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날 폭풍 눈물을 흘렸다

참아도 참아도 참아지지 않는 순간

by 아임유어엠버

아끼는 동생 생일 축하를 해주다가 문득 작년 내 생일이 생각 났다. 내 생일은 크리스마스 다음날이다. 나는 2019년에도 2018년에도 크리스마스와 생일에 새벽 1시 넘어까지 일을 했다. 특히 2018년도가 최악이었다. 새벽 늦게까지 일도 하고 펑펑 울기도 했으니까.


기자로 일할 때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드라마PD로 일했을 때는 공식적인 휴일이 없었다. 상사가 별 말을 안하면 일을 하는 거고, 오늘 쉬라고 하면 쉬는 거다.


사무실에 출근을 해야하는 이유는 촬영을 준비하기 위해서인데, 그렇다보니 촬영이 없는 날에도 출근을 해야하는 건 당연했다. 당일 새벽에 일이 끝나도 잠깐 자고 오후에 사무실에 나갔다. 명절에도 하루 빼고 일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생일이라고 특혜가 있거나 그런 건 더더욱 없었다. 누가 내 생일이라고 축하인사나 해주면 다행이지.


그해 크리스마스에도 사무실에 출근해 일을 했다. 이리 저리 뛰어다니기도 하고 무거운 짐도 옮기고 통화도 많이 했다.


당시는 촬영 중반에 접어든 때였는데, 심리적으로 지쳐있었다. 제작부에서 촬영을 나가는 PD가 나 하나였다 보니 휴대폰은 밤낮없이 울려댔고, 카톡도 쉬지않고 확인해야했다. 콜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었다. 조감독이나 다른 부서 스탭들에게 쓴소리도 많이 들었다. 내 잘못이 아닌데도 혼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무엇보다, 힘든 걸 털어놓은 사람이 없었다. 엄마한테 전화도 잘 못했을 정도로 개인 통화할 여력과 시간도 없었다. 그래서 매일 밤에 자기 전과 아침에 출근 전 혼자 집에서 울고는 밖에 나가선 씩씩한 척 연기하곤 했다. 지금까지도 그때 스탭들은 내가 아주 밝고 찔러도 피 한방울 안나올 것 같은 단단한 아이인 줄로 기억한다.


크리스마스 저녁에 퇴근을 하고는 식사도 제끼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다음날까지 제출해야하는 촬영일지를 작성하기 위해서였다. 이미 체력을 소진한 터라 피곤함이 몰려왔다. 다음날 새벽에 지방 촬영이 잡혀있어서 빨리 자야하는데 그럴 수 없는 게 힘들었다. 나를 다독여서 겨우 침대를 등지고 앉았다.


그때가 밤 10시쯤이었다. 업무를 완성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계산해보니 밤을 새워도 못 끝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실 그것 외에도 다른 업무가 많이 밀려있어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두 다리 뻗고 몇 시간이라도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어느덧 시간은 12시가 다가왔다. 지금 자더라도 4시간 정도밖에 못자는 상황. 그냥 일은 내일 하고 몇 시간이라도 잘까? 유혹이 밀려왔다. 눈꺼풀은 점점 내려가고 굶주린 배는 꼬르륵 소리가 나다 못해 쓰려왔다. 힘든 내 마음도 몰라주고 내 업무 진행도를 확인하는 선배 PD의 카톡도 왔다.


갑자기 속에 울음이 꽉 찬 기분이 들었다. 결국 일이 터졌다.


대학 동기에게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좀 울고 싶은데 울어도 되냐고 허락을 구했다. 그리고 휴대폰을 잡고 엉엉 울었다.


매번 아무도 안 보는 방 안에서 소리 죽여 눈물만 꺽꺽 흘리거나 화장실에서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눈물을 물과 함께 흘려보내곤 했는데, 누군가에게 울음 소리를 들려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소리를 냈다. 우는 와중에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때만큼은 전화 상대와 이후 관계가 나빠지면 어떡하지와 같은 잡생각은 안했다.


고맙게도 동기는 내 상황도 잘 모르고 울음을 들어줬다. 말을 버벅거리면서도 30분이 넘게 하소연을 했다. 일을 하면서 그간 힘들었던 것들이 그날 다 쏟아져 나왔다. 그만큼 꾸역꾸역 억누르고 있었던 거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날 동기는 남자친구와 같이 있었다고 한다.


그 사이 시계는 12시를 넘어갔고 태어났을 때처럼 울면서 생일을 맞이했다. 전화를 끊고 나는 소리내어 울면서 손으로는 노트북 타자를 쳤다. 오기도 생겼고, 몸이 힘들어서 해야 할 일을 미룬다는 게 용납이 안됐다. 새벽 4시쯤 일을 다 끝내고, 샤워를 하고 촬영을 나갔다.


평생 잊지 못할 생일이었다. 올해 생일엔 일도 일찍 끝내고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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