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스스로 포기한 이유-3

힘들면 포기해도 돼. 너를 위한 길이니까!

by 아임유어엠버

3.


영혼없이 출근을 하는 날이 계속됐다. 오늘은 또 어떻게 깨질까, 어떤 기분 나쁜 말을 들을까... 지하철 안에서 마음 졸였고 사무실 현관문을 열기 직전까지도 긴장됐다.


매일 죽으러 가는 것 같았다.


여기에서 멈춰야지, 하는 생각은 들었는데 용기를 못냈다. 내가 먼저 그만두겠다고 말한다는 건 한번도 생각해본 적도 실천에 옮긴 적도 없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시간이 지나면 내 진짜 모습을 봐주겠지, 하고 버티고 기다렸다.


그런데 내 생각과 상사의 생각은 많이 달랐던 것 같다.


사건은 아주 계획적으로 터졌다. 헌팅(단체 출장)이 잡혀있었던 어느 주말, 상사는 카톡으로 나는 헌팅을 가지 말고 사무실로 출근하라고 했다. 싸한 느낌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어느 노랫말이 현실로 됐다.


“너랑 더 같이 일 못하겠어. 짐 싸”

상사가 점심 이후에 출근해서는 나를 방으로 불러 뱉은 말이었다. 말로만 듣던 ‘토사구팽’을 당하다니, 충격이었다. 내 가치를 믿어준 사람이 나를 내치는 비극이 내게 일어난 것이다! 팀에 헌신했던 데다가, 살면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잘려보는 거라 그 상처는 더 컸다.


“마지막으로 할 말 없어?”


생색을 내듯 말하는 말투에 정떨어졌다. 나는 말 없이 고개를 저었다.


사무실 식구들 아무도 없을 때로 시기를 정해 아주 계획적으로 나를 해고했다는 생각에 배신감이 밀려왔다. 속으로는 후회할 거라고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날 거라고 고래고래 외쳤으나 ‘소리없는 아우성’으로 끝났다.


상사는 나를 혼자 두고 방을 나갔다. 주위가 고요해짐과 동시에 마음도 텅 비었다. ‘아, 이게 잘린 거구나’ 그제야 실감이 났다. 왈칵 눈물이 나려는 걸 꾹 참았다. 끝까지 의연하고 당당한 뒷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조용한 사무실에서 나 혼자 이별을 준비했다. 이 팀과의 이별이었지만, 사실상 이 세계는 좁기 때문에 드라마업계에서의 퇴출이라고 마음먹었다. 책상 위에 붙여둔 업무 관련 메모들, 서랍에 들어있는 각종 서류, 뒷면에 결제일과 사용내역을 기록해둔 영수증, 너덜너덜해진 대본, 그리고 출근해서 퇴근하기까지 한순간도 쉬지 못했던 노트북. 하나하나 눈길을 주며 사진을 찍듯 머릿속에 인상을 남겼다. 고생많았다! 그 누구도 내게 해준 적 없는 말을 스스로 해주면서 씁쓸해졌다.


상사는 내가 사무실 현관문을 나가는 순간까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꾹 닫힌 문처럼 나를 향한 그의 마음도 굳세게 닫힌 듯했다. 사무실이 있는 오피스텔 복도를 양손에 하나씩 봉투를 쥐고, 어깨엔 가방을 메고 낑낑대며 걸었다. 몸을 숙여 어깨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그러다가 봉투 하나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봉투와 함께 참아왔던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TV에서 보면 상자 하나 달랑 들고 예쁘게 퇴사하던데 나는 퇴사하는 순간마저 왜 이렇게 어설픈 걸까. 길거리를 걸으며 엉엉 소리 내 울어버렸다. 날 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런건 상관없었다.


내가 그 팀에서 일하며 힘들었던 이유는 한 마디로 압축하면 딱 하나였다. 도구가 됐다고 느껴서. 노고를 인정받지 못하고 일원으로서 존중받지 못하고, 소통이 안 된다는 것은 참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걸 그 사건을 계기로 처음 느꼈다. 자존감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나답게’ 살기 위해서라도 어쩌면 퇴사는 필요했던 걸지도 모른다.


내가 팀을 나간 것에 대해 상사가 팀 식구들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전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팀 식구들은 내게 하루가 멀다하고 계속 전화와 카톡을 해댔다. ‘왜 일을 그만뒀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 게 아니라 내가 아는 업무 내용에 관해 묻기 위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행정 업무를 담당하던 팀장님은 내가 정리해둔 영수증을 직접 사무실에 와서 달라고 요청을 했다. 인수인계 할 시간도 주지 않고 단칼에 해고한 쪽은 회사인데, 왜 내가 회사를 위해 그들이 요구하는 것을 해줘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연락이 올 때마다 나는 ‘사람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그들이 그동안 내게 준 상처가 아려왔다. 원래 내 성격대로라면 일일이 전화를 돌려 일을 그만두게 됐다고 설명했을 테지만, 이번엔 그런 것들을 하지 않았다. 전화가 오면 받지 않았고, 카톡도 읽지 않았다. 최근 기록에 적힌 부재중 전화 목록을 보는 것조차도 스트레스가 돼 나중에는 전화를 꺼뒀다. 그런데도 연락은 한 달 넘게 이어졌다.


이 일이 있은 후 드라마 시청을 일부러 피했다. 드라마를 볼 때마다 안 좋은 기억들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드라마에 향했던 설렘과 흥분이란 감정이 두려움으로 바뀌면서 일에 대한 의욕은 물론, 사람에 대한 애정도 사라졌다.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어쩌나 싶어 새로운 작품도 알아보지 않았다.


마침 그 시기에 발에 금이 가는 바람에 깁스를 하고 지냈다. 감사하게도 함께 하자는 권유를 해준 팀이 여럿 있었다. 그중 기회만 있다면 일하고 싶었던 팀이 있었는데도 용기가 나지 않아 발 핑계를 대며 정중히 거절했다. 거절을 한 날, 너무 속상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30분을 울었다.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20여 년간 키워온 꿈이 사라진 순간이었다.


휴식 기간이 한 달을 넘어가자, 소득이 없는 건 둘째 치고 사람을 만나기가 무서워졌다.


지인들 누구에게도 내 상황을 알릴 수 없어 연락을 안 하니 점점 혼자가 돼 갔다. 회사에서 잘리면 어떻게 해야하는 지 그동안 생각해본 일이 없어 생긴 일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이미지 트레이닝이라도 해 둘 걸.


꿈도 잃고 사람도 잃고 나 자신도 잃어가는 기분에 매일 동태 눈깔로 하루를 보냈다. 스물 아홉에 닥친 인생 최대의 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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