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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넬의 서재 Oct 27. 2024

그래도 엄마는 행복한 사람이야.

<어느 치매 노인의 일기> 6편 

*<어느 치매 노인의 일기>는 90대 치매 할머니와 60대 딸, 20대 손녀가 함께 살며 겪는 따듯하고도 슬픈 이야기를 엮은 장편 소설입니다. 본 소설은 완결까지 탈고된 상태로 브런치 공모전 용도로 맛보기차 업로드합니다. 공모전이 끝나면 다시 처음부터 한 편씩 업로드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큰딸은 어쩌다 함께 살게 된 한참 어린 두 번째 남편이 있었다. 그러나 남편의 잦은 지방 출장으로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둘째딸이 쉬는 날이면 꼭 차를 끌고 가 같이 요리도 하고, 수다도 떨고는 했다. 


큰딸은 그때까지 할머니가 그렇게 노쇠한지 잘 모르고 있었다. 잘 몰랐다기보다 딱히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치매기가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실제로 겪어본 적이 없었기에 겉으로 잠깐 봐서는 멀쩡해 보였다. 키가 좀 줄었을 뿐, 큰딸 눈에 할머니는 여전히 고집불통에 제멋대로인 노인네였다. 


예전에는 차로 한 시간이 넘는 거리에서 살아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하고 살았다. 할머니의 안부도 굳이 먼저 묻지 않았다. 당연히 몇 년째 할머니를 모시는 둘째딸 입장도 생각해볼 이유가 없었다. 


자신 또한 어려서부터 희생만 하고 살아서 그런지 둘째딸의 희생이 얼핏 당연하게 느껴졌다. 얼마되지 않는 할머니의 재산도 둘째 딸에게 모두 돌아갔고, 자신 또한 성실하게 둘째딸 집 반찬이니 용돈을 빼먹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큰딸은 동생이 할머니를 모시기 힘들다고 푸념을 할 때마다 묵묵히 들어주었다. 그러나 둘째딸의 고심이 피부로 와 닿은 적은 없었다. 그저 동생에게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만 잠깐씩 들 뿐이었다. 혹은 어릴 때부터 가장 사고를 덜 친 둘째딸이었기에 막연한 잘하겠거니 했는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큰딸은 처음으로 둘째딸이 할머니를 모시는 모습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둘째딸네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큰딸은 할머니와 둘째딸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 겉보기와 다르게 할머니는 생각보다 더 노쇠했고, 정신이 불안정했다. 말귀를 얼마나 알아듣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고, 혼자 집안에서 돌아다니는 모습조차 넘어질라 불안불안했다. 치매 노인답게 휴지만 보면 주머니에 숨기기 바빴고, 행여나 누가 휴지를 치우면 “이리 내놔!”하고 버럭 신경질을 냈다. 큰딸은 처음으로 할머니가 치매 노인이라는 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혼자 있을 때 먹을 간식을 챙겨주고, 노인네 옷을 습관적으로 고르는 둘째딸의 모습도 유난스러워 보였다. 둘째딸은 어린아이 대하듯 할머니 앞에서 애교를 부렸다. 반백살도 넘은 둘째딸이 할머니 앞에서 재롱을 떠는 걸 보고 큰딸은 자긴 저렇게 까지는 못한다고 손을 내저었다. 이제 혼자서는 숟가락도 들지 않는 할머니를 보고 저게 엄마인지 자식을 하나 더 키우는 건지 기가 막혔다. 자기는 두들겨 패서 키우더니 늙어서 팔자 좋게 자식들 예쁨 받고 호강하는 할머니가 괜히 얄밉기도 하였다. 


그러나 할머니가 바지에 똥을 싼 이후로 모든게 달라졌다. 큰딸은 할머니의 치매가 심해져 직장을 관두고 할머니만 돌봐야 하나 하는 둘째딸을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큰딸은 둘째딸이 쉬는 날만 놀러 왔다. 하지만 자주 할머니를 지켜본 큰딸은 빈 집에 치매 노인네 혼자 있다는 사실이 불안하기만 했다. 집에 가만히 있다가도 문턱에 걸려 돌아가실 수도 있는 노인네였다. 배가 아무리 고파도 누가 없으면 혼자 굶다 쓰러질 수도 있었다. 할머니는 벌써 몇 번째 혼자 집을 나갔다가 들어오지 못해 밖에서 떨고 있었다. 언제 문을 따고 혼자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길을 잃거나 바지에 똥을 쌀지 몰랐다. 


요양원 이야기도 얼핏얼핏 나왔지만, 뉴스에 나오는 요양원은 노인 학대부터 방치까지 공포영화에 가까웠다. 할머니처럼 성질 고약한 노인네가 감옥 같은 곳에서 얼마나 버틸지 불 보듯 뻔했다. 돈은 둘째치고, 요양원에 가면 노인들 코로나 집단 감염에, 수면제를 먹인다는 말까지 안심할 수 없었다. 게다가 코로나로 요양원에 가족들도 만나지 못하고 사실상 감금되는 노인들이 늘고 있었다. 깜빡깜빡 하는 할머니조차도 요양원의 '요'자만 나와도 눈에 불을 켜고 자기를 어디로 보내려냐고 노발대발했다. 어쨌든 노인정은 저승길이라고 여기는 노인네였다. 


큰딸은 딱히 할머니에 대한 좋은 감정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엄마인데 어쩌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큰딸은 노인네를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불과 몇 십 년 후 자신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았다. 어쩌면 할머니는 차라리 행복한 편 일지도 몰랐다. 자식도 없는 큰딸은 자신이 늙으면 아무도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걸 퍼뜩 깨달았다. 큰딸은 “그래도 엄마는 행복한 사람이야”며 할머니의 손을 꽉 쥐어주었다.




7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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