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스스로 포기한 이유 -1

나를 '사람'이 아닌 '돈'으로 본 거지

by 아임유어엠버

1.


그토록 되고 싶었던 드라마 PD가 되었지만 단 두 작품 만에 스스로 꿈을 포기했다.


주위에서 아무리 그만두라고 했어도 소신으로 버텨냈던 나였다. 양치나 세수를 제대로 못 하고 다크서클 가득 찬 검은 낯빛으로 스태프들의 걱정을 사는 게 일상이었지만 그것마저도 추억으로 느끼던 나였다.


이런 내가 마음을 바꾸도록 한 것은 다름 아닌 두 번째 작품에서 만난 ‘사람’ 때문이었다.


사람들에게서 에너지를 얻어 힘든 순간들을 버텨온 나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 때문에 생기를 잃어갔다. 무엇 때문에 버텨야 하는지 이유를 잃어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은 느낌이었다. 나를 살리기 위해, 그동안 어떠한 일이 있어도 꽉 부여잡고 놓지 않던 줄을 놓는 수밖에 없었다.


이 결심을 하기까지 4개월 정도가 걸렸다. 4개월 동안 나는 칭찬 한번, 수고했다는 격려 한마디 들어보지 못한 채 매일 두려움에 몸서리치며 일했다.


러브콜을 받고 합류한 새로운 팀은 감독/작가님 외에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 초기 단계의 팀이었다. 사무실도 마련돼 있지 않았고 심지어 나를 뽑은 상사는 업무 차 해외에 나가 있었다.


나는 제일 먼저 출근을 한 구성원이 되었다. 일면식도 없는 제작사 고위 직원과 접선해 사무실 계약을 했다. 이후 집기 대여, 세트장 탐방, 소품 준비, 배우 오디션 등 촬영을 위한 준비단계에 참여하고 팀원들을 차례로 맞이했다.


그 팀은 팀원들이 자주 바뀌었다(감독님과 안 맞아서). 그래서 미팅도 잦았다. 하루에도 평균 두, 세 번씩 사무실에 손님들이 찾아왔다. 그들의 업무계획을 듣다 보면 금세 저녁이 됐다. 미팅을 하고 있을 때도 내 눈과 손과 몸은 바삐 움직였다. 영수증 정리, 기타 서류작성, 자료 조사를 했다. 가끔은 택배를 부칠 때도 있었고 전화를 받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미팅에서 진행되는 모든 내용에 귀를 기울이고 참여해야 했다.


출근은 오전 10시쯤 했다. 이렇게만 들으면 아주 좋은 근무환경이다 싶겠지만 실상은 달랐다. 사무실에 가장 먼저 도착하면 마대를 들고 바닥 청소부터 한다. 커피머신 청소나 쓰레기통 정리, 설거지도 내 몫이었다. 오전 회의가 있는 경우에는 회의에 필요한 자료들을 미리 준비해놔야 했다. 별일이 없으면 정식 출근 시간은 1시였는데, 혹여 점심을 거르고 출근하는 인원은 없는지 일일이 전화를 해서 끼니를 챙겼다.


퇴근은 최소 밤 11시 이후에 이뤄졌다. 촬영 시작 일자가 다가올수록 외부 미팅이 밤 10~11시쯤 끝나는 경우가 잦아졌다. 손님들이 사무실을 나가면 그때부터 사무실 안의 열기가 더 뜨거워졌다. 부서별로 간단한 논의를 하기도 하고, 감독님의 업무 지시를 따로 받기도 했다. 자정이 다가오는 시간에도 누구 하나 집에 가겠다고 입을 열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집까지 지하철을 이용하면 2시간 거리라, 11시에는 사무실에서 나와야 안전하게 집에 갈 수 있었다.


그러나 나보다 어린 친구들도 찍소리 못하고 가만히 있는 데다가 상사들 모두 일에 열중하고 있었기에 차마 집에 가야 한다고 말을 못 했다. 그렇다 보니 대중교통이 모두 끊겨 택시를 탈 수밖에 없는 나날이 계속됐다. 물론 교통비는 사비로 충당해야 했다.


“너 집에 갈 때 어떻게 가니?” “차가 끊기기 전에 집에 가라” “교통비는 있니”라고 물어봐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언젠가 교통비를 지원해달라고 목소리를 냈다가 이쪽 세계에 문외한인 아이로 취급받으며 지청구를 들었다. 기억나기론, 상사는 내게 “일주일에 5일 근무를 원하면 이쪽 일을 해서는 안된다”면서 “그렇게 일일이 휴일을 다 챙겨가면서 일하려고 하냐”고 했다.


카카오택시로 겨우 택시를 잡아 타고나면 그제야 내 마음에 평화가 왔다. 온종일 편히 숨 쉬지 못했던 긴장된 몸을 택시 의자에 편히 기댔다. 택시로 집까지 가는 1시간가량 동안 잠깐 졸기도 하고, 친구와 카톡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숨죽여 울기도 했다. 집에 가면 옷만 갈아입고 쓰러져 잠을 잤다. 그렇게 6시간 정도 자고 나면 출근 시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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