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 같은 10년 지기 친구, 은수
다신 돌아올 수 없는 눈부신 20살, 그리고 21살을 나는 회색 벽 안에서 의미 없이 흘려보냈다.
새벽 6시 즈음 일어나 졸린 눈으로 집을 나서고, 자정 무렵이 되어 맥없이 현관문에 들어서는 하루의 반복이었다. ‘대학’이란 목표를 위해 남들 다 하는 연애도 미루고 운전면허증을 따는 건 꿈도 못 꾸는 사람, 바로 재수생이었다.
수능을 망치고 집 거실에 이불을 펴놓고 누워 일주일을 앓았다. 입에 넣는 것마다 소화를 못 시키고 토해냈다. 목소리는 갈라졌고 눈물은 흘려도 흘려도 멈추질 않았다. 수능 할인 혜택 따위 하나도 못 누렸다. 퉁퉁 부은 눈으로 고등학교 졸업식에 갔고, 담임 선생님과 눈도 제대로 못 맞춘 채 이별을 했다. 이보다 더한 최악의 날은 없으리라. 치욕스러움에 또 엉엉 울었다.
그땐 몰랐다. 그보다 더 괴로운 날들이 이어질 줄은.
내가 다니던 학원의 창문은 늘 굳게 닫혀있었다. 환풍이 잘 안 돼 여름이면 땀 냄새가 진동했다. 겨울에는 히터를 틀어 공기가 탁했다. 콩나물시루처럼 강의실에 빽빽이 들어찬 학생들 사이에서 이게 꿈이길 하고 매일 바랐다. 동그라미와 빗금 때문에 울고 울었다. 가장 빛나야 할 시기에 가장 어둡게 살았다. 살아있었지만 지옥이 따로 없었다.
공부에 질린 어느 날, 주말 아침 자습실에서 ‘수능특강’을 풀면서 소원을 빌었다. 햇빛을 보고 싶다고. 낮에도 햇빛을 받을 수 없는 이 건물에서 어서 탈출해 마음껏 자유를 누리고 싶다고. 봄이면 하늘에서 떨어지는 벚꽃 잎을 잡고 싶고 가을에는 단풍 여행을 가고 싶다고.
실제로 수험생 생활이 끝나고 하루의 낮을 되찾게 되었을 때, 나는 그저 햇볕의 따스함을 온몸으로 누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서 폴짝폴짝 뛰었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학원에 얽매였나 싶은 생각도 든다. 어차피 꼭 가고 싶은 대학도 없었는데 말이다. 아마 심적으로 의지가 되는 친구들이 있었다면 수험생활이 달라지지 않았을까도 싶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외톨이였다. 특별히 친구를 멀리했던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혼자가 됐다. 밥 먹을 때에도, 시험 성적을 매길 때도, 등원할 때도 내 곁엔 아무도 없었다. 워낙 나에게 온 신경이 집중된 시기였던지라, 주위를 돌아볼 겨를이 없어서라고 생각한다. 그때 힘든 걸 혼자 버티는 법을 익혔다.
그 시기에 나타나 준 게 바로 ‘은수’다. 나와 동갑인 은수는 나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옆 반 소속이었는데, 쉬는 시간마다 우리 반으로 와서 나랑 말동무를 해줬다. 그렇다고 우리가 수다를 많이 떨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저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서로 든든한 의지가 될 수 있단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은수는 국어를 잘했다. 다른 과목도 나보다 성적이 좋았다. 그런데도 내가 뭘 물어보면 아주 겸손하게 본인의 생각을 말했다. 감정의 기복도 크게 없었다. 그런 은수가 내 눈엔 ‘어른’으로 보였다.
은수가 어느 날 내게 어머니가 안 계신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아버지는 새엄마랑 결혼해서 얼마 전부터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의지할 누군가가 필요해 성당을 다니기 시작했단다. 내 주위에 어머니를 여윈 친구는 은수가 처음이었다. 아주 담백하게 말해서 슬픈 일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
그날 이후 은수에게 더욱 정이 갔다. 엄마라는 말이 익숙치 않을 그녀를 위해 말을 할 때 은수에게는 ‘부모님’이나 ‘엄마 아빠’라는 말 대신 ‘아버지’나 ‘어른’이란 표현을 쓰려고 노력했다.
그녀의 집안 형편도, 성적도, 외모도 그녀와 대화를 하는 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은수는 그냥 은수였다. 아마 은수도 나를 그냥 나로 봐준 것 같다. 내 신상에 대해 캐묻지 않았으니까.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선을 지키면서 우정을 쌓았다.
그다음 해, 은수는 서울 상위권 대학의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다. 각자의 대학 생활에 적응하면서 연락이 끊겼다. 몇 년이 지나, 나는 웃음 많은 대학생으로 성장했다. 힘들었던 수험생 생활은 머릿속에서 희미해졌고, 여러 모임에 참석하면서 친구들도 늘었다. 그녀 덕에 힘든 시간을 견뎠는데 고마움을 한 번도 표현을 못 했다.
언젠가 지인들과의 관계가 형식적이라고 느껴질 때가 있었는데 그때 문득 은수가 생각났다. 어떠한 사심도 편견도 없이 순수하게 나를 대해준 그 아이와 한바탕 수다를 떨고 나면 이 허전한 마음이 채워질까 싶었다.
은수도 나도 대학을 졸업할 즈음 우린 재회했다. 몇 년을 못 봤는데도 당장 어제 본 것처럼 익숙했다. 그 사이에 은수는 영국에 유학을 다녀왔고. 악기도 배우고, 화장도 시작했다. 그녀의 입담이 아줌마다워졌다는 약간의 변화는 있었지만, 그 마저도 기뻤다.
은수가 우리 집에 놀러 온 날을 기억한다. 엄마와 도란도란 잘 어울렸는데, 나중에야 그때 은수의 표정에 나에 대한 ‘부러움’이 담겨있음을 알았다. 은수에게는 엄마라는 존재가 오랜만이었을 것이다. 최근에야 안 사실이지만, 새엄마가 은수와 아버지 사이를 질투해 은수를 괴롭혔고, 그 일로 은수의 아버지는 새엄마와 이혼을 하셨다고 한다. 나라면 감당할 수 없었을 일을 견뎌낸 은수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로 은수와 처음 알게 된 지 10년이 지났다. 우리는 가끔 만나 공원을 걷고, 서로의 집에 놀러 가고, 전화로 하루에 있었던 소소한 일을 공유한다. 후드티 단벌숙녀에 꼭 필요한 말만 했던 과거의 은수는 먼저 말을 걸고 대화를 이끌어나가고 자신을 가꾸는 데 돈을 아낌없이 투자하는 아이가 됐다. 나도 은수 덕에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누군가를 위해 베풀 줄 알고, 스스로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은수는 왠지 아줌마가 되어서도 계속 만날 것 같은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