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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나 Jul 24. 2020

3. '시원'했지만 '섭섭'하지 않았던 첫 퇴사

코로나 백수를 혼자 두면 별 걸 다 한다

나를 비롯하여 많은 직원들이 떠나던 날, 우리는 남아 있는 짐을 양손에 들고 곱창집으로 향했다.


퇴사 파티를 함께 하기로 한 직원들 중 두 명은 손목에 짐이 가득 든 종이 봉투를 걸어 놓고, 두 손에 꽃다발을 품 안에 끌어안듯 들고 있었다. 평소 꽃 선물을 자주하던 직원의 서프라이즈 생일 선물이었다. 생일 선물의 명목으로 손에 쥔 꽃다발은 왠지 이곳의 탈출을 축하한다는 듯한 이중적인 상징물처럼 보였고, 나는 내심 그것이 관리자들을 조롱하는 것 같아 속으로 킬킬거리고 있었다.


묘하게 추적거리는 가랑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의 메뉴와는 참 잘 어울리는 날씨였다. 기름지고, 자극적이고, 얼큰하고, 술을 함께 먹을 수 있는, 꼭 그런 메뉴를 먹어야 할 것만 같은 날 말이다.


아직 퇴근 시간이 되지 않아 한산한 한우 곱창집에서 곱창과 막창과 대창과 염통을 함께 구운 모듬구이를 먹고, 우동 사리를 2개나 추가한 곱창 전골을 먹고, 자리를 옮긴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세 개의 조각 케이크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었다. 빈틈없이 꽉 찬 배를 느끼며, 드디어 해방을 맞이한 울분이 마치 음식으로 표출된 것 같다는 기분마저 들었다.


대화 주제는 당연히 그런 것이었다. 자리를 정리하고 나올 때까지 개개인에게 있었던 퇴사 스토리나, 이미 얼마 전에 털어놓았던 회사의 부당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렇다고 한없이 회사 욕에 혈안이 되어 있지는 못했다. 영화 <해리포터>에 나오는 꼬마 집요정 도비와 함께 퇴사짤의 양대 산맥으로 일컫어지는 '가영이 퇴사짤'처럼 우리의 텐션은 한껏 올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 케이크에 알파벳 초를 꽂아 '해피 버스데이'를 만들고 사진을 찍으며, 직장 동료가 아니라 친한 친구인 것처럼 한참을 깔깔거렸다.

애니메이션 <이누야샤> 의 주인공 가영이 퇴사짤





집으로 혼자 돌아오는 길은 외롭지도, 쓸쓸하지도 않았다. 싱숭생숭한 기분이 들지 않는 스스로를 보며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퇴사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 말이 참 미묘한 것이, 회사에서 잘리고 나서 '하, 정말 끝이구나.'라는 기분이 아니라, '이야, 진짜 이 순간이 오다니!'라는 것이었다. 


나는 불과 퇴사를 하기 2주 전에 이와 같은 기분을 한 차례 느낀 적이 있었다. 기나긴 다이어트를 끝내고, 그토록 고대하던 음식(대창 전골)을 입에 넣었던 그 기분과 참으로 비슷했다.


"난 내가 대창 전골을 먹기 직전에 세상이 멸망할 거 같았어. 그만큼 이 순간이 절대 안 올 거 같았거든. 내가 이 대창을 먹을 수 있는 이 순간이 너무 감격스럽고 신기해."


오랜 다이어트 기간을 이겨내고 맛본 대창 전골처럼, 퇴사의 맛은 짜릿하고 행복했다.

잊지 못할 나의 대창전골


원래 퇴사하면 이런 기분인가?


아니. 대학생때부터 취업하기 전까지 1년 반 동안 직원처럼 일한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을 때는 지금과 사뭇 달랐다. 아쉬운 마음에 메신저 프로필 상태 메시지에 아쉽다는 글귀를 남기고, 입사를 한 이후에도 함께 일한 분들과 연락을 주고 받고, 일터에 직접 찾아간 적도 있었다.


정규직으로 일 년 반을 함께한 회사는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때보다도 못한 마무리로 끝나고 말았다.




호기롭게 입사하여 잘하려는 의욕으로 가득 차 있던 지난 겨울날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입사 직후 한 차례의 혼란이 있던 시기, 나는 다시 취업 시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버티겠다는 일념으로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내가 맡았던 일을 좋아했고, 그것이 나름 나의 전공도 살릴 수 있었으며, 나의 적성과도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만든 수백 장의 문서와 내 손을 거친 콘텐츠와 기록들을 버리고 나왔다. 내가 쏟아부은 노력이(그것이 회사의 기본이 될 정책서든, 콘텐츠의 최종 마무리 작업이든 상관없이) '중요치 않다'라는 말을 직간접적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들은 직원들의 모든 업무에 대해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의 회사가 하는 일이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을 가진 대표의 아래에서는 그 어떤 자아 실현도, 발전도 기대할 수 없었다.


본사의 인형뽑기 갈고리에 운 좋게 발탁된 그는 사내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자기 이름으로 할 정도로 보란듯이 소유욕을 드러냈지만, 회사가 어려워진 순간 그 즉시 남탓을 하며 숨어버렸다.


언젠가 회사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으로 하겠다는 둥 하잘 것 없는 욕망을 드러낼 시간에, 직원들을 조금이라도 더 생각했다면...... 나는 그들이 그렇게나 노래를 부르던 '로열티'를 보이는 시늉 정도는 해보였을 수도 있다.


"우리 회사 나간 애들이 여기 다닐 때가 더 좋았다고 가끔 연락이 오기도 한다."


장단을 맞춰주기도 어려운 정신 승리를 듣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이곳에 허비하는 일분일초가 아까웠다. 그리고 나와 함께한 사람들이 관리자들의 주업무인 가스라이팅에 더이상 혹사당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렇게 우리는 각기 다른 날 태어나 한날 한시에 죽기를 맹세한 도원결의 삼인방처럼, 각자 다른 날 입사하여 같은 날 퇴사했다.


어찌 되었든,

내가 두 번 다시는 그와 같은 회사에 발 딛는 일 없도록, 나의 발전에 크나큰 계기를 만들어준 회사여.

시원하지만 섭섭하지 않게 간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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