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지 열심히 일하지도 않았는데,
업무가 끝나가는 시간이 될 때쯤 머리가 핑핑 돌고 속은 부대낀다.
귀에 전화기를 더 대고 있으면 멀미가 날 것 같아
전화를 끊고 짐을 챙겨 10분 일찍 퇴근했다.
한동안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지 않아서 그런가
아니면 배가 고파서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뭘 해도 몸상태가 좋아질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오늘 고생했는데, 비싼 밥 챙겨 먹어야지.
충동적으로 퇴근하는 전철 중간에 내려, 평소 좋아하던 샤브샤브 집에 갔다.
얼큰한 김치찌개 베이스로한 국물에 소고기 먹으면 기력이 생길까 싶어 배가 한가득 찰 때까지 먹었지만 결국 만족스러운지 잘 모르겠다.
밥을 다 먹고 나왔더니 바람이 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을이었던 것 같은데 시간이 무색하다.
걷다 보니 촌스러운 꽃집이 있길래 이 집은 조금 꽃이 저렴하려나 가게에 들어갔다.
오랜만에 맡는 생기 있는 향에 기분이 좋아질 찰나,
꽃 냉장고 한쪽 벽면에 붙어 있는 거울 속 퀭한 내 모습을 보고 너무 부끄러워 황급히 가게를 나왔다.
예쁜 꽃들 사이로 보이는,
굽은 자세, 헝클어진 머리 그리고 어딘가 균형 맞아 보이지 않는 코트와 가방, 얼빠져있는 눈.
초라한 행색에 부끄러움도 잠시
언제 이렇게 피폐해졌을까 서글퍼졌다.
스물여섯, 내 생기는 어디로 간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