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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나 Jun 29. 2020

1. 퇴사를 했다. 코로나 때문에 손잡고 다같이.

코로나 백수를 혼자 두면 별 걸 다 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전쟁 끝나면, 돌아가서 꼭 멋있게 고백할 겁니다."


'아이고, 저 인간 죽겠네.'

웹 상에 사망 플래그 대사라고 떠돌아다닐 만큼 예상이 가능한 클리셰들이 있다.  


그리고 그만큼 예상하기 쉬운 현실 속 상황이 또 있다. 코로나 19 때문에 전 세계의 여행업과 관광업은 급격하게 곤두박질을 치고 있다는 것. 나는 그 곤두박질을 직격타로 맞은 사람 중 한 명이다.


전 세계의 하늘길이 막히고, 두꺼운 마스크가 얼굴의 반을 덮어 눈으로 인사하는 시대, 포스트 코로나 19.


전 세계는 일찍이 코로나가 터진 우리나라에게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다. 작은 항공사들의 합병설과 대규모 여행사에서 인원 감축과 전 직원 무급 휴가를 실시한다는 소식이 하루하루 기사를 통해 전해졌다.


그런데 작디작은 우리 회사는 아무 말이 없었다. 무려 해외여행 가이드 콘텐츠를 제작하는 회사인데 말이다. 무슨 자존심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국내 관광 가이드 콘텐츠를 제작해달라는 고객의 요청에도 꿋꿋하게 해외여행 콘텐츠만을 서비스하는 소신(?)보였다.


출근길 아침마다 재난 문자가 너 나할 것 없이 빽빽거리며 울고, 나날이 지하철 안에 마스크를 쓰는 사람들이 늘어났지만, 평소와 똑같이 작업은 이어지고 있었다. 


혹시 이 사람들은 코로나가 없는 다른 평행 우주에서 살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내가 코로나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 직종에서 근무하고 있는 건가? 


그럴 리가. 나는 해외여행 콘텐츠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우스개 소리로 직원들끼리 말했다.

"우리 회사 돈 많은가 봐요."

아뿔싸, 안일했다. 아무 말 없이 같은 하루를 보내던 중, 아닌 밤중의 날벼락처럼 대규모 비정규직 정리 해고 바람이 불었다. 


정말 하루아침이었다. 점심시간을 제외하고는 8시간 동안 엉덩이도 제대로 못 떼고 자리에서 '쌔빠지게' 일하던 옆자리 직원들이 일주일도 안 돼서 날아갔다. 


나이 어린 초년생들이 많아서 세상 물정을 몰랐던 탓인지, 아니면 망조가 든 회사를 뜰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인지, 그들은 얼마 되지도 않은 한 달 치 월급 정도의 위로금을 품에 안고 짐을 쌌다.


"이건 시간문제예요. 다음은 우리일 텐데요, 뭐."

떠나는 동료를 위로하며 말했다. 위로의 말이긴 했지만 진심이기도 했다. 여행업은 당분간 미래가 없어 보였다. 특히나 해외여행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크게 의미 없었고, 우리 역시 곧 무급 휴직이나 권고사직의 절차를 밟으리라.


사분의 일이 사라진 빈자리는 금세 그들이 있지도 않았다는 듯이 치워졌다. 조직 개편이 이루어졌고, 나와 우리 팀은 부서 이동에 이어 업무도 바뀌어 버렸다. 


쌓여가는 불만은 엄청난 업무량과 바쁜 일정에 묵살되었다. 일단 국내 여행 콘텐츠로 방향을 튼 본사의 지침에 따라 더 많은 작업량을 해내야 했고, 모두가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두 번째 토사구팽이 이어졌다. 

적은 인력으로 엄청난 물량을 겨우 해냈지만, 후련하지도 않았다. 가끔 화장실에서 마주치는 직원들은 말끝을 흐리며 흐리멍텅한 눈으로 겨우 인사를 할 정도로 지쳐 있었다.


5월 초 황금연휴가 지나고, 2차 구조조정이 발표되었다. 이미 1차의 충격으로 인해 대부분 예상을 한 덕분인지 대다수의 직원들은 덤덤했다. 다행히도(?) 이번 구조조정은 권고사직(을 빙자한 해고 통보)이 아니라 희망퇴직이었다.


간부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각각 나누어 한 자리에 모아 놓고는 희망퇴직을 받겠다는 공지를 던졌다. 남아 있을 자에 대한 대우가 더 악조건이라는 것을 말하면서도, 너희들은 갈 곳이 없으니 남으려 한다는 것을 다 안다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배짱을 부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공지가 끝난 후 자기 자리로 돌아가기까지 무덤덤한 발소리만 이어졌을 뿐, 누구도 말 한마디 먼저 꺼내는 이가 없었다.


그리고 퇴사 신청 마감 기한 월요일.

남아 있던 직원의 60%가 퇴사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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