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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민크루 Sep 05. 2021

알록달록했던 과테말라

크루즈 승무원의 일상 <기항지 편 ep. 5>


당시 항차의 기항지 중에는 다소 낯선 이름들이 몇 있었다. 그중 하나가 푸에르토 케찰 (Puerto Quetzal).


업무상 기본적으로 항구 주변의 정보는 알아야 하기에, 관광객 전용 지도에 나와있듯 항구 근처에 볼만한 것이 있다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유적지나 화산지역 같은 관광지에 가고 싶다면 기항지 투어를 예약해서 안전한 이동을 우선시하는 것을 추천하는 항구였다.



당시 항차의 노선, 그리고 푸에르토 케찰 항구에서 만든 관광객을 위한 지도



기항지에 대해 사전에 얼마나 알고 있는지와는 상관없이, 어떤 곳이든 직접 경험해보고 싶기 마련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날씨가 좋아 보이니 햇볕 좀 쬐면서 기분 좀 내야겠다 하며, 큰 기대보다는 그저 항구 근처에서 산책을 하려고 외출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푸에르토 케찰 항구에서 베스트 포토가 나올 줄은 몰랐다.


쨍쨍한 날씨 덕분인가. 갱웨이에서 항구 앞 마을로 이어지는 노란색 울타리에서부터 사진을 찍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란색 코디로 외출했는데, 마침 울타리까지 깔맞춤이었다..ㅎㅎ



갱웨이에서 바라본 푸에르토 케찰 항구의 첫인상은 '지도랑 똑같네'였다. 특히나 웰컴 로비 건물의 짚으로 만든 거대한 고깔형 지붕은 지도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였다.


웰컴 간판을 지나 들어간 웰컴 로비는 인천공항의 탁 트이고 깔끔한 로비나 라스베가스 시저스 팰리스 호텔의 압도적이고 럭셔리한 로비는 아니었다. 하지만 크루즈 손님을 유치하기 위해 꽤 많은 노력을 한 흔적들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한, 아담하지만 따뜻한 로비였다.



항구 (출처: Cruise Mapper), 그리고 울타리에서 바라본 왼쪽 웰컴 간판


울타리에서 바라본 오른쪽 웰컴 간판, 그리고 웰컴 로비의 고깔형 지붕


웰컴 로비 (출처: Cruise Crocodile), 그리고.. 눈을 감은게 아니고 윙크하려고 했던 사진.. ㅋㅋ



웰컴 로비를 지나 밖으로 나오니, 눈부시게 파란 하늘이 무색할 만큼이나 반짝이는 초록빛의 야자수 나무들과 빨간 꽃들이 우리를 반겼다. 정신을 차려보니 마을 안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있었는데, 그 표지판에 눈이 간 것도 잠시였다. 알록달록한 것이 내 몸에 주문이라도 걸었는지 내 발길은 이미 가게 쪽을 향하고 있었다.


마을 안 전체에 늘어져 있는 가게에는 정말 다양한 색을 가진 수예품과 기념품이 있었다. 작은 파우치나 가방, 옷, 스카프, 이불, 카펫, 액세서리 등의 정말 수많은 종류와 수많은 색을 품고 있어 어디서부터 구경을 해야 할지 내 눈과 마음이 바빠지고 있었다.


그래도 일단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고자 애써 발길을 돌려 더 깊이 들어갔고, 아주 흥미로운 구경을 할 수 있었다. 바로 푸에르토 케찰의 여성들이 곳곳에서 바닥에 자리를 깔고 수예품을 만들고 있는 현장이었다. 내가 봤던 자수나 바느질의 모습과는 다소 다른 것이 신기하면서도, 불편해 보이는 바닥이나 의자에 앉아 생계를 이어보려 애쓰는 어머니와 딸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안쓰럽기도 했다.



로비를 나서자마자 보이는 마을, 그리고 알록달록한 가게들


가게 바닥, 아니 그냥 딱딱한 시멘트 바닥에 앉아 수예품을 만들고 있는 젊은 여성


허리받침도 없는 작은 나무 의자에 앉아 수예품을 만들고 있는 나이 든 여성



이후 우리는 잠시 벤치에 앉아 쉬다가 산책길로 향했다. 물길을 따라 기다란 야자수 나무의 그늘 아래를 걷고 있자니, 한두 시간 뒤면 닥쳐올 업무 따위는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여유롭고 평화로웠다.


