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승무원의 일상 <기항지 편 ep. 3>
아직 여름휴가도 못 갔는데.. 입추가 지났다고 아침 밤으로 선선해지고 있는 요즘. 일이 많아서도 못 가고, 코로나가 무서워서도 못 가니, 아예 랜선 휴가로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내가 생각하는 베스트 포토 (Best Photo) 와 베스트 포트 (Best Port) 를 다 갖고 있는 항차로 골라 봤다.
밴쿠버에서 알래스카 크루즈를 마무리하고, 북유럽 크루즈를 위해 큐나드의 고향인 사우샘프턴으로 돌아가는 노선이었다. 그중 첫 기항지는 바로..
샌프란시스코 (San Francisco)
미국은 로스앤젤레스에서 몇 달 동안 살아봤고, 뉴욕이랑 라스베가스, 시애틀, 달라스에는 여러 차례 가봤다. 20대 때의 일이지만 미국인과 오랜 기간 동안 만난 적이 있어, 백인 미국인 특유의 그 문화나 분위기도 여러 방면으로 경험해봤다. 그러니 미국이란 나라가 사실상 그리 새롭지도 특별하지도 않은데.. 막상 샌프란시스코에 간다고 하니 한참 전부터 설레었다.
게다가 스콧 매켄지 (Scott Mackenzie) 노래가 머릿속에서 무한반복으로 맴돌았다. 'If you're going to San Francisco~~~'
2019년 7월 3일, 배가 정박한 곳은 샌프란시스코 포트 (Port of San Francisco; James R. Herman Cruise Terminal at Pier 27). 택시나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아도 근거리에서 먹을거리나 볼거리를 찾을 수 있고, 번화가와도 근접한 거리에 위치한 항구다. 2시간의 쉬는 시간을 알뜰하게 활용해야 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의 항구였다.
첫 번째 목적지는 항구 부근에 있는 페리 터미널 (Ferry Terminal). 번화가로 향하는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에 아주 잠깐 샛길로 새는 정도로, 터미널에 있는 아주 작은 로컬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해놓고 얼른 사진을 찍었다.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샌프란시스코의 거리를 걷고 있는, 그 사실 자체가 뭔가 너무 좋았었다. "If you're going to San Francisco~~~" 노래를 흥얼거리며 출발했다.
번화가에서 가장 먼저 향한 곳은 파월 블러바드와 마켓 스트리트 (Powell Blvd. & Market St.) 의 케이블 카 출발 지점.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샌프란시스코의 거리와 언덕을 넘나드는 그 케이블 카를 타기 위해서 갔다. 하지만 케이블 카를 타려는 사람들의 줄이 너무 길었고, 이미 타 있는 사람들도 너무 많았다. 이왕 왔으니 한 번쯤은 타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워낙 빠듯했기 때문에 얼른 사진만 찍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케이블 카를 못 탄 덕에 다음 목적지를 향하면서 샛길로 새봤다. 쇼핑거리와 먹을거리 중심에 있는 광장, 유니온 스퀘어 (Union Square). 유명한 관광지라기보다는 이를테면 서울의 도산공원 정도로, 겨울에 갔다면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 주변에 아이스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로 붐벼있었을 장소다.
그리고 시청 건물 (City Hall). 서울시청 안이나 밖에서 특별하게 구경할 것이 없는 것처럼 이곳도 마찬가지였지만, 여유 없는 시간 중에 조금이라도 다른 분위기의 장소를 보기 위해 간 곳이었다.
영화에 나오는 샌프란시스코의 구불구불한 언덕길, 롬바드 스트리트 (Lombard St.) 러시안 힐 (Russian Hill). 사실은 이 장소가 나의 메인 목적지였다. 시간의 제약 때문에 언덕 밑에서 바라볼 시간밖에 없었던 나에게, 여기저기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내가 원하는 구도로 사진을 찍을 시간은 없었다. 그래도 길 따라 나 있는 꽃들은 알록달록 너무 이뻤고, 마침 길 따라 내려오는 차들이 있어서 그래도 만족스러운 구경이었다.
마지막 목적지인 피셔맨 와프 (Fisherman Wharf, Pier 39), 그리고 1994년 개봉한 톰 행크스 주연 영화인 포레스트 검프 (Forrest Gump) 를 모티브로 탄생한 부바 검프 슈림프 레스토랑 (Bubba Gump Shrimp Co.). 바다를 바라보며 영화의 감동을 되새기며 좋아하는 새우를 실컷 즐기고 싶었지만, 이미 배로 돌아가기에도 너무 빠듯한 시간이었다. 나는 와밨다는 것에 내 눈에 담았다는 것에 만족하고 항구를 향해 달려야 했다.
당시 계획을 짜면서 한두 군데만 가서 보다 여유롭게 즐길까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직접 눈에 담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은 샌프란시스코였다. 시간에 쫓겨가며 땀 흘리며 정말 열심히도 걸어 다녔고, 그렇게 1분도 버리는 시간 없이 알차게 활용한 2시간의 쇼어 리브가 끝났다.
다시 근무시간이 시작되고 출항 시간이 다가올 무렵, 미리 손 써둔 30분의 쉬는 시간이 다가왔다.
샌프란시스코 세일 어웨이!!
샌프란시스코 항구에 정박해있는 퀸 엘리자베스가 바다를 향해 다시금 항해를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 그것도 금문교 (Golden Gate Bridge) 밑을 지나가고, 알카트라즈 섬 (Alcatraz Island) 을 지나가는 그 세일 어웨이. 바로 이 날의 진짜 하이라이트다.
나는 헤어 스타일리스트 일본인 왕언니 토모코와 함께 크루 전용 오픈 덱으로 올라갔다. 배에서 한 발자국만 떼면 닿을 것만 같았던 샌프란시스코는 우리로부터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알카트라즈 섬이 보이기 시작했다. 쇼어 리브 시간이 길었다면 섬 투어를 하고 싶었던 곳이다. 이 섬은 1963년까지만 해도 29년 동안 교도소로 운영된 장소로, 1996년 개봉한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 영화인 더 록 (The Rock) 의 촬영 장소이기도 하다. 나와 전혀 관계없는 장소이긴 하지만, 어릴 적 아빠랑 여러 번이나 같이 보던 영화 속에 나오는 곳이라 그런지 왠지 모를 향수까지 느껴졌다.
이 날의 하이라이트인 세일 어웨이 중에서도 하이라이트는 바로 금문교.
배의 선수가 금문교 밑을 지나기 시작했고, 금방 우리가 나와있는 중앙을 지나 선미까지 지났다. 파란 하늘과 바다를 거스르는 듯한 금문교의 새빨간색이 왠지 모르게 위풍당당한 것이 우아해 보이기까지 했다.
쇼어 리브도 세일 어웨이도 여유 있는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날 하루를 행복하게 보내기에는 모자람 없는 시간이었다. 'If you come to San Francisco~ Summertime will be a loving there~~~'
랜선 휴가로 고른 이번 항차와 기항지 샌프란시스코의 기록을 찾아보면서,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다시 봤다. 오래된 필름의 흔적들이 전혀 촌스럽지 않았고, 자신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인생에 매번 순응하며 극복해나가는 포레스트의 모습에 또다시 감동했다. 그리고 특별한 헌신으로 그를 지지하는 엄마의 말에 또다시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Life was like a box of chocolates; you never know what you're gonna g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