨어진 그를 뒤로하고 집을 나서며 서운한 마음은 애써 제쳐두었고, 주말이면 늦잠을 자거나 게임하기에 바쁜 그를 측은하게 생각한 것도 잠시, 몇 달이 흐르자 이게 과연 결혼생활 축에 낄 수 있는지에 대한 억눌렸던 회의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루는 참다못해 어떤 안부도 궁금해하지 않는 이유를 물어보았다.



"오빠 근데 출근 잘했냐는 카톡 요새는 왜 안 해?"


"어차피 집에서 봤잖아."



말문이 막힐 뻔했지만 쌓인 서운함굳어버리기 전에 꺼내보기로 했다.


"그래도 결혼 전엔 한 번씩 하루 잘 보내고 있냐고 카톡하고 그랬는데, 요새는 왜 한 번도 안 하나 해서~ 내가 해야  답하고.. 연구실에서 축구랑 게임은 하더만."


"집에서 출근하는 거 아침에 봤으니 잘 갔다는 걸 알잖아. 물어볼 필요가 있냐는 거지.."


이어서 본인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생각한단다.


"그럼 퇴근할 때는? 뭐 거의 매일 늦긴 하지만 그래도 언제쯤 온다 알려주면 나도 안심하고 잘 텐데."


"나야 어차피 늦어.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면 돼. 나 원래 10 to 10(근무시간)이잖아."


연애기간 중엔 말 그대로 따로 살고 있으니 아침마다 서로의 안부를 체크했단다. 전인지 전전연애부터인지 스파르타로 '학습된 루틴'을 따르다, 결혼하고선 잠시라도 서로의 존재를 보긴 하니 유지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었다. 또 본인은 항상 늦을 예정이니 신경 쓰지 말라는, 어떤 말문이든 막아버리는 "대학원생이라 바쁨" 조커카드내버렸다.


일단 넘기기로 했다. 싸우지 않고, 결론 내지 않고 넘어가면 언젠가 나와 그 사람접점을 시간이 찾아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만큼은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에.



퇴근 후 같이 밥을 먹거나 하루를 묻고 의지가 되어주는 저녁을 꿈꿨던 나는 그야말로 혼자만의 단꿈에 흠뻑 빠져있었던 것이란 걸 받아들여야 할 처지에 놓였다.






작가의 이전글 내 남편은 심맹(心盲)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