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파가 욕을 먹는 것은 하루 이틀 이야기가 아니다.
신파는 정말 무구한 역사를 가지고 계속되고 있다.
그 역사의 맥이 끊어지지 않는 이유는 사실 너무 당연하다.
신파가 계속해서 먹히기 때문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한 편이 있다.
신파라는 딱지가 붙어버리니 관객들에게 배우들의 호연이나 우주를 재현해내는 기술력이 언급될 기회조차 잃었다. 신파를 들고 나온 감독의 안일함을 탓하는 기사가 쏟아진다.
하지만 이 감독의 선택은 정말 필수불가결하다.
그는 신파로 성공한 작가다.
신파로 쌍 천만이라는 희대의 기록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신파 덕에 그가 가지게 된 것은 사실 이 기록만이 아니다.
그러니 상업적 이해관계로 보면 이전 영화보다 더 큰 제작비가 들어간 다음 영화에서 더 신파적으로 가는 선택을 하는 것은 당연하고 현명하다. 이쯤에서 그만한 것이 되러 신기할 정도다.
내가 신파를 이야기하며 자꾸 영화를 말하는 것은 내가 영화감독이라서가 아니다.
영화라는 장르가 그 어떤 매체보다도 상업적인 책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 밝힌 대로 '흥행을 위주로 한, 흥미본위의 극'이 신파이니 그 어떤 매체의 스토리보다 신파와 친할 수밖에!
그러니 오늘의 이야기는 다소 영화나 드라마 등에 기인할 수 있음에 먼저 양해를 구한다.
당신의 스토리가 신파를 취하던 피하던 그것은 작가가 원하는 대로 가면 된다.
그런데 어쩌다 나도 모르게 신파가 되지 않으려면 한 가지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소비자에게 닿을 때는 당신이 글이 글로만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집필단계에서 묘사를 하다 보면 감정의 크기를 가장 고민하게 된다.
이 정도면 되나? 이쯤이면 전달이 되었을까?
이만큼이면 사람들이 슬퍼할까? 눈물이 흐를까?
그런데 만약 당신의 스토리가 지금 쓰는 글쓰기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면 지금 결정하는 것에는 상당한 오류가 생긴다.
소설이나 시가 아니라 웹툰, 시나리오, 드라마 대본등일 때 말이다.
왜냐하면 이런 창작물은 그 자체로 작품이 아니라 다른 작업물을 위한 보조체이다.
그러므로 이 글만으로 소비자에게 닿는 것이 아니라 그림이 추가되든, 배우의 연기가 추가되든, 음악이 추가되며 감정적 펌프질이 예측불가하게 커지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글만으로는 전혀 신파적이지 않던 것이 이런 것들과 결합하며 감정적 과잉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나도 개봉 당시 어떤 한씬을 두고 엄청난 회의를 거쳤다.
그 씬을 시나리오로 쓸 때는 나는 전혀 과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전 제작준비과정에서 그 누구도 과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앞씬에 배우들이 말 그대로 열연을 해줬다. 거기에 절묘한 영화음악이 더해지니 감정의 포션이 커져 앞씬 하나로도 충분한 지경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그 다음 씬을 붙여 개봉했다.
블라인드 시사회를 통해 다음 씬을 잘라도 충분히 관객에게 전달된다는 걸 확인했지만 상업영화답게 관객들에게 좀더 확실하게 가자는 방향으로 의견이 좁혀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런 결정이 감독의 결정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절대 아니다. 제작사와 투자사, 배급사, 제작팀원들까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회의를 거듭한다.
왜냐하면 상업영화는 상업적 책임이 있는 제품이지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걸 알면 위에 언급한 영화도 감독 혼자 안일하다고 뒤집어 쓰기에는 억울한 구석이 있다.)
<브로커>는 휴머니즘이고 <비상선언>은 신파라니..
가족애에 대한 말하는 것은 같은데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이 두 편의 영화만 봐도 신파를 결정하는 것은 서사의 문제가 아니다.
모성애나 숭고한 사랑을 다룬다고 덮어놓고 신파가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가 조금만 더 일찍 만났더라면 버리지 않았어도 될 텐데..
아직도 늦지 않았어.
한 마디씩 해주겠다며 이지은이 눈을 감고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하는 장면은 어쩌면 신파의 끝이다.
대사로 치면 이것만 한 신파도 없다
이 두 영화의 차이는 대사와 스토리, 배우들의 연기, 카메라의 접근, 영화음악, 연출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결과물이 결국 과잉되었는가 아닌가의 차이다.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스토리는 무엇을 위한 스토리인가?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신파를 피하는, 혹은 취하는 시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