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하고 담백한 나의 열한 번째 독백
혹시 주변에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끼리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는가? 나는 그런 경우가 왕왕 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문득, 이런 의문이 든다.
‘서로가 저렇게 다른데 도대체, 어떻게 친한 거지?‘
하지만 이런 호기심이 무색할 만큼, 각자 떨어져 있을 때보다 함께일 때 환상의 조합을 보여준다. 환상의 티키타카를 보여주며 모임의 분위기를 주도한다거나, 서로의 생각을 조합하여 신선한 아이디어를 도출해내기도 한다. 성격도, 외모도, 취향도 다른 개개인들이 만나 새로운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이다.
음식도 마찬가지이다. 자체만으로 훌륭한 음식 또는 재료들을 한데 모아 새로운 요리를 만들었다고 하자. 이를 두고 누군가는 ‘이 조합이 어울린다고 생각해?’라고 날카로운 평을 던질 수도 있다. 물론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새로운 조합을 생각해 낸 요리사에 대한 존경심이 생기는 음식들이 - 가령 제주도의 작은 이자카야에서 마주한 구운 명란구이와 오이라든가. 어느 퓨전 한식당에 대표메뉴인 갓김치 라구 파스타와 같은 -
물론 처음 보는 낯선 조합에 쉽사리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다 용기를 내어 조그맣게 한입 베어 물면, 혀끝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맛에 앞선 거부감은 흔적도 없이 사르르 녹아내린다. 남은 건 분주하게 움직이는 젓가락뿐.
오늘 소개할 요리 역시, 누군가에겐 무척이나 낯설 수 있다. 왜냐하면 내가 만나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음식의 이름을 듣자마자 모두 같은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이다.
“상추튀김? 상추를 튀겨서 먹는 거야?”
그렇다. 나의 열한 번째 독백의 주제는 ‘상추튀김’이다. 상추튀김은 정말 상추를 튀긴 음식일까?
정답은 ‘아니오.’이다. 상추튀김은 동그랗게 빚어낸 오징어 튀김이나, 돼지고기 튀김 같은 것을 상추로 싸 먹는 음식을 말한다. 튀김이라 함은 간장양념에 찍어먹거나 떡볶이와 함께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상추와 튀김의 조합이라니! ‘상추튀김’이라는 이름만으론 쉽게 유추할 수 없을 만큼 생소한 조합이다.
사실 상추튀김은 내가 사는 지역의 독특한 음식으로, 과거에는 타지에서 상추튀김 파는 가게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보편적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은 십여 년 전 어느 가을날, 내가 서울살이를 하던 때의 일이다. 출출한 배를 안고 퇴근하는 길, 집 근처 분식집이 눈에 들어왔다. 오랜 고민도 없이 가게로 들어가 모둠튀김, 순대 주문을 마친 그때! 문득 고향의 상추튀김이 떠오르는 게 아닌가. 하지만 이곳은 서울이었다. 분식집이긴 해도 상추튀김을 판매할리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애써 달래며 단념하려던 찰나, ‘살 수 없다면 만들어 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상추와 간장양념, 튀김만 있으면 상추튀김과 비슷한 느낌을 낼 수 있으리라! 상추튀김을 먹을 수 있다는 마음에 들뜬 발걸음으로 마트에 들러 양파, 청양고추 그리고 가장 중요한 상추를 구입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흐르는 물에 상추를 씻고, 진간장에 적당한 크기로 자른 양파와 청양고추를 섞어 양념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튀김을 테이블 정중앙에 올려두니 고향에서 먹었던 상추튀김의 모습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준비를 마쳤으니 본격적으로 상추튀김을 맛볼 시간이 되었다. 먼저 가장 통통해 보이는 튀김을 하나 집어 양념장에 살짝 담근다. 왼손에 자리한 상추 위에 튀김과 양파, 청양고추를 한 점씩 올려 쌈을 싸서 크게 한 입 베어문다. 튀김의 바삭함과 상추의 아삭함, 양파와 청양고추의 알싸함이 입안에서 동시에 어우러진다. 기름진 맛을 잡아주는 요소들 덕분에 튀김요리임에도 쉽게 물리지 않았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쉽게 사 먹을 수 있기에 예전만큼 자주 먹고 싶지도, 간절하게 먹고 싶지도 않다. 다만 가끔씩 상추튀김을 먹을 때마다 그날의 들뜬 감정이, 상추쌈을 싸던 분주한 손이, 튀김 한 봉지를 해치우고 느끼던 나른함은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퍽퍽한 서울살이 중 어렵게 만난 고향의 음식이었기 때문일까.
“사장님, 상추튀김 2인분이요.”
주문이 끝나자 뜨거운 기름 속으로 튀김들이 한가득 쏟아져 내린다. 튀김이 익어갈 동안, 사장님은 상추 한 봉지와, 양파와 청양고추가 담긴 간장을 비닐봉지에 담아 둔다. 곧이어 노란 옷으로 갈아입은 튀김들을 체망으로 건져 올린다. ‘탁-탁-’하고 체망에 충격을 주어 기름기를 조금이나마 빼낸 뒤, 황토색 봉투 속으로 와르르 쏟아붓는다. 튀김 그리고 상추와 양념간장이 담긴 비닐봉지를 건네받자마자 고소한 튀김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튀김의 바삭함이 사라지기 전에 집으로 가는 걸음을 서둘러야 한다. 오늘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청양고추를 잔뜩 얹어서 먹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