걷다 보니 마을 안의 작은 레스토랑을 발견할 수 있었다. 흔히 상상하는 휴양지 리조트의 럭셔리하고 깔끔한 분위기라기보다는, 동네 사람들이 관광지에 차린 무난한 야외 식당 같은 분위기였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뭔가 아쉬운 마음에 우리는 가볍게 생선 튀김요리와 맥주를 한잔씩 했다.



벤치에 앉아 잠시 쉬고 있는 나, 그리고 산책길 쪽으로 향하긴 향하는데 가게 쪽에 아직 미련이 남은 나.. ㅋㅋ


야자수나무의 그늘 아래에 있는 나, 그리고 마리나



마을 안에는 작은 박물관도 있었지만, 우리는 기념품 쇼핑을 선택했다. 길을 들어서다가 길바닥에서 커다란 칼로 코코넛을 직접 손질해 빨대를 꽂아 파는 곳을 발견했다. 나는 코코넛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지나쳤지만, 마리나는 냉큼 코코넛 한 개를 받아 행복하게 마시면서 쇼핑을 시작했다.


같은 물건인데도 짜인 모양이나 색깔들이 달라 고르기가 힘들 정도였는데, 게다가 가게들마다 부르는 가격이 천차만별이라 더 고르기가 힘들었다. 관광객이 올 때 한 건 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했지만, 바가지를 씌우는 가게들은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 가격을 부르기는 했었다.


몇 번씩 들었다 놓았다.. 몇 번씩 가격 흥정을 해보다 말다.. 결국에는 예쁜 자수가 들어간 아기 옷을 발견하고는 친한 언니오빠의 딸을 주고 싶어 샀다.



코코넛 쥬스도 신나는데 쇼핑을 해서 더 신난 마리나.. ㅋㅋ


물건 고르느라 눈과 마음이 바쁜 나.. ㅋㅋ



내거는 못 샀어도 조카 거 샀으니까 잘했다 싶어 배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문득 여기저기 비슷하게 생긴 새의 형상을 한 수예품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너무 궁금해져서 바로 보이는 가게의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잘 물어본 건지 아니면 잘 낚인 건지.. 아주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비즈로 만든 그 새를 내 손에 막 쥐어주면서 열심히도 설명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아주머니가 아는 영어 단어와 마리나가 어렴풋 이해한 스패니시를 종합하자면, 그 새는 옛날의 무엇인지 신화의 무엇인지의 행운을 상징하는 새로, 과테말라를 상징하는 새라서 국기에도 새겨져 있다는 것이었다.


정확하게 이해한 건지 확인할 길은 없었지만, 나를 위한 선물을 고르지 못해 너무 아쉬워하고 있던 상황에서는 바로 이것이다 싶었다. 내가 경험한 곳을 기념하기 위한 물건으로는 충분히 의미부여가 되는 기념품이었다.



가게 지붕 위 나뭇가지에 달려있던 새 인형, 그리고 비즈로 만든 새 장식



정확한 정보를 위해 배로 복귀한 후에 항구와 새에 대해 검색했다. 푸에르토 케찰 항구는 과테말라의 가장 큰 태평양 항구로서, 화물 수송을 하는 카고선의 이동이 많고, 운행하는 항로 중에 쉬었다 가는 지점으로 크루즈선의 이동이 많은 항구라는 것이다.


또한 이 새는 아스텍 신화에 나오는 날개 달린 뱀의 형상을 한 신의 이름 케찰코와틀에서 이름을 따 케찰이라고 부르며, 중앙아메리카의 마야 문명과 아스텍 문명에서 신성한 존재로 여긴다는 것이다. 그런 케찰을 과테말라에서는 자국을 상징하는 국조로 여기면서 국기에도 그 모습을 새긴 것이고, 심지어는 화폐 단위도 케찰로 부른다는 것이다.



과테말라의 국기, 그리고 국조 케찰 (출처: 구글)



구체적인 정보도 없이 기대도 없이 나갔던 과테말라의 푸에르토 케찰 항구는, 항구 앞 로드사이드의 작은 마을을 통해 완전히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엿볼 수 있어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특히 멀리 가지 않아도 과테말라의 분위기를 느끼기에는 충분했다는 생각에, 항상 시간이 없는 우리에게는 더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그 매력이 인상 깊게 남아 그곳에서 찍은 사진과 기념품에도 애착이 남는, 그런 항구로 내 마음속에 남았다.



기항지에서 찍은 사진 중 내가 뽑는 베스트 포토, 그리고 내 차에서 나와 항상 함께하는 케찰






내가 실린 잡지가 몇 있는데 그중 하나. 트래블러 2019년 12월호에 실렸던 서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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