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목표로 쪼개기 + 적정 난이도 설정하기
연말은 늘 달콤 씁쓸하다.
여기저기 속해있는 모임에 망년회 혹은 송년회라는 이름으로 이리저리 끌려다니다 보면 어느덧 한 해의 끝자락에 서있다. 그때쯤이면 추워진 날씨와는 반대로 어딜 가나 따뜻한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나온다. 그렇게 흥겨운 콧노래로 캐럴을 흥얼거리다 보면 곧 TV에서는 각종 시상식이 나오겠지... 곧이어 카운트 다운이 끝나면 한 해의 끝을 알리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상징적인 제야의 종소리가 울려 퍼질 것이다. 아... 1분이 안 되는 그 짧은 순간 마음이 조급해진다.
'나의 한 해는 어땠는지, 내년 한 해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제야 부랴부랴 신년 다이어리를 산다. 올해 앞장만 쓰다 만 다이어리는 보기 싫으니 아깝지만 쓰레기통으로 직행. 그렇게 새 다이어리에 매 달의 주요 행사를 체크하고 '개인', '건강', '취미', '커리어', '회사' 등에 대한 대분류 항목별로 세부적인 목표를 세운다. 그런데 써놓고 보니 뭔가 이상하다. 작년에 세운 목표와 내용이 똑같다. 마치 그대로 보고 적은 것처럼. 그저 맨 위에 크게 적은 '2021년'이 '2022년'으로만 바뀌었을 뿐이다.
아무렴 어떠한가! 올 한 해는 정말 다를 것이다! 일단 피트니스 센터를 등록하고, 서점에서 책도 잔뜩 사놓는다. 그렇게 한 달 정도는 적어놓은 목표를 달성하고자 차근차근 성실히 수행해나간다. 하지만 세 달 후, 어김없이 피트니스 센터에서는 등록기간이 끝났으니 캐비닛을 비워달라고 메시지를 보낸다. 연초에 잔뜩 사놓은 책 중, 두 번째 책 20page 쯤에 책갈피만 대롱대롱 민망하게 꽂혀있다. 쏜살같은 시간이 야속하고 허무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11월. 여기저기서 연말 송년회를 잡자는 친구들의 문자가 쏟아진다.
"어라? 뭔가 이상하다... 이거 작년이랑 똑같잖아...?"
비단 나와 당신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할 이야기다.
대체 뭐가 문제일까? 이유야 찾으려면 수도 없이 많겠지만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목표 설정 단계'에 있다.
다시 말해 지나치게 추상적이거나, 지나치게 커다란 목표를 세웠기 때문이다.
만약 버리지 않았다면 우리가 작년 연말에 세운 목표를 적어놓은 다이어리를 한번 펼쳐보자. 아마 대부분 이런 식일 것이다.
'헬스장 꾸준히 다녀서 20kg 감량하기!'
반면 목표를 달성해서 연말이 뿌듯하고 달콤하기만 한 사람들은 조금 다르다.
'1단계: 회사 앞에 있는 OO 피트니스 클럽 연간 회원권 등록하기'
'2단계: 평일 주 3회 피트니스 클럽에서 유산소 30분+근력운동 30분 총 1시간 운동하기 (일단 미팅이 없는 월/수/금 오전 10시에 1시간씩)'
'3단계: 상반기까지는 PT를 받으며 식단 및 운동법을 익히고 하반기에는 혼자서 적용해보기'
'4단계: 매일 운동일지를 쓰고 한 달에 한번 인바디 체크해서 셀프 피드백하기'
'5단계: 그렇게 상반기까지 지방을 3kg 줄이고 근육량을 5kg 늘리고, 하반기에는 집중적으로 체중을 감량하여 현재 대비 10kg 감량하기'
어떤 차이일까?
전자의 사람들의 목표는 결국 최종적인 목표만을 다룬다. 당연히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현재의 상황과 괴리가 크다. 아마 쓰는 순간에도 이루지 못할 것을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다. 목표라기보다는 그저 선언 혹은 희망사항에 가깝다.
반면 후자의 사람들의 목표는 작은 단위의 단계별 목표들로 잘개 쪼개져있다. 실제 행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목표들을 세우다 보니 보다 현실적이면서도 도전적이다.
결국 요약하자면 '목표 설정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두 가지다.
첫째, 최종 목표를 하위 단위의 중간 목표로 잘게 쪼갤 것.
둘째, 현실적이면서도 적당히 도전적인 목표들을 배치할 것.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재미있는 이론이 있다. 80년대에 활동한 과학자이자 작가인 론 화이트헤드에 따르면 도미노는 물리적으로 최대 자신보다 1.5배 더 큰 도미노를 쓰러뜨릴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이 이론을 검증하고자 2001년 샌프란시스코 과학관에서 합판으로 1.5배씩 커지는 도미노 조각 8개를 세워놓고 실험을 했다. 첫 도미노 높이는 아주 작은 5cm의 길이였다. 그렇게 1.5배씩 커지는 도미노를 일렬로 세우니 마지막 8번째 도미노의 높이는 90cm에 달했다고 한다. 실험 결과 론 화이트헤드의 이론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그렇다면 상상실험을 통해서 이를 확장해보면 어떨까? 1.5배의 등비수열로 계산을 해보면 다음과 같다. 18번째 도미노는 피사의 사탑 크기가 되고, 23번째 도미노는 에펠탑의 크기가 된다. 그리고 31번째 도미노는 에베레스트 산을 상회하는 높이가 된다. 57번째 도미노는?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만큼의 높이가 된다.
합리적인 목표 설정의 조건도 이와 동일하다. 결국 이루고자 하는 원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작은 목표들로 쪼개어 배치해야만 한다. 그렇게 우리가 달성 가능한 작은 것들부터 차근차근 세워놓고 하나씩 무너뜨리다 보면 어느새 커다란 목표도 달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결국 현실적으로 가능하면서도 적당히 도전적인 목표의 난이도 설정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관련하여 '몰입 이론'을 연구한 심리학자 칙센트 미하이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를 한다. 칙센트 미하이는 '몰입'을 의식이 어떤 행위에 깊게 빠져들어 시간의 흐름이나 공간, 더 나아가 자신의 의식까지도 잊어버리는 상태로 정의한다. 그는 몰입의 3가지 조건을 '명확한 목표 설정', '분명한 피드백', '목표의 난이도'로 정리한다. 그중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바로 '목표의 난이도'이다. 칙센트 미하이는 목표를 실행하는 단계에서 '몰입'을 통해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현재 능력과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의 난이도가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자신이 세운 목표가 현재 할 수 있는 능력보다 조금 더 버거운 정도의 도전적인 난이도일 때, 이를 가장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몰입'의 상태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어느덧 11월 중순이다.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연말 모임이 많이 줄어든 지금, 따뜻한 차를 한잔 앞에 두고 조용한 음악을 틀어놓고 차분히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자. 그리고 다이어리에 차근차근 내년 목표를 정리해보는 것은 어떨까?
잠깐! 이때 중요한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중간 단위의 세부목표로 잘게 쪼갤 것.
둘째, 목표의 난이도를 현실적으로 조정하여 적절히 설계할 것.
부디 내년 연말은 달콤 씁쓸하지 않고 달콤하기만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