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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Jul 19. 2020

성악하는 멋진 오빠들!

오페라 카니발 2020,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2020.07.11


                                                                                                     

『오페라 카니발 OPERA CARNIVAL 2020』을 본 것은 위기감 때문이다. 지난 2월 이후 콘서트는 처음이다. 예매했던 공연이 누구나 다 아는 이유로 몇 번 취소됐고, (어쩔 수 없다고 납득은 하면서도) 몇 번의 실망과 체념을 했다. 시간이 갈수록 이젠 고를 처지가 아니다, 볼 수 있을 때 봐야 한다는 절실함이 가득했다. 내가 좋아하는 단 하나의 팀 포르테 디 콰트로를 더는 무대에서 직접 볼 수 없을지 모르는다는 절박함 속에, 그들의 완전체가 아니더라도 일부라도 보고 싶었다.


 나의 원픽 테너 김현수의 「꿈꾸는 봄밤」을 시작으로, 박수 소리가 그칠 사이 없이 성악가들의 열창 퍼레이드가 이어졌다. 들어본 노래도 있고, 처음 듣는 노래도 있었다. 가곡을 비롯해 우리말로 된 노래를 줄줄이 들려주더니 오페라 아리아로 이어졌고, 다시 우리말 노래로 돌아와 끝을 맺었다. 피아노 반주와 한 명 혹은 두 명씩 나와 열창하는 성악가가 채운 무대는 미니멀하지만 묵직했다.  


 테너는 김현수, 김승직, 정필립 그리고 이번 『팬텀 싱어 시즌3』를 통해 급부상한 김민석이다. 바리톤은 김주택, 베이스는 손혜수와 손태진이다. 성악가들이 차례로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동안, 거의 무대를 떠나지 못하는 한 사람(악보 넘겨주는 분까지 두 사람)은 바로 모든 노래의 반주를 도맡아 한 피아니스트 문재원이다. 이 분은 일곱 명의 성악가 못지않게 돋보이는 존재감으로 무대를 지켰다.


 일곱 명의 아티스트들은 각자 준비한 곡을 혼신의 힘을 다해 불렀다. 간혹 둘이 함께 하는 듀엣도 있었지만 대부분 혼자 나와 한 곡을 책임지고 들어갔다. 아름다운 테너의 음성을 들을 땐 숨이 멎을 것 같은데, 다음 노래가 밀어닥치면 이전 곡은 슬쩍 내려놓고 또 열중하게 된다. 알아듣는 노래는 알아듣는 대로, 못 알아듣는 노래는 못 알아듣는 대로, 한 곡 한 곡이 소중하고 아름다웠다. 성악가들의 퍼포먼스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모두 다르다. 현수 군은 유독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열창했다. 현수 군의 고음은 '벨벳처럼 부드럽고 포근하다'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이번 무대에서 그의 음성은 찌를 듯이 날카로우면서도 약간 서늘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넷 중 하나가 되어 화음을 만들 때와 솔로일 때는 다를 수밖에 없지만, 예전에 그의 단독 콘서트에서 느꼈던 것보다 이번이 좀 더 날카롭고 선명했다. 부드럽고 포근해도 좋고 날카롭고 서늘해도 좋다. 현수 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길.. (ㅎㅎ)


무대 인사하는 피아니스트(왼쪽 끝)와 성악가들


 베이스 손혜수가 부른 「마중」은 예전에 현수 군이 부른 걸 기억하고 있어서, 잠시 그때의 현수 군 생각이 났다. 테너 김민석은 나오고 들어갈 때 유독 박수를 많이 받았다. 매주 방송에서 그가 노력하고 절망했다 다시 부활(?)하는 여정을 지켜본 사람들은 그가 남 같지 않았을 것이다. 방송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나도 반가운 마음으로 그의 음색을 새기며 들었다. 앞으로 그가 어떤 활동을 할지 모르겠지만, 이 슈퍼루키의 무대도 자주 보고 싶다.  태진 군은 현수 군과 더불어 변치 않을 나의 원픽 중 하나다. 「오래된 노래」는 이제 태진 군의 시그니처다. 그가 노래하는 동안, 처음 이 노래를 방송에서 불렀던 시절의 '오래된 부장님'의 모습도 잠시 떠올랐다. (태진 군이 싫어하려나. ㅋㅋ)


 마지막에 모든 출연자가 다 나와 부르는 노래 '향수'에서 조용히 혼자 빵 터졌다. 성악가들이 한 소절씩 돌아가며 부르는데, 현수 군이 너무나 당당하게 가사를 바꿔 불렀다. 무대 정면 프롬프터에 가사가 나와서 금세 알 수 있었다. 출연자들이 보는 모니터에도 가사가 나왔을 텐데 현수 군은 미처 못 본 것 같다. 아니면 순간 헛갈린 가사를 그냥 패기 있게 밀어붙인 건지도. 마지막엔 일곱 명의 성악가들이 모두 나와 열창을 했고, 앙코르곡 '걱정 말아요'는 깨알 같은 재치까지 버무려 잊지 못할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공연 관람의 필수 매너로 관객들은 모두 마스크를 써야 했다. 공연장 들어올 때도 QR코드로 문진표를 작성해 제출했다. 그리고 두 자리에 한 칸씩 띄어 앉았다. 객석 1/3 은 강제로 비워둔 셈이다. 마스크 쓰고 본 공연은 처음이라 새삼 내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 절감했다. 이렇게 해서까지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과 마스크 쓴 관객 앞에서 공연하는 사람들은 서로 기가 막히면서도 감사하고 미안했을 것이다. 마스크를 쓰고 보면서, 마스크 없이 노래하는 그들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이렇게라도 볼 수 있어서 감사했다. 그들도 아마 관객들과 비슷한 마음일 거라 생각한다.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을 피해야 하고, 그런 곳을 거리낌 없이 다니는 게 죄가 되는 세상이 됐다. 죄를 짓고 싶지 않은 마음과 직접 가서 그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시시각각 갈등한다. 작년에 비해 그들을 볼 수 있는 무대가 대폭 줄어들었다. 게다가 공연이 성사되어도 좌석이 많이 줄었다. 강제로 막으니 더 조바심이 나고 무대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하다. 이렇게나마 볼 수 있는 게 감사하면서도 한숨이 나온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물론 많은 아티스트들이 랜선 공연을  하고 있다. 하지만 공연장에만 느낄 수 있는 현장감이 그리운 관객은 랜선 공연을 보면서 더 깊은 한숨만 나온다.


 매년 정기적으로 하는 『오페라 카니발』공연을 내년에도 꼭 보고 싶다. 내년을 얘기하는 게 사치처럼 느껴지는 요즘이지만, 내년엔 한 번이라도 더 내가 좋아하는 그들을 볼 수 있었으면 한다. 성악하는 멋진 오빠들을 한꺼번에 보니 그런 마음이 더욱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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