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느린 사람이다
해가 바뀌었다. 만 나이 도입과 하등 상관없이 난 여전히 30대 중반이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30대 중반의 여자로서 나는 현재 네 가지에 늦었다. 일과 학업, 그리고 결혼과 출산. 나는 작년에 다시 신입사원이 되었다. 그리고 취직과 동시에 다시 학생이 되었다. 평일엔 출퇴근과 등하교로 분주하고, 주말엔 과제와 시험 준비로 몹시 바쁘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결혼은 요원한 일이다. 나는 미혼이고, 아이도 없다. 주위의 친구들과 아는 동생들은 애저녁에 자리를 잡고, 돈도 얼마간 모아 결혼해서, 토끼 같은 아이(들)을 품에 안은 채 삶을 영위해나가고 있다. 내 언저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부모님 주변만 언뜻 둘러봐도 답이 나온다. 나는 꽤나 느린 편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항상 늦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초중고등학교 학창 시절 잦은 지각은 일상이었고, 친구들과의 약속에도 꼭 일이 분씩 더러는 몇 십 분씩 늦기 일쑤였으며, 사회 초년생 시절 입사를 해서도 그 나쁜 버릇은 여간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시간 개념만 없는 것이 아니라 성장도 꽤 더뎠다. 남들은 한 번의 경험으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는 반면 나는 몇 번을 경험해도 도무지 깨달을 줄을 몰랐다. 어쩌면 나는 깨닫고 싶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나는 철이 없고 싶었다. 언제까지고 계절 모르는 아이인 채로 남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도 늦는 중인 걸까. 누군가는 날 더러 그 나이에 커리어를 바꾸는 위험을 감수하고 공부를 할 것이 아니라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자리를 잡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앞으로 쓸 글은 나의 느림에 대한 기록이자 회고, 반성이자 위로다.
이 시대를 나와 같은 느린이로 살고 있는 이들을 위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