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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xley Jul 10. 2023

낭만은 없다. 그건 이미 시체가 되었으니.

  낭만은 없다. 그건 이미 시체가 되었으니. 끝없는 구멍에 고개를 처박고 있다. 눈앞은 어두워 뒤편조차 보이지 않는다. 어느샌가 희미해져 버린 희망을 바라본다. 극히 선명하고 푸르던 희망은 그것의 빛을 잃은 지 오래. 가슴에 구멍을 파놓은 지도 오래다.     



  점에서 원, 원에서 공허로. 커진다. 메워지지 않고, 끊임없이 불탄다. 온갖 힘이 되는 말들은 자막을 달아도 알아들을 수 없다. 나는 희망 앞에 선 맹인. 별의 추락, 희망의 변질. 주저앉는다.   


  

  구멍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들이켜는 물. 그 속에서 잠겨 죽기를 빈다. 나를 살려주세요. 아무도 듣지 않고. 재주를 부려도 모두 제 갈 길을 갈 뿐. 부디 당신이 망하길. 나 아닌 사람들은 모두 망해버리길.


    

  나는 기도한다.    


       

-

  비극은 저마다의 말과 말이 이어져 생겨난 불운이었다. 아무개는 말했지. 왜 내게만 이런 일이 생겨나나요. 그건 네가 기도를 부족하게 채웠기 때문이란다. 나는 당신의 말을 거부하기로 했다. 거부는 저항이 되었다. 왜? 이런 내가 어떻게 보이길래? 뭐, 괜찮아. 어찌 됐건 나는 불운마저 받아들이려고 해. 이건 나의 삶. 내가 품어내는 사람들이니깐. 겸허한 마음이었다.  


        

-

  두려운 아이가 있다. 너는 나의 불안, 너는 나의 행복. 너에게 전화가 올 때면 장도리가 나의 뒤통수를 후린다. 심장이 펑. 눈앞의 공책이 어느새 새하얀 모래사장이 되지. 맞아. 여기서도 나오는 나의 감정은 애증이다. 애증이 얼마나 잔인한 감정인지. 이것 봐. 나의 애증이 이렇게나 아름다워. 맨정신은 감당치 못할 만큼 아득히.     



  너를 떠나고 싶다. 너를 버리고 싶다. 그런데.     

  부탁한다. 나를 살려주었으면 한다. 그러나 너는 원치 않겠지. 나의 불안은 너의 행복, 나의 행복은 너의 불안. 우리는 어쩌면. 이겨내기 어렵다. 그래도 언젠가는 말이야.


    

  아무튼, 너로 인해 나는 오늘도 화가 나.    


      

-

  침대에 누워. 아니 앉아 시를 읽는다. 오늘은 고명재의 시를, 어제는 최승자의 시를. 내일은 또 누구의 시를. 나는 당신들에게서 무엇을 얻으려고.     



  시를 읽고 나면 글을 쓴다. 당신들의 자음과 모음으로부터 더 멀리 떠나갈 힘을 얻는다. 이건 아마 보이저호의 랑데부처럼. 어려운 시는 나의 쉬운 삶이 된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아쉬워. 쓸 때마다 나의 의욕을 붙잡아두려 하는데 말이야. 아 모르겠다. 이쯤에서 으레 나올 법한 한 마디. 어쩌면 좋지?          



-

  나의 글에 관해 사유한다. 나의 글은 하루 치 사유의 재료가 된다. 나의 글은 수필이고, 나의 글은 나의 삶을 담아낸 그릇이다. 향기는 나지 않아. 이건 그냥 회색빛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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