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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나 Aug 06. 2020

4. 왜 퇴사했는데 더 바빠?

코로나 백수를 혼자 두면 별 걸 다 한다

퇴사를 한 금요일이 지나, 평소보다는 덜 달달한 주말이 지났다. 

그리고 퇴사 이후 처음 맞이하는 월요일. 주말이었던 전날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쉬는 날이 된 나의 평일이 사뭇 낯설었다. 


일 년 반동안 맞추어둔 신체 리듬 덕분에 이른 아침부터 눈이 저절로 뜨였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침대 위에서 휴대폰을 만지며 한참을 미적거렸다.


직원 단톡방에는 월요일 아침부터 수십 개의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 마음이 편하고 행복하다는 메시지와 기쁨을 만끽하는 표정의 이모티콘들로 채팅방은 가득 차 있었다.






숨통을 옥죄여오는 곳에서 벗어나 갑작스레 맞이한 자유는 꽤나 어색한 것이었다. 붕 떠 버린 평일 시간을 우리는 함께 즐겼다. 팀별 혹은 친한 직원별로 모임이 따로 꾸려져, 하루하루 모임을 갖느라 바빴다. 오죽하면, 일할 때보다 더 바빠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되도록이면 직장인이었을 때 하기 어려웠던 것들을 부러 찾아서 했다. 


제각각 코로나를 피해 글램핑을 즐기거나, 원데이 클래스를 체험하거나, 시골 자락 깊숙이에 숨어 있는 카페와 평소라면 줄이 길어 엄두도 내지 못할 방송 출연 맛집을 찾아갔다. 


나는 대형마트 문화센터에서 피아노, 영어 회화, 홈 베이킹 수업을 들었고, 일전에 등록했던 쿠킹 클래스에서 밀푀유 카츠나 젤라틴 케이크를 만들어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찍어 자랑하듯 올렸다. 피부과 평일 이벤트를 찾아가 여유로운 시간대에 관리 받는 기분도 느껴보았다.  


아쉽게도 코로나 때문에 멀리 여행을 가지는 못했지만, 일상에서 소소하게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는 묘미도 있었다.


이런 생활이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었다면, 나는 제 풀에 지쳐 뜻밖의 번아웃을 맞이했을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하루하루 무언가를 할지 고민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러 다니고, 친한 사람들과 맛있은 것을 먹으러 다니는 모임을 즐겼다.


정반대로 집순이가 되어 평안한 일상을 즐기는 직원들도 있었다. 회사를 다니며 피곤했던 심신과 퇴사로 인해 받았던 스트레스를 조용히 풀고 있었다. 


정답은 없다. 

각자 자기에 맞는 스타일을 알아가고, 조급하지 않게 즐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회사를 나와서도 우리가 매주 얼굴을 맞대며 만났던 것은 단순히 남아도는 평일 일정을 함께 할 사람이 그들 뿐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어떻게든 나를 움직이게 하려는 하나의 방법에 가까웠다. 


아무리 이것저것 가장 많이 챙겨서 나올 수 있는 시기에 내 발로 회사문을 걷어차고 나왔다고 한들, 그에 따른 후폭풍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갑자기 일상에서 사라져버린 생산성과 강제성,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이 가져올 우울과 불안은 급속도로 커질 것이었다. 


아마 서로 무얼하며 지내냐고 굳이 묻지 않은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 였을 것이다. 그것은 부러 우리의 약점이 되어버린 부분을 서로 긁지 않으려함도 있었지만, 곧 찾아갈 서로의 길을 믿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언제 나를 급습할지 모르는 우울감을 떨쳐 내기 위해, 나는 부지런히 움직였다. 조심스럽게 나의 일상을 물어보던 친구들은 집에서든 밖에서든 쉴틈없이 무언가를 하는 나를 보며 말했다.


"와, 너는 어떻게 회사 다닐 때보다 더 바빠? 퇴사한 거 맞아?"






번외.

이쯤되면 나의 퇴사 이야기로 본격적인 시작을 하고 싶건만, 퇴사를 하고도 우스꽝스러운 회사 이야기를 하나 더 겪게 되었다. 


퇴사를 하고 한 달 쯤 지나, 같은 지역에 살고 있는 직원과 함께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아침 일찍 고용센터를 방문했다. 요새 코로나 때문에 실직자가 늘어나 고용센터 실업급여 신청 대기가 길다는 말에 아침부터 분주하게 나섰다.


의외로 대기인이 없었고, 우리는 각각의 창구에서 바로 실업급여를 신청할 수 있었다. 회사 정보와 퇴사 내용을 적은 서류를 제출하자, 창구의 직원이 나의 서류를 보고 바로 알은 체를 했다.


"아, 000에서 오셨네요?"

"네? 아, 네. 크크."


서류에 적힌 우리 회사의 이름이 꽤나 익숙했던 모양이다. 나보다 앞서 고용센터를 찾아와 실업급여를 신청했던 우리 직원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떠올리니 저절로 피식, 웃음이 났다. 


"여행업종이시라고..."

"네, 뭐 비슷해요."

"두 달 전쯤 우르르 오시더니, 또 2주 전부터 많이 오시더라구요."

"네, 맞아요. 엄청 나왔어요."

"얼마나 나오신 거에요?"

"한 70프로는 나왔을 걸요?"

"20프로요?"

"아니요, 칠십프로요!"

"허어..!"


직원은 꽤나 놀라워 했다.


딱히 창피하지도 않았다. 이 회사는 퇴사하고서도 조롱할 거리가 생기는구나. 삼성, 엘지 같은 대기업도 아니고, 인터넷에 검색해도 기본 정도 밖에는 나오지 않는 회사를 고용센터 직원이 안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우스웠다. 


퇴사 후에도 이어진 한바탕 작은 에피소드. 

어쨌든, 회사 스토리는 진짜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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