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엔, 집 안에 욕탕이 있었다.
요즘에 욕탕이라고 하나, 아무튼. 태권도하다가 팔이 부러져 통깁스를 했을 적
너무 목욕이 하고 싶어, 엄마가 깁스 자리에 비닐봉지를 묶어줬던 일이 생생하다.
뜨거운 욕탕에서 몸을 녹이면, 어쩐지 맨몸의 나를 이 각도에서 보는 것도 처음일뿐더러
화장실의 특정한 지점을 뚫어지게 쳐다볼 일이 생기곤 한다.
어렸을 적, 종종 물에 떠다니던 먼지를 쉬익 가져다 바깥에 뿌리기도 하고
장난감을 넣어보기도 하고, 그렇게 물은 나에게 친근한 공간이 되었다.
성인이 돼서도, 수영을 가장 오래 했고 늘 수영이 끝나면 어린이 풀에 들어가
몸을 동동 띄우고 수영장 천장을 보며 20분 동안 아무 생각을 안 하는 시간을 가졌다.
물론 종종 같은 반 아주머니들이 말을 걸기도 했고, 배운 수영을 복습하기도 했지만,
난 그 시간이 유난히 좋았다.
물에 들어가고 싶어, 간 스쿠버다이빙에서 나를 가르쳤던 강사는
"어쩐지, 스쿠버다이빙보다 물 자체를 좋아하시는 것 같네요"라고 말하며,
물에서 수영하고 있는 나의 영상을 보여줬다.
물 안에 몸을 담그면,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어쩌면 메마른 공기 때문에, 더 각박한 생각을 하지 않는가 하는 것처럼.
대학생 때, 어쩐지 늘 혼자 있는 기분이 들었던 곳에서 빠져나가
집으로 갔을 때도 나는 늘 일주일에 한 번씩은 욕탕을 갔다.
핸드폰을 자물쇠에 잠구는 일이 목욕탕 말고 더 있을까? 그 잠깐의 순간이라는 게,
그리고 물에 들어가면 정말이지 아무 생각이 들지 않다가,
또 들었다가, 그 생각들을 정리하다, 결국 다시 아무 생각 없이 몸을 헹구고 집으로 간다.
이 일련의 절차들이 나는 너무 좋았다.
사우나, 목욕탕을 못 가니 나는 올 한 해 나를 위한 선물로 집안에 욕조를 구매했다.
정말 어이없도록 큰 욕조였지만,
무슨 객기로 이 욕조를 산 걸까 싶지만 간간히 뜨거운 물을 붓고 조명을 옮기고
인센스를 켜고 책을 읽거나 드라마를 보면 건조한 바깥에서 즐기는 것과는 분명 또 다른 느낌이 있다.
물론 책이나 핸드폰이 물에 빠졌다간 정말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을 맞이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하지만 말이다, 그 위험 감당 이상으로 느끼는 행복이 크다.
매일매일 치이고, 힘들고, 스트레스의 일련의 연속인 일상에서 정말 모든 걸 내려놓고 아무 생각 없이 있을 수 있는 순간이 너무 귀하다.
오늘은 불을 다 꺼버리고, 문도 닫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욕조 안으로 머리를 넣고 잠깐 있었다.
살면서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숨 쉴 수 있는 오분 남짓이 정말 귀하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집 안의 "욕탕"이라는 사치를 부린 것일지도.
물 흐르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지만, 그 순간이 좋아
씻고, 다시 어린이 대공원을 걸었다.
어린이 대공원에서 웃는 아이들을 보면 정말이지 스트레스가 풀리지만,
나이가 나이라 그런지 부모님과 꼬꼬마 아기들을 보면 결혼과 육아를 하는 나를 상상하게 된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니, 가는 빈도도 잦아들게 된다.
꼬질한 슬리퍼를 신고 어린이 대공원을 나오며 문득 나를 닮은 아이는 어떨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나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나처럼 자란다면 난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은 들겠지만, 말이야
슬픔보단 그래도 행복이 많지 않을까?
이 수많은 글들, 묻힌 글들을 보여주며 같이 글을 쓰면 어떨까 하는 "망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