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참 고마웠습니다

나를 살린 사람들 [프롤로그]

by 아임유어엠버

가수 김연자는 MBC 예능프로그램 <복면가왕>에서 6연승을 하고 얼굴이 공개됐을 때 이런 소감을 남겼다.


이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게 감사해서 연습하고 또 연습했어요.


현재 자기 위치의 소중함을 느끼는 사람은 허투루 행동하지 않는다. 매사에 진정성을 갖고 임하고 최선을 다한다. 나는 한번이라도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한 적이 있었는가. 감사함을 잊어버리고 못 가진 것에 대한 욕심과 소망만 쏟아내고 있지 않았는가.


직업이 없을 땐 일할 수 있기를 원했다. 부모님의 돈이 아닌, 내가 번 돈으로 밥 한 끼를 사먹고 또 누군가에게 커피한 잔이라도 대접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런 일을 한다고, 어디에 소속돼 있다고 떳떳히 말할 수 있길 바랐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 껴 있고 싶었다.


직업이 생겼을 때는 정규직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명절에 선물을 안 준다든가 하는 당연한 차별대우에 서글픔을 느낀 적이 많았다. 4대 보험 적용이 되는 반듯한 직장에 다니며 매월 일정 금액을 받고 여름 휴가도 쓸 수 있기를 원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행복할 거라 생각했다.


정규직으로 일하게 된 지금, 나는 받는 월급에 비해 일의 양이 너무 많다며 투덜댄다. 어떨 때는 추가 근무나 성과에 대한 포상이 없고 휴가도 넉넉히 쓸 수 있는 형편이 아닌 지금 회사에 화가 나기도 한다.


이제는 내가 번 돈으로 좋아하는 음료 한 잔 사 마실 수 있고, 월급으로 부모님께 용돈도 드릴 수 있고, 4대 보험 혜택도 적용받으며 개인 명함도 생겼지만 왠지 모르게 아직도 마음이 편치 않다.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났으면 싶을 정도로 갑갑하고 내가 가진 조건들이 별 볼일 없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 내가 지금 내 자리의 소중함을 잊었기 때문이다. 나는 두 다리로 뛰어다닐 수 있고, 원하면 산책을 하러 아무 때나 공원에 나갈 수 있고 TV도 볼 수 있다. 내가 번 돈으로 부모님과 식사도 할 수 있고 주말이면 편안한 침대에서 두 다리 쭉 뻗고 늦잠도 잘 수 있다. 이 얼마나 자유롭고 건강한 삶인가!



그때 내가 미치지 않고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그래, 언젠가는 이걸 소설로 쓰리라, 이거야말로 나만의 경험이 아닌가라는 생각이었다. 그건 집념하고는 달랐다. 꿈하고도 달랐다. 그 시기를 발광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정신의 숨구멍이었고, 혼자만 본 자의 의무감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세상이 살 만해지고 나 또한 보통사람으로서의 무사안일을 누리는 동안 그건 짜릿한 예감이 되어 나의 안일에 잠복해있다가 발병처럼 갑자기 망각을 들쑤성거리곤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세상에 글장이로 선을 보이게 되었을 때의 감상도 꿈을 이루었다든가, 노력한 결실을 거두었다든가 하는 보람보다는 마침내 쓰는 일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는 안도와 체념에 가까운 거였다.




박완서의 ‘목마른 계절’ 작가의 말에 적힌 글귀다.


그녀가 칠흑같은 시대를 살면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글에 대한 간절함 또는 겪은 모든 것을 글로 옮기겠다는 신념이었다. 내게도 힘든 시절 버팀목이 되어준 것은 언젠가 이것들이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 자양분이 돼줄 것이라는 ‘희망’이 아니었나 싶다. 또 한 가지는 바로 ‘사람’이었다.


신기하게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숨이 턱 차오를 때 누군가가 내 곁에 있어 줬다. 그들이 이야기를 들어주고 응원을 건넨 덕에 나는 숨을 쉬었고,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내가 언젠가 글을 써서 책을 내게 된다면 나를 살려준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한 번쯤은 하고 싶었다.


나의 글이 그들에게 보답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까지 내 가슴속에 자리한 고마움을 꺼내어보고 간절했던 어느 날의 초심을 되짚을 기회라고 생각한다.


‘나를 살린 사람들’은 그때 참 고마웠습니다, 하고 말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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