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스스로 포기한 이유-2

여긴 어디? 나는 누구?

by 아임유어엠버

2.


겉으로는 아무문제 없는 팀이었지만, 그 속에서 남몰래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나만 그랬는지, 다른 사람은 참을 만했던 일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먼저 꼽고 싶은 것은 군대식 문화다. 감독님 중심으로 철저한 가부장식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날 점심으로 뭘 먹을지를 포함해 모든 의사결정이 감독님의 입에서 떨어졌다. 회의 시간에도 감독님의 힘이 강력해서, 모든 부서의 직원들은 그의 결정을 받아 적고 그의 입맛에 맞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감독의 의견이 중시되는 건 어느 팀이나 마찬가지일 테지만 그 팀은 특히 수직적 관계라는 느낌이 강했다. 어떤 부서는 일을 잘 못 한다는 이유로 첫 만남 이후 바로 잘리기도 했고,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앞에서 혼이 나기도 했다. 감독님은 그날 당신이 먹은 메뉴가 얼마인지, 당신에게 대접한 빵이 오늘 갓 만든 빵인지까지도 꼼꼼히 묻고 질이 좋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은 거부하셨다.


또 욕실 수건부터 방향제, 이불까지 사무실에 비치해놓길 원하셨다. ‘그럴 거면 살림을 차리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꾹 참았다. 무엇보다, 그분은 보는 눈이 너무 정확하고 예리했다. 스태프들은 책을 잡히지 않기 위해 철저히 준비하는 수밖에 없었다.


캐스팅디렉터가 엄연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상팀’을 따로 만들어 캐스팅 후보를 분석한 자료를 따로 보고받으셨다. 영상팀은 대본에 등장하는 작은 상황 설정조차도 연구하고 세부 의견을 브리핑했다. 나도 영상팀에 소속돼 영상 편집을 하는 등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내가 PD인지, 영상팀 보조인지 헛갈리는 순간이 많았다.


평범하지 않은 근무 환경도 적응하기 힘든 요소였다. 사무실은 40평이 조금 넘는, 부엌과 방 2개가 있는 공간이었다. 방 하나는 감독님 독채였고 남은 방 하나를 4명이 책상을 두고 사용했는데 나도 그곳에 자리가 있었다. 거실에서 주로 회의가 이뤄졌는데 방 안에 있으면서도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에 귀를 귀울여야 했다. 거실에 나갔다가 방에 들어왔다가를 수시로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다.


일주일에 공식적인 휴일은 이틀이었으나 사실상 휴일은 하루였다. 휴일에도 사무실에 나와서 근무를 하라는 지시는 감독님 모르게 그 아랫사람들에 의해 다소 강압적으로 이뤄졌다. 그 지시를 내린 사람들은 예외였다(골프 약속을 하러 갔다).


자정이 넘어 택시를 타는 경우, 교통비는 편도로 약 2만 원이 나왔다. 한 달 출근 일수를 대략 25일이라고 잡았을 때 50만 원이 교통비로 쓰이게 되는 셈인데, 계약서에 교통비와 통신비는 각자 부담이라는 조항이 있었다.


일부 멤버들이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도 나를 힘들게 했다. 전자담배라도 피우면 좀 나텐데, 연초를 피워댔다. 감독님이 피워대니 그 아랫사람들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따라 했다. 그것도 문을 열지도 않고, 눈치도 전혀 보지 않은 채 좁은 공간에서 말이다. 담배 냄새를 너무 싫어하는 데다 잘 못 견디는 편이라 자욱한 연기 속에 기침으로 신호를 보냈지만 누구 하나 그런 나를 보면서 뜨끔한 이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곳에선 내가 가정부가 된 듯한 기분이 들어 절망스러웠다. 궂은일을 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는 듯 행동했다. 경력상 내가 막내도 아니었는데, 모두 자신들은 고고한 일만 하는 사람들인 양 자연스럽게 사무실 돌아가는 일에 방관했다. 쓰레기 정리하는 건 퇴근하면서 막내들과 함께했지만 음식물쓰레기는 아무도 터치하지 않았다.


한 번은 냄새가 날까봐 음식물쓰레기를 냉동실에 얼려뒀더니, 우리 부서 상사는 왜 바로바로 쓰레기를 버리지 않냐며 내게 면박을 줬다. 모두가 만든 쓰레기인데 왜 다들 내 얼굴만 바라보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또 어느 날엔 바퀴벌레가 나와서 화들짝 놀라 소리를 질렀는데, 혐오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누구 하나 해결에는 나서지 않았다. 결국 내가 세스코를 불렀다. 실내용 슬리퍼를 한번 빨아야 하지 않냐는 의견이 나왔는데 그뿐이었다. 이번에도 내가 슬리퍼를 들고 세탁방까지 가서 빨아왔다. 슬리퍼를 빠는 동안 신을 다른 슬리퍼를 왜 준비해두지 않았냐며 투덜대는 이는 있었다.


서서히 내가 이 팀에 무슨 일을 하기 위해 불려온 사람인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만약 이 고민을 속 시원히 털어놓을 동료가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없었다. 우리 부서 제일 직급 높은 분(나를 뽑아준 분)은 매일 밖에 나가 있기 일쑤였고 부서간 갈등을 피하기 위해 내 어려움을 외면했다. 사무실에서 우리 부서 인원은 나뿐이었다.


내가 하루에 일어나는 모든 업무를 듣고 해결해야 했으므로 곁에서 지켜보고 쉴드를 쳐줄 이는 없었다. 설령 상사가 종일 사무실에 있는다고 해도, 나를 보호해줄 인물은 아니었다. 부서에는 그분 말고도 내 뒤로 합류한 PD가 둘 있었다. 그러나 둘 다 나보다 경력이 많아서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심지어 두 사람은 나를 또 다른 의미로 힘들게 했다.


10년 차 정도 되는 선배는 중상모략과 처세술로 나를 위기에 빠뜨렸다. 나보다 1년 경력이 많은 선배는 나보다 나이가 2~3살 어렸는데, 나를 챙겨주지 않았다.


궂은 업무는 내게로 미루면서 그 누구도 나를 식구로 생각하지 않는 듯한 분위기 속에서 내 표정은 점점 굳어갔다. 잘하는 게 없는 것 같다고 생각됐다. 매일 출근하는 게 두렵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게 긴장됐다. 결국, 위염이 생겼다. 식구들과 함께하던 식사를 못 하고 홀로 사무실에 남아 식사 시간을 보냈다. 그때마다 나는 바람도 안 쐬고, 일도 못 하고 멍을 때리며 앉아있었다. 이후 근무시간에는 내가 파이팅 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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