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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별꽃 May 31. 2023

초대받지 않은 하객(1)

당신의 친구가 돼드립니다

신부대기실 앞.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안으로 들어간다.


“○○아 결혼 축하해~”


웨딩드레스를 입은 ○○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맞이한다. 한번도 본적 없는 사이인데 왜 내 이름을 막 부르냐는 표정이었다.


“누구?”


나는 하하하 일부러 호탕하게 웃으며 받아쳤다.


“얘가 왜이래? 너 나한테 청첩장도 보내줬잖아. 그나저나 너 오늘 정말 예쁘다~”      


요즘 주말이면 결혼식장 하객알바를 한다. 내 임무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하루를 보낼 누군가의 친구가 되어 빈자리를 메우고 체면을 세워주는 것. 한 건 하는데 버는 돈은 고작 만오천원. 집에서 식장까지 이동하는 시간, 식장에서 대기하는 시간, 하객차림으로 준비하는데 드는 품 등을 고려하면 짜디짠 열정페이지만 누군가의 근심걱정을 덜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초대받지 않은 하객이 된다는 건 꽤나 신경쓰이는 일이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 결혼식장에 일찍 와서 가장 늦게까지 자리를 지켜야 하니까. 식사제공이 되는 결혼식에서는 무료로 뷔페음식을 먹을 수 있는데, 신랑신부가 인사를 하러 연회장에 올 때 또 한번 어색한 인사를 해야하는 단점이 있다. 모르는 사람에게 반말을 하는 것도, 마음에 없는 사람의 결혼을 축하해주는 것도 어디가서 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다행히 내 적성에는 맞았다.        



신랑신부가 하객알바를 쓰는 이유는 ‘머리 수를 채우기 위해서’다. 그들은 ‘초대할 친구가 별로 없어 돈으로 사람을 샀다’는 비밀을 안고 있다. 비밀을 지켜주는 게 우리의 일인데, 남들에게 그럴듯하게 보이려면 뻔뻔하게 연기를 잘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특히 이번처럼 신부가 눈치없는 경우라면 알바생들의 역할은 더더욱 중요해진다. 주인공이 ‘생판 첨보는 사람이 나한테 왜 이러나’하는 눈빛을 쏘더라도 당황해선 안 된다. 아무렇지 않게 ‘다 당신 잘되라고 하는 일이니 잘 모르겠어도 아는 척 하고 넘어가세요’라는 신호를 보내야한다.     


이날은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뚫고 식 시작 50분 전에 집에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호텔 예식장 로비에 도착했다. 약속시간보다 20분을 더 일찍 와버린 바람에 공식적인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졌다. 가만히 서서 사람구경을 할 기회! 대학생 때처럼 교시마다 수업 시간이 정해져있는 것도 아닌데, 잠시 멈춰 전단지를 받거나 길가 화단의 꽃 구경조차 할 여유가 없는 현대사회에 쉽게 누릴 수 없는 호사다.      


대리석으로 된 1층 중앙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통유리창이 인상적인 홀이 나타난다. 천장에는 금빛 샹들리에가 반짝거리고 신랑 측, 신부 측 테이블엔 축의금을 내고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로 빼곡했다. 신부 측 테이블로 가서 “축의금은 신부한테 개별적으로 냈어요”라고 말하고 식권을 받았다.      


그러는 새 약속시간이 다가왔다. 다시 1층으로 내려가 팀장을 찾았다. 검정 티셔츠 위에 체크무늬가 더해진 회식 정장룩. 그에게 내가 오늘의 알바생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씨, 오랜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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