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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혜 Nov 29. 2022

11월, 상실

상실 (2022.11)


찬 바람 불듯 상실에 대한 단상이 부지런히 떠오르는 계절. 내게 11월은 상실의 달이다. 이번에는 그 단상들을 그러모아 다시 한번 짧은 글로 엮었다.



지난 몇 년 간 내게는 크고 작은 상실이 있었다. 어떤 상실은 너무 깊어서 빠져나오기가 힘들었고, 어떤 상실은 툭툭 털어낼 만큼 가벼웠다. 일련의 경험들을 통해 상실의 다양한 모양을 배울 수 있었는데, 겪어봤기에 알 수 있었던 상실의 면면들은 아래와 같다.


먼저 상실은 갑작스러움이다. 우리 인생에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을 노려왔던 것처럼 굴기 때문이다. 그렇게 단숨에 내일의 평범함을 없애고 간다. 상실은 소중함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남들과 같은 평범함이 얼마나 큰 자산이었는지 우리는 상실을 겪고 난 후 체감한다.


떠나간 이보다 떠나보낸 이의 감정이 더 짙기에 공평함은 아니다. 떠나간 이는 상실을 보다 가볍게 느끼거나 아예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상실은 억울함이다. 떠나보낸 이의 울부짖음을 들어보면 그렇다. 무언갈 얻기 위해 사는 삶이지만 얻고 나면 잃을 게 생기고, 얻어본 적도 없는데 잃어버리기도 하고, 아주 잠깐 손에 쥐어졌다 사라지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삶은 소중한 것을 잃어가는 여정인 듯하다.


상실에 대비란 없다. 아니, 있을 수 없다. 어렴풋이 예상은 해도 그 모양을 뚜렷이 알 수 없다. 우린 그저 짐작할 뿐이다. 다만 짐작을 해도 상실의 크기는 줄지 않는다. 그래서 상실은 어렵다. 나도 그러했다. 슬픔보단 당혹스럽고 어안이 벙벙한 일이다. 슬픔은 상실을 인정했을 때 찾아온다. 평범함에서 멀어졌다는 느낌은 서러움을 주기도 한다. 반쪽짜리 평범함이 온전하기란 어렵겠다. 회복을 바라기보다 무뎌짐에 익숙해져야 하는 일이다. 상실을 온전히 받아들였을 때 우리는 덤덤해질 수 있다. 삶이 소중한 것을 잃어가는 여정이라면, 그 여정을 덤덤히 지나치는 일은 한 번 더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이리라 짐작한다. 



이상. 틈틈이 적어 두었던 메모가 흘러가지 않아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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