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치게 해줘서 고마워요

뜨거울 때 꽃이 핀다

by 아임유어엠버


뜨거울 때 꽃이 핀다.


설치미술가 이효열씨의 작품 이름이다. 대학생 때 안국쪽 길거리를 걷다가 꽃이 꽂혀있는 연탄을 우연히 발견했는데, 나중에야 그게 ‘뜨거울 때 꽃이 핀다’임을 알았다.


이 작가 블로그에 올라온 글에 의하면 비를 맞고 난 후, 꽃을 받치고 있는 연탄은 더 단단해지고 꽃은 더 예쁘게 피어났다고 한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열정’이 시들해질 때마다 연탄에서 핀 꽃을 떠올리며 나를 채찍질한다.


이 말이 특별히 가슴에 와닿은 이유는 실제 경험을 통해 시련에도 포기하지 않는 것의 가치와 힘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2015년 중국 북경, 아침에 어학당으로 등교 중인 나를 향해 자전거 한 대가 돌진했다. 10m, 5m... 자전거는 좌우로 비틀거리며 내게 점점 가까워졌다. 운전자는 안경을 쓴 남학생이었다. 어어? 이러다 부딪히는 거 아냐? 나는 ‘가만히 있을 테니 알아서 피해가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그에게 닿지 않았다. 세상이 한바퀴 핑- 돌더니 눈앞이 깜깜해졌다. 내 복부는 자전거 바퀴에 정통으로 맞았고, 몸이 공중에 떠올랐다가 엉덩이로 떨어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자전거에 치여 길가에 쓰러져 있었다. 누워있는 나를 둥글게 둘러싸고 중국인들이 제각각 수군거렸다. 그러나 경찰에 신고를 해주거나 손을 잡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것 같았다.


정신이 희미한 와중에 눈 앞에 가해자가 보였다. 그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듯 군중 속에서 매우 불안해하면서 나를 쳐다봤다. “게이 워 니더 띠엔화 하오 마(전화번호 알려주세요)” 중국어로 여러 번 크게 외쳤다. 단호한 어조에 그는 움찔하면서 다가왔다. 더듬더듬 떨리는 목소리로 번호를 알려줬고 나는 휴대폰에 번호를 받아적었다.


당장 아랫배가 쓰라리다는 게 시급한 문제였다. 두 손으로 아스팔트 바닥을 짚고 일어서려는데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스스로의 의지로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건 살면서 단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시나리오였다. 내 인생 이제 시작인데, 앞으로 못 걸으면 어떡하지? 두려움이 엄습했다.


자궁이 있는 쪽 살에 주먹만한 멍이 들었다. 예상대로 하반신에 문제가 있었다. 절뚝이지 않고는 걸을 수가 없었다. 한쪽 다리를 들면 엉덩이쪽이 욱신거렸다. 힘이 가해지지 않아서 누워서 바지를 입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아기가 걸음마를 떼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 특히 계단은 히말라야산맥 높게 느껴졌다. 한 달간 룸메이트의 부축을 받아 어학당 등교를 했다.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촬영한 결과, 한쪽 고관절이 손상돼 있다고 했다. 중국 의료업계 특성상 대기 환자가 많아 병원 진료를 받는 데만 2주가 걸렸다. 의사는 치료를 받으려면 또 2주가량을 기다려야한다고 했다. 거기다가 나는 보험가입이 안 돼있는 외국인인지라, 과감히 치료를 포기하기로 했다.


바쁜 일이 있다며, 다음에 병원을 같이 가자고 했던 가해자는 사고 당일 저녁부터 연락두절이었다. 뺑소니였다. 막막했지만 그대로 손 놓고 있을 순 없었다. 나를 지킬 사람은 오직 나 혼자였다. 그때부터 불편한 몸을 이끌고 가해자를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아는 정보는 그의 휴대폰 정보와 어렴풋이 기억나는 그의 외모, 체격 뿐이었다. 이름과 나이 등 기본 신상정보를 모른다는 게 문제였다. 그는 중국어를 썼지만 중국인이 아닌, 유학생일 수도 있었다.


먼저 어학당 근처 경찰서를 찾아갔다. 경찰들은 한국인인 나를 홀대했다. 일부러 속사포로 사투리 중국어를 내뱉기도 했고 여러 명이 킥킥거리며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중 하기도 했다. 배불뚝이 경찰은 친절하게 조언해준답시고 이렇게 말했다. “포기해.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이 할 수 있는 건 없어. 휴대폰을 잃어버려도 다시 못 찾는데 가해자를 어떻게 찾니?” 나는 속으로 답했다. “아니, 나는 해내고 말거야”


경찰들이 지적한 가장 큰 난관은 사고 직후 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고를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거였다. 그래서 직접 사고 보고서를 만들기로 했다. 매일 수업이 끝나면 유학생 사무실에 찾아가 중국인 직원을 만났다. 직원이 바쁘다고 하면 어학당 선생님을 귀찮게 했다. 그를 데리고 경찰서에 가서 대신 내 상황을 설명하게 했다.


나는 정확한 현장분석을 위해 사고 장소를 다시 찾아가 특이사항이 없는지 꼼꼼히 살폈다. 근처에 CCTV가 설치돼 있었다는 걸 발견하고 그걸 관리하는 보안부 직원을 찾아갔다. 경찰서에서 배운 요령으로 보안부 직원을 쉽게 설득할 수 있었다. 나중에야 직원이 말하길, 내가 땀에 흠뻑 젖어 절뚝이며 들어와서는 과일을 선물로 내밀며 절박함이 느껴지는 말투로 도움을 요청하는데, 안 도와줄 수 없었다고 한다. CCTV 영상에서 정확한 시간과 사고 정황, 가해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이 자료들을 바탕으로 사고 발생 2주 만에 몽타주가 그려진 인쇄물이 출력됐고, SNS 추적을 통해 가해자의 거주 지역을 찾았다. 중국 친구들을 동원해 사고 지역 주변에 가해자를 찾는다는 공지를 붙였다. 사고보고서가 완성될 즈음, 경찰들과도 정이 들었다. 그들은 가해자를 꼭 찾길 바란다며 응원해줬다.


자전거에 치인 지 한 달이 다돼 드디어 경찰서의 사건사고 해결 담당자를 만났다. 담당자는 내가 제출한 보고서를 보고 피식 웃었다. 그러더니 한동안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눈빛에서 장난이 아니라는 걸 느꼈는지 그는 보고서 속 정보를 가지고 신원 검색을 했다. 그리고 바로 가해자에게 출두명령 문자를 보냈다.


그로부터 며칠 후 경찰서에서 가해자와 삼자대면을 했다. 서류에 경찰서 보호 인증 도장을 받았다. 가해자에게서 진심어린 사과와 함께 병원비 보상을 약속한다는 증서를 받았다.


경찰은 나처럼 외국인이 사고 가해자를 찾는 경우는 처음 봤다고 혀를 내둘렀다. 나를 옆에서 지켜봐준 어학당 친구들도 내 열정에 엄지를 치켜올렸다. ‘강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그때 처음 들어봤다. 스스로를 나약하다고 여겨왔는데, 내가 시련 앞에 굴하지 않는 면모가 있다는 걸 알았다.


내편이 아닌 이들을 내편으로 설득하면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는 진정성만큼 강력한 게 없다는 걸 배웠다. 한 달 동안 미약한 나의 의지와 싸우면서 인내하고 극복하고 버티는 방법을 터득했다. 자존감이 올라간 건 덤이었다. 인생에 찾아온 위기가 가장 뜨겁고 빛나는 순간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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