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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민 May 17. 2022

엄마 아빠의  첫 만남.ssul

엄마는 아주 태연하다. 과년한 딸이 집에 얹혀살며 결혼도, 연애도 안 하고 있는데 영 걱정이 없다. “엄마는 나 걱정 안 돼?” 괜히 찔려 넌지시 물으니, “걱정은 무얼” 한다. 대답조차 이리 태연자약할 수가. 그러더니 이내 “엄마도 늦게 결혼했어, 엄만 노처녀였어” 하곤, 다 각자의 때가 있는 것이라고 한다. 무언의 끄덕임으로 긍정하고는 “그래서 엄마의 때는 언제였는데?” 하니, 허공을 보는 엄마의 눈동자 뒤로 플래시백이 보이는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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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살의 후남씨는 청량리 큰 언니 집에 함께 살고 있었다. 집이라기엔 미용실과 붙어있는, 온전히 미용실이라기엔 방이 딸려 있는 공간이었다. 언니는 미용사였다. 상경한 지 수년이 지나, 육군본부에서 나름 자리를 잡은 그즈음 여러 남자가 후남씨 곁을 스쳐 지나갔다. 언니가 중매를 서 데려온 경찰도 있었고, 회사원도 있었고, 일터에서는 저녁 한 번 같이 먹자며 추파를 던지는 이들도 꽤나 있었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이미 20대 초중반에 제짝을 만나 결혼을 한 후였고, 아이가 하나 혹은 둘씩 있는 친구들도 더러 있었다.


도무지 마음에 차는 사람이 없었지만 그녀는 걱정이 없었다. 인연은 어떻게든 찾아온다고 생각했으니까. 어느 날 미용실에 손님이 왔다. 을지로에서 비닐 공장을 하는 여자 손님이었다. 큰언니와 여손님은 머리를 하며 두런두런 말을 나누다 서로에게 여동생과 오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날 저녁 언니는 동생을 불러다 낮에 있던 일을 가만히 얘기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의 여동생과 오빠는 마주 앉아 저녁을 먹게 되었다. 그는 은행원이었고, 그녀보다 4살이 많았다. 이름은 연식이었다.


연식씨는 무슨 말만 하면 말없이 씩 웃는 그녀가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88년의 11월과 12월 사이, 겨울이었다. 둘이 만나 몇 번의 식사를 함께 한 후, 그의 여동생은 그녀가 퍽 궁금했는지 몰래 손님을 가장해 찾아와 그녀 얼굴을 보고 갔다. 딱히 말을 걸거나 하지는 않았다. 관상가가 사람의 얼굴을 보듯 그렇게 맨 얼굴만 보고 그냥 왔다 갔다. 이후 연식씨와 후남씨는 호프에 가 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술을 못 마시는 후남씨는 마주 앉은 연식씨가 500cc짜리 맥주를 꿀떡꿀떡 삼키는 걸 구경만 했다.


그러다 연식씨는 난데없이 종이와 펜을 꺼내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아버지 이름은 어떻고 어머니는 이렇고, 형제가 총 몇 명이고, 남자 형제는 ‘식’ 자 돌림이고, 여자 형제는 ‘창’ 자 돌림이라는 둥 물어보지도 않은 것을 한자로 열심히 적어가며 가족의 역사를 줄줄이 알려주었다. 그리고 또 얼마간 시간이 지나 후남씨는 연식씨에게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간을 물었다. 친정 엄마가 궁합을 볼 때 필요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예상치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보면  되나?” 의아함에 왜냐고 물으니,  좋게 나오면 어떻게 하냐며. (걱정이 어린 그의 얼굴 줌인.) 4 차이는 궁합도  본다는 것은 참말이었던 것일까, 물론 궁합을 보긴 했지만, 호랑이띠 후남씨와 개띠 연식씨는 이듬해  웨딩마치를 울렸다. 그러니까, 큰언니의 미용실에 그의 여동생이 왔다간   네다섯  만의 일이었다. 벚꽃이 후두두 떨어져 꽃비가 내리던 4 말이었다. 그녀의 때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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