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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별꽃 Nov 25. 2022

중전도 엄마다, '슈룹' 재밌게 보는 법

드라마를 보고서


슈룹은 그간 한국에서 선보인 적 없는 파격적인 이야기다. 사고뭉치 왕자들을 위해 치열한 왕실 교육 전쟁에 뛰어드는 중전의 고군분투기를 그렸다.     


세 왕자의 왕위다툼을 그린 ‘주몽’보다 캐릭터성이 다채롭고 신분의 한계를 딛고 왕에 등극한 화랑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선덕여왕’보다 드라마틱하다. 또 정조의 짝사랑을 계속 거절한 궁녀 성덕임 이야기인 ‘옷소매 붉은 끝동’보다 진보적이다.      


사극에서 주변인물로 그려지던 중전을 극의 중심에 뒀기 때문이다. 예능프로그램의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엄마판 스핀오프라고나 할까. 슈룹 덕에 연모하는 이를 향한 절개를 보여주거나 갖은 음모와 계략으로 점철된 악독한 여인으로만 이분화되어 그려지던 사극 속 여성상에 균열이 나고 있다.      


“조선에서 가장 걸음이 빠른 중전마마 납시오”     


슈룹 포스터에 있는 문구다. 예로부터 신분이 높은 자는 뛰면 안된다고 교육받았다. 오죽하면 걷는 것도 힘들어서 사람을 사서 가마를 탔을까. 더욱이 중전은 품위를 지켜야하는 자로서 궁 안에서 몸가짐을 조심히 해야했을 것이다. 그런데 ‘조선에서 걸음이 가장 빠른’ 중전마마라니! 이미 슈룹은 새로운 이야기를 예고했다.     


슈룹은 '우산'의 옛말로 비바람으로부터 자식들을 막아주는 임화령을 상징한다.     


이를 증명하듯 슈룹은 중전을 해결사로 재조명했다. 여장 하는 아들, 사랑에 휘둘리는 아들, 병약한 아들 등 사건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화령은 뛰어난 순발력과 임기웅변으로 위기를 극복한다. 히어로의 등판이다. 화령은 아들을 왕세자로 만들기 위해 대비와의 신경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신분을 감추고 궁밖을 돌아다니며 며느리감을 직접 고르기까지 한다.       


왕 옆에 병풍처럼 앉아 인자한 미소를 짓기만 하던 기존의 중전과는 확실히 다르다.      


화령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생존과 직결돼 있다. 자신의 아들들이 아닌 후궁의 왕자들 중에게 세자직분이 넘어가는 순간 그녀를 비롯해 아들들 목숨 또한 잃을 위기에 처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죽은 세자의 동생인 네 명의 왕자들이 세자가 될 만한 자질을 지녔냐 하는 것인데 극 초반에는 한숨만 나오는 상황이었으나 최근 성남대군이 세자에 등극하면서 화령은 한시름을 놓는다.      



일각에서는 슈룹을 두고 역사왜곡 논란을 제기한다. 왕 이호가 화령의 보조적인 인물로 그려진다는 점이 문제 삼을만 하다. 이호는 화령이 의견을 내면 따르는 식의 소극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왕이다. 경쟁자도 품는 리더십은 화령에게서 돋보인다. 그는 택현 경쟁으로 심신이 약해진 보검군을 내치기는 커녕 “힘들면 티를 내라”고 다독이면서 성남대군에게 힘을 싣어줄 것을 요청한다.      


중전과 후궁들과의 관계도 판타지에 가깝다. 화령은 태소용이 중궁전 정보를 유출한 것과 비방서를 퍼뜨린 죄를 물어 태소용을 중궁전 나인으로 강등시키면서도 태소용의 몸을 힘들게 만들어서 마음의 시름을 잊게 만들려는 배려를 선보인다.      


여성을 바라보는 색다른 시각은 화령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여성 캐릭터인 청하와 초월에게도 현대적인 가치관이 반영됐다. 대비 사람인 병판대감의 첫째 여식인 청하는 천방지축 여걸다. 매파들의 외면을 받던 그는 저잣거리에서 만난 선비님(성남대군)에게 첫눈에 반해 그에게 올인한다. 선비님이 백마 타고 오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직접 찾아 나선다. 처음 화령에게 조차 마음에 둔 남자가 있다고 당당히 밝히고, 성남대군의 정체를 알고는 궁에 들어가고 싶다고 아버지에게 부탁할 정도로 동네방네 자신의 마음을 떠벌리고 다닌다. 


이처럼 재기발랄한 여인의 등장은 사극의 변화를 예고한다는 점에서 설렘을 전달한다.      


초월은 무안대군이 사모하는 대상이자, 기생이 되려는 여인이다. 초월은 무안대군의 어머니 화령에게 매서운 경고를 받았지만 결국 사랑을 택한다. 심지어 자신을 정실도 아닌 첩으로 들이겠다는 남자에게 말이다. 또 초월은 마음을 정리하라고 설득하는 화령에게 “제 인생을 맡길 생각이 없다. 인연은 정리할 수 있지만 마음을 끊어내는 것은 약속할 수 없다”라며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화령에게 소신껏 전한다. 이뤄질 수 없는 사이라는 걸 알면서도 모질게 밀어내지 못하는 여성의 마음을 현실적으로 그린 대목이다. 


만약 이를 두고 조선시대 여자가 그런 생각을 해? 라고 한다면 당신은 20년 전쯤 드라마 세계관에 박제된 냉동인간이다.      


한마디로, 드라마를 드라마로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슈룹은 KBS1TV 역사 사극이 아니다. 왕도, 왕비도, 왕자들, 그 어떤 인물들이나 사건도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허구다. 


역사를 있는 그대로 고증하는 드라마가 아니라 시대적 배경만 조선시대일 뿐 ‘중전이 낳은 아들들과 후궁이 낳은 아들들 중 누가 세자의 자리를 차지하느냐’를 놓고 경합을 벌이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경쟁이 궁극적으로 향하는 방향성은 조선시대 엄마들이 진짜 엄마로 거듭나는 성장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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