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학생이 아니니 문화건달이다"
은사님께서 영화과 졸업생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벌써 그 말을 들은 지 15년이 지났지만 잊히지 않는다.
처음 그 말씀을 들었을 때는 웃었지만 정말 정확한 표현이라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동의하기 때문이다.
그 말씀을 부정할 수 있는 순간은 없었다. 아직.
그것은 왕왕 경험하는 아침 출근길에는 더욱더 그렇다.
오랜만에 출근시간에 지하철에 올랐다.
건달인 내가 이렇게 출근 시간 정가운데를 지나는 일은 흔치 않다.
오늘은 비 오기 직전의 날씨와 폭염이 만나 그야말로 최악의 여름날씨였다.
이런 날씨에 출근길 1호선이란 정말이지 지옥철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다 탈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던 사람들이 지하철 안으로 순식간에 밀려들어왔다.
덥고 불편하고 답답하고 힘들지만 다들 아무렇지 않다는 듯 핸드폰을 보거나 쪽잠을 청하고 있었다.
화를 내지 않는 것, 불평을 하는 않는 것이 상식이라지만 이런 상황에서 매일 아침 매일 같은 시간에 이렇게 침묵할 수 있는 것은 고귀한 순례길과 같다.
그들의 인고는 전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입시 심사를 하다 보면 영화를 하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영화 공부에 매진했다는 학생들을 종종 본다.
아주 솔직히 나는 그런 친구들의 선택은 기만이라고 생각한다.
다들 공교육이 절실하게 필요해서 학교에 남아있는 것이 아니다.
학교에 규율과 원칙이 만만해서 교복을 참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고 싶은 걸 못 찾아 할 것이 없어 시간을 때우러 가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입시라는 숨 막히는 터널로 향해 걸어가는 그 걸음걸음을 그저 무력한 걸음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영화는 결국 그렇게 걸어가는 다수에게 닿아야 한다. 그런데 그들의 숭고한 걸음에서 도망쳐서 하물며 그 걸음을 가벼이 여기면서 영화를 하겠다는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나도 같다.
오늘 나와 지하철에 같이 있던 그 많은 사람들이 할 줄 아는 것이 없어서, 하고 싶은 것이 없어서, 돈의 노예가 되어서 지하철 순례길에 오른 것이 아니다.
매달 일을 하고 월급을 받기 위해 감내한 많은 한숨과 부당함, 어려움과 난처함 앞에서 나는 까불면 안 된다.
그들만큼 벌지도 못하거니와 그들만큼 참을 줄도 모르는, 아니 참아본 적도 없는 나는 그냥 가만히 있어야 한다.
글을 쓰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
다들 그런다.
하지만 정말로 정말로 회사원들보다 어렵지 않다.
동지 건달들아.
글을 쓰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