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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넬의 서재 Feb 23. 2024

방황할 자유, 절망할 자유, 슬퍼할 자유

함부로 무너지고 방황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축복이다


Miley Cyrus - "Used to be Young" 



어렸기 때문에 함부로 쏟아낼 수 있었던 불안과 상처와 절망이 옅어진다. 더이상 상처받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기보다 더이상 함부로 자신의 속내와 상처를 드러내지 않는 나이가 된 탓이다. 그때는 심장에 화살이 꽂힌 듯 절망하고 울부짖었지만, 그렇게 함부로 방황하고 무너질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었다는 아이러니를 시간이 지나고서야 깨닫게 된다.


방황할 자유, 절망할 자유, 슬퍼할 자유는 그 유효기간이 그리 길지 않다. 스스로의 감정 스펙트럼을 하나하나 모두 겪어보고, 그걸 심지어 표출해도 욕을 먹지 않는 시간은 정말로 생각보다 길지 않다. 내 시간에 가속도가 붙을수록 나는 내가 그대로라고 생각을 해도 세상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때는 자유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들 또한 하나의 자유이자 특권이라는 걸 뒤늦게야 깨닫는다.


멋모르고 함부로 미치고 방황하고 포효하고 무너지고 절망하던 시절에만 나올 수 있었던 흔적을 몇 년만에 되돌아본다. 감정이 무뎌진 탓인지, 이미 한 번 겪어본 일들인 탓인지 영혼이 산산조각 날 것 같았던 슬픔은 더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그때 탈고를 하고 스스로의 내면의 가장 어두운 곳을 들여봤었기 때문에 이제 아무런 슬픔도 묻어나오지 않는 건지도 모른다. 이제는 타인의 슬픔을 보듯 내가 지나왔던 슬픔을 무덤덤하게 바라본다. 그러나 내가 아직도 이러한 익명의 글을 쓴다는 사실 자체가 내 안에 온전히 보내주지 못한 무언가가 여기 남아있기 때문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나의 관심사와 세상의 크기와 목소리는 바뀌었지만, 내 오래된 글들이 시간이 흘러도 그 자리에 지키고 설 수 있는건 또 다음 세대가 똑같은 아픔을 고스란히 겪고 성장하기 때문이다. 가장 사적인 이야기가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라고 하던가. 나만이 겪었던 특별한 감정이라고 생각했던 일련의 감정들은 결국 또 그 나이 또래들이 자신만의 특별한 감정이라 생각하며 성장한다. 물론 그 감정을 일으키는 구체적인 경험은 다를 수 밖에 없겠지만, 큰 틀에서 보면 사람이 겪는 문제들은 그 범주가 그리 넓지는 못하다. 그래서 적당히 모호한 글 속에 자신의 경험을 투영하여 자신만의 이야기인 마냥 공감을 하게 된다. 


한없이 예민하고 불안하기만 했던 세계가 가져다주던 창의력과 조금 더 견고하고 단단한 형상을 띄게 된 나의 새로운 세계 속에서 나는 아직도 가끔 저울질을 한다. 지금처럼 내가 그려가고 싶은 세계를 만들며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욕구와 잃을 것 자체가 없어 오로지 본능과 감정에 충실하게 미쳐버리고 싶은 욕구가 충돌한다. 


당연히 두 번 다시 어둠 밖에 없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동시에 일말의 불씨도 없어 어두워서 나를 완전히 놓아버릴 수 있던 그 자유 아닌 자유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지금 내가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는 세계가 여기서 더 굳어져버리면 그때는 정말로 더이상 두 번 다시 방향을 틀거나 이곳을 탈출하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앞선 걱정을 하기도 한다. 과연 내가 빚어가는 세상이 내가 원해서 만들어가는 세상인지, 아니면 이제 그럴만한 때가 되었기 때문에 마지못해 시늉이라도 하다가 이곳까지 오게 된 건 아닌지.


찾으면 안되는 옛 연인을 찾듯 오래 전에 멋모르고 싸질러 놓았던 내 세상을 돌이켜본다. 그리고 또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책을 덮고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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