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아니 혹은 30년 만에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다.
함께 있으면 충만해지고, 행복하고, 진정 두부 같은 그 사람이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생긴다.
20대에는 연애를 하더라도 내가 굉장히 중요했기에 그들과의 시간은 내 일상을 보조하곤 했다.
모든 쉬운 관계라는 가정하에, 모든 것들이 쉬웠다. 쉬운 사랑의 말, 쉬운 이별의 말, 쉬운 상처의 말.
폭풍과 같은 2년을 지나고, 서른이 된 지금. 모든 쉬울 수가 없는 관계 아래에서 시작된 관계는
나 스스로도 성숙하고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사람이 너무 좋다.
그 사람을 떠올리면, 그래 '두부'같은 사람 같다.
연약해서 깨트리고 싶지 않고, 너무 하얗고 투명해서 고이 다루고 싶은.
그 사람이 상처받지 않게 내가 지켜주고 싶은, 그런 두부 같은 사람.
차에 탈 때마다 차문을 그렇게 여는 날 보면서, "혹시, 내 차에서 냄새나?" 하나 말 못 하고 삼 주를 참은
그 사람을 이해하는 그 과정은 어쩌면,
내 연애사에도 다시없을 경험이자 없었던 경험이지만 말이다.
나에게 있어 사랑이란, 그에게도 말했지만
지갑에 500원 밖에 없을 때도 그 사람이 좋아하는 초콜릿우유를 먼저 살 생각이 떠오르는 것.
한평생을 다르게 살아온 남에게 마치 부모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몇 겹의 인연으로 이루어진 사이이기에 가능한 걸까 마음속으로 세어본다.
사랑하면 두부 속에 있는 느낌이라니. 그에게, 서운함을 표하고 나서 무심코 들어간 메일함에 남겨진 문학동네 우시사(우리는 시를 사랑해)를 보니 남겨진 두부의 문장들.
내가 그를 빗대며 해석한 두부와는 다른 이야기지만 말이다. 사랑하면 두부 속에 있는 느낌이라니.
그리고 그 상실의 마음을 굴리린 눈사람, 그 짠 마음이 굳어지면 두부라니.
영영 하얀, 하얄 수밖에 없는 두부가 어쩐지 슬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