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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작가 Jul 29. 2024

복싱장에서 만난 사람들

3화 <참으로 긍정적이야>

거하게 스파링 한 사발 들이켜고 30대 아저씨 셋이 링 바닥에 털썩 누웠다.

각자 은행, 병원, 공기관에서 일한다. 사적으로는 별로 마주칠  없을 아저씨 셋이 서로에게 주먹질하고 땀에 흠뻑 젖은 채 누워 잠시 수다 떨었다.


몸 차가워지기 전에 빨리 샤워해야겠네요.(은행아저씨)

(우리 복싱장엔 찬물 밖에 안 나온다.)


아우 코피 났더니 머리가 맑아지고, 속이 편안해지는 게 소화되는 기분인데요?(간호사 아저씨)


물이 차가우니 역으로 몸을 덥혀 상쇄하겠다는 소리나 코피가 나도 막힌 혈이 뚫렸다는 듯 생각하는 태도나

이 사람들 참으로 긍정적이다.


혹자는 타인에게 친절하려면 친절훈련을 해야 한다고 했다. 친절에도 친절 근육이 필요하듯, 긍정적인 태도에도 긍정 훈련이 필요한 듯하다.


복싱할 때도 긍정 근육이 상당히 필요한데,

일반적으로 복싱하면 떠오르는 영화 록키의 줄넘기와 로드웍(러닝)하는 장면 생각해 보면, 


복서들은  유산소 운동을 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스킬과 타격 센스가 있어도 그걸 꺼내  체력이 없으면 아무 소용없어서 그렇다.

스파링 할 때 힘들면 머리가 둔해지고 반응 속도도 줄어든다. 상대가 나에게  할지 알아도  몸이 안 따라  때만큼 무력해지는 순간이 없다.


문제는 정말 체력이 없어서 그렇게  때도 있지만, 의지가 꺾여서 그럴 때도 있다.

경기에서세게 맞아도  아픈 척, 힘들어도  힘든척하는 연기가 매우 중요하다.


단순 센척하는 거랑은 다른 느낌이다.

우리도 결국 한낱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 멀리서 보면 뻔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날 진심으로 쓰러뜨리려는 상대를 앞에 두고는 무슨 짓이든 해야 하고 또 막상 가까이서 마주하면 사뭇 효과적이다.


예컨대,

내가  힘을 다해  주먹이 상대에게 통하지 않은 것 같다. 사실 통했는지 안 통했는지 알 수가 없다. 상대가 아무 내색을 안 하고 있으니 잘 모르겠다.

오히려 상대는 하나도  힘들어 보이는데 

나는 차라리 그냥   맞고 그냥 바닥에 눕는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정도로 이 든다.

그렇게 한 번 마음이 꺾이기 시작하면 경기를 계속해 나갈  없다.

만약 처음에 내가 친 주먹에 상대가 아파하거나 표정이라도 바뀌었다면 내 의지가 그렇게 꺾이지는 않았을 거다.


복싱 초심자들이 물에 데친 나물처럼 푹푹 숨이 죽을 때가 이때다. 힘들면 힘든 대로 그대로 다 티를 낸다. 맞으면 맞는 대로 윽윽 소리도 내고, 몸도 심하게 흔들리고,  빛도   맞을 때마다 심하게 흔들리고 변한다. 상대 입장에서는 그보다 좋은 영약이 없다. 없던 기운도 생길 판이다.


나도 그런 모습을 벗어내려고 많이 노력했다.

2라운드 3라운드로 넘어가면서 실제로 몸은 힘들지만 속으로 무한도전 시절 노홍철을 생각하며

‘아니?’ ‘나 하나도 안 힘든데?’ ‘아니? 아닌데?’ ‘하나도 안힘들지롱’ 혼자 되뇌면서 스파링을 풀어나갔다.

스파링이 끝나고 영상을 돌려보면 확연히 른 걸 느꼈다.

나는 평소처럼 힘들었는데,  몸짓 손짓 발짓이   경쾌하고 여유 있어 보인다. 상대는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차리곤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

사실 그때 상대가 밀어붙였으면 내가 바닥에 누웠을 텐데 말이다.


체력이 없더라도, 주먹 맞더라도 괜찮다.

상대가 주먹을 마구 날리며 달려드는 상황에도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정신력과 판단력 그리고 참을성.

복싱에서 기를 수 있는 건 대부분 물리적 내성에 기반한 저항성이겠지만

우리가 동물인 이상,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믿는다.

오늘도 긍정 실을 뽑아내 한 땀 한 땀 옷을 지어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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