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룽지는 좋아하면서 (53개월)
밥 먹기보다 만화 보기를 더 좋아하는 아이. 텔레비전 끄고 밥 먹자 하면 난리 벼락이 떨어질 것 같아서 ‘만화 잠시 멈추고 밥 먹자. ’ 만화가 더 좋은데 인상을 찌푸리고 징징 거리며 식탁에 앉는다. 마음은 만화에 몸은 식탁에 이 밥을 빨리 먹어야 만화에게 빨리 돌아갈 수 있다. 만화를 보기 위한 수단으로 밥을 한 숟가락씩 폭폭 떠먹는다.
밥을 잘 안 먹는 아이가 웬일인가. 반가운 마음에 얼른 멸치볶음, 낫또, 시금치 무침과 브로콜리를 먹이려 손이 바쁘게 움직였지만 번번이 순위에서 밀린다. 이거는 이래서 저거는 저래서 싫은 이유도 많다. 반찬을 거부하고 밥만 부지런히 떠먹는 아이. 밥 먹자고 해서 밥만 먹는 건가. 이제는 밥 먹자가 아니라 밥이랑 반찬 먹자 또렷하게 구분 지어줘야 되려나.
‘밥만 먹으면 어떻게, 반찬도 먹어야지.‘
그 말에 뜬금없는 대답이 돌아온다.
“밥은 탄수화물이야?”
응, 그건 또 무슨 말이니.
밥이 탄수화물인지 어떻게 알았을까.
요즘 아이들 참 무섭게 똑똑하네.
때때로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밥이 탄수화물인 줄 어떻게 알았어?
“아빠가 그랬어.”
아하 그랬구나.
세상살이 겨우 한쪽 손가락 수만큼 살아온 아이가 탄수화물을 강조하다니 웃긴다. 반백년을 넘게 살아도 탄수화물이니 단백질이니 별 생각하지 않고 살았는데. 밥은 그냥 밥이고 밥은 맛있을 뿐이고 밥은 꼭 챙겨 먹어야 한다고.
네 아빠가 아무거나 먹고 뚱뚱한 배둘레를 자랑하더니 이제야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을 구분하며 다이어트를 시작하는 모양이구나. 뭐라도 먹어야 할 날씬한 아이 앞에서 밥은 탄수화물이라고 안 먹는다고 그랬구나.
이제 한 오 년 살아온 아이가 오십 년은 살아온 사람처럼 탄수화물을 말하는데 탄수화물 중독이라 낙인찍힌 할머니는 밥은 탄수화물이지만 참 맛있다. 꼬마 공주야, 만화보다 더 소중한 밥도 반찬도 많이 먹고 쑥쑥 잘 자